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람

VOL 101

May+ June 2020
홈 아이콘 Add Culture 그날, 그곳에는

대전차방호시설 (도봉시민아파트)의 변신, 평화문화진지(陣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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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는02

침략의 길목 위에 평화와 문화를 뿌리내리다

겉으로 보기만 할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역사를 품은 공간이 있다.
주민들과 예술가들을 모아 한마당 잔치를 벌이기에 추세에 맞춰 조성된 공간인가 했더니, 속 깊은 데를 살갑게 어루만지기 위한 몸짓이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결집된 노력들이 반짝이며 공간에 윤기를 더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백했다.

Photo_ 평화문화진지 / 황효철 작가 / 서울시 블로그

그날, 그곳에는03

북침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에서 출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도선 전 지역에 일제히 포탄이 날아들었다. 남한을 점령하겠다는 치밀한 계획 아래 감행된 북한군의 기습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던 남한과 달리 북한은 소련제 탱크 200여 대, 전투기와 폭격기 200여 대, 13만여 명의 지상군으로 무장한 채 순식간에 밀려들어왔다. 약 이틀 만에 주요 길목인 동두천-의정부 방어선이 무너졌다. 수도인 서울을 정복하려 혈안이 된 북한군을 막아낼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은 창동-미아리 방어선. 이마저도 치열한 접전 끝에 28일 새벽 1시경 무너지고 만다. 단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서울 북방 관문의 취약성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서울을 재탈환한 뒤 휴전을 하고서도 이 일대를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두고 엄격히 통제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도리어 독이 되었을 수 있다. 1968년, 허허벌판에 가까운 서울의 북쪽 지역을 뚫고 북한의 무장간첩이 두 차례나 침투한 것이다.

이에 이 일대의 개발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촉진해 방어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김현옥 전 서울시장의 ‘서울 요새화 계획’으로 이어졌다. 이때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 북악 스카이웨이가 건설되었고, 남산에 방공과 교통을 요긴하게 하기 위해 2개의 터널이 뚫렸다. 또한 유사시 건물 자체를 폭파해 탱크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대전차방호시설’이 경계선 인근 곳곳에 지어졌다. 그중 하나가 서울의 최북단인 도봉구에 세워졌다. 대전차방호시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봉시민아파트’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1층은 공격과 방어를 위한 것은 물론 대피소나 참호 역할이 가능한 군사시설이었고, 2층부터 4층까지는 180세대를 아우르는 규모의 아파트 형태였기 때문이다. 군사주도 대규모 도시개발 정책의 산물로, 군인들이 상시 거주할 수 있는 군사시설인 동시에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오롯이 간직한 공간을 꿈꾸며

덩그러니 1층만 남겨졌던 대전차방호시설은 간간히 도봉구청에서 건설자재창고로 사용하긴 했으나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다. 도봉구 끝자락에 위치해 발길이 뜸한 동네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기까지 했다. 이대로 둘 수 없지 않느냐며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은 이동진 도봉구청장과 시민추진단이었다. 하지만 소재만 도봉구지 토지 소유는 서울시, 건축물은 국방부의 재산이라 사용 권한을 조정하는 것만도 만만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2016년 12월 마침내 서울시, 도봉구청, 60보병사단이 손을 맞잡아 낡은 건물에 변화를 불러오기로 약속하고 본격적으로 평화문화진지 짓기 대작전에 돌입한다. 젊은 건축가 두 명의 설계도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기존 건물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자는 데로 모아졌다. 기둥, 끊어진 계단, 벽, 보, 소총 거치대, 낙서 등 대전차방호시설의 흔적을 남기는 데 주력하기로 한다. 오랜 시간 쌓여온 공간의 이야기를 품은 채 약동할 수 있길 바랐던 것이다. 덕분에 평화문화진지에 가면 이러한 구석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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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를 횡단하고 남북의 이동을 끊은 대전차방호시설이 연결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찾아가는 길 평화문화진지는 주로 도봉산역 1호선과 7호선의 1-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다. 이외에도 도봉산역에 도착하는 버스를 활용하면 좋다.
주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마들로 932
대중교통 1호선 도봉산역 하차/1-1번 출구
7호선 도봉산역 하차/1-1번 출구
간선 140, 150, 160, 106, 107, 108
일반 5, 7, 72, 72-3, 133, 10-1, 36, 118
지선 도봉 09번(도보 2분)

다채로운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

상처와 긴장으로 얼룩진 자리에 홀로 남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평화문화진지는 이제 생기로 가득하다. 설계하며 계획했던 ‘문화시설로의 탈바꿈’에 성공한 덕분이다. 5개의 동 중 1동에는 공연장이, 2동에서 4동까지는 예술가와 주민들을 위한 공방과 전시실, 강의실을 비롯한 커뮤니티 공간이 조성되었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사용하는 공간이자 예술가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 함께 마련된 것이다.

이전에는 그저 논밭뿐이었는데, 2009년 6월에 식물원인 서울 창포원이 바로 옆에 들어서고, 2018년에는 다락원 체육공원이 이전하면서 많은 이들이 하나의 산책코스이자 관광코스처럼 인식하고 함께 찾는다고 한다. 덕분에 방문자들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렇듯 평화문화진지는 지형적으로도, 만들고 찾아드는 사람들의 차원에서도 언제나 소통과 어우러짐의 한가운데 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자세’가 녹아있는, 그야말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통일을 염원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침략과 단절의 늪에 빠져 오랫동안 침묵을 일관하던 진지가 이제 저 경계선 너머로 말을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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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및 일부 인용 : 평화문화진지(2020), 2019 아카이빙 프로젝트 _기록이 현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