청아람

VOL 101

May+ June 2020
홈 아이콘 Plus Life 오랜 맛의 비밀

세계 전쟁사에 깃든 전투 식량을 보다

피자, 프렌치 프라이, 부대찌개, 청국장. 이 식품들의 공통점은? 답은 전쟁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가 이들 음식의 탄생 배경이다. 정답을 쉽게 맞힌 이라면, 그는 대단한 미식가다. 욕망에 충실한 탐식가가 아니다. 한 접시에 깃든 인류 역사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탐험가다.

Writer_ 박미향 음식문화기자

오랜 맛의 비밀01

지난해 서울 이화동에 있는 피자 가게 ‘핏제리아오’의 총괄 셰프 이진형(46) 씨는 여러 미디어에 얼굴을 내밀었다. ‘제17회 로마 피자 월드컵’의 ‘메트로 팔라’ 부분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했기 때문이다. ‘제17회 로마 피자 월드컵’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피자 대회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 피자는 김치찌개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현지 식사를 즐기기로 유명한 영국 푸드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도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에선 단 1초도 고민 없이 피자를 주문한다고 한다. 이탈리아가 아니라도 말이다. 아이들에겐 피자는 소울푸드다. 보잘것없던 이탈리아 서민 음식이 이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먹거리가 됐다.

둥근 도우에 루꼴라 같은 채소, 모차렐라 치즈, 꿀, 토마토 등 여러 가지 맛을 올리는 피자는 이탈리아 밀라노가 고향이다. 하지만 피자가 세계적인 먹거리가 된 데는 제2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공이 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부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미군들은 전쟁이 끝난 뒤 귀향해서도 피자 맛을 잊지 못했다. 이미 미국엔 터를 잡고 피자를 팔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가게에 군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 피자 프랜차이즈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중화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자본주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미국인들은 할리우드 영화에 단골 소품으로 피자를 초청한다. 피자를 접어 한입에 넣는 마릴린먼로를 상상해보라. (실제 마릴린 먼로가 피자 먹는 신을 찍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 하지만 많은 스타가 피자를 스크린 안에서 먹었다.) 미국인들은 도우의 두께가 두꺼운 ‘시카고 피자’도 만들어서 ‘미국식 피자’의 장점을 널리 알렸다. 냉동 피자 기술마저 개발되자 피자는 그 야말로 전국구 음식이 됐다.

미군들이 퍼뜨린 음식은 의외로 많다. 승전국 병사다운 활발함일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에 주둔한 미군은 바싹하게 튀긴 감자튀김을 접하고 반했다. 그들은 그것에 ‘프렌치 프라이’라고 이름 붙였다. 감자튀김을 건넨 벨기에인이 프랑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모든 음식사가 그렇듯이 프렌치 프라이도 원조 논란에 휩싸였다. ‘폼 프리트’(Pomme Frites. 프랑스어로 ‘튀긴 사과’란 뜻)가 원래 이름이라는 프랑스인들은 19세기 우연히 이 음식을 접한 미국인들이 ‘프렌치 프라이’라고 불렀다는 주장을 한다. 어느 쪽이 승리 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어쨌거나 미군의 왕성한 식욕은 먹거리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오랜 맛의 비밀02

한국 식문화에도 미군의 그림자가 옅게 깔렸다. 서울 이태원동에는 노포(오래된 가게) 나들이객이 꼭 찾는 식당이 있다. 창업 역사가 40년 넘은 바다식당과 고암식당이 주인공이다. 부대찌개의 다른 이름인 존슨탕을 파는 식당이다. 존슨탕은 1966년쯤 방한한 미 대통령 린든 존스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찌 됐든 1950년대 말부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 치즈 등이 부대찌개의 재료였다는 의견에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당시 우리에겐 생경했던 햄과 소시지가 걸쭉한 김치찌개와 만나 ‘일을 내고 만 것’이다. 먹으면 입안에서 맛의 폭죽이 터진다. 황홀해진다. 국물 안에서 머뭇거리는 소시지는 몰랑몰랑하다. 폭신한 햄은 누이의 화장 솜처럼 친근하다. 미식 탐험가는 이태원 맛 투어에만 머물지 않고, 의정부식과 송탄식으로 나뉘는 부대찌개 맛의 차이를 경험하러 떠난다. 물론 부대찌개의 대중화에는 1980년대 이후 국내 햄과 소시지 생산업체의 성장이 한몫했다.

미군의 그림자를 거둬내도 살펴볼 만한 우리네 군대 먹거리가 있을까? 1980년대 군 생활을 한 이들에게 ‘추억의 군대 먹거리’를 꼽으라면? 초코파이를 첫 손가락에 꼽을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추억담을 듣다 보면 웃음이 피식 터진다. 군종 목사는 초코파이를 미끼로 병사들을 유혹한다. 병사들은 굴욕(?)적으로 단것에 굴복해 기독교 신자가 된다. 군 에피소드 중 가장 웃긴 얘기는 초코파이를 누가 뺏을까 싶어서 화장실에서 홀로 먹은 군인 스토리다. 화장실과 초코파이는 대동강과 한강만큼 멀어 보인다

문득 과거 조선 시대 전쟁터에서 탄생한 음식이 궁금해진다. 주먹밥? 술 찌꺼기? 떡? 아니다. 청국장이라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청국장은 된장보다 만들기가 쉽다. 향은 고약하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선한 중독이다. 몰입의 기쁨이 주는 중독 같은 거다. ‘청국장’이란 이름의 앞글자 ‘청’ 때문에 병자호란때 침략한 청나라 군대의 ‘청’이 연상되겠지만, 관련이 없다. 우리 고문헌에는 ‘전국장’이라고 적혀 있다. 영양학적인 면에서 우수한 전국장은 조리가 간편해서 전쟁터에서 빠르게 퍼졌다고 한다. 다친 병사의 치료제로도 요긴했다. 쓰러진 군마도 전쟁터에서는 질 좋은 먹거리였다. 중요한 단백질 보급원이었던 것이다.

강원도 원주나 제주 등에 말고기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건, 과거 우리 전쟁사의 흔적일지 모른다. 최근 본 영화 <1917>에선 전투식량을 잔뜩 가방에 넣고 독일의 함정에 빠진 아군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병사가 나온다. 병사는 결국 임무를 완수하는데, 여기에도 먹거리는 중요한 요소였다.

전쟁터 먹거리가 아무리 맛나도, 그 음식엔 누군가의 피와 불행에 관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맛보기 전에 마음을 숙연하게 가져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