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람

VOL 102

JULY · AUGUST 2020
홈 아이콘 Plus Life 예술 속 전쟁 이야기

영웅이 만든 순간,
영웅을 만든 순간

Writer_ 이미혜 예술사 저술가

예술 속 전쟁 이야기01 에마누엘 로이체,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 1851년(378 x 647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뉴욕)

미국 독립전쟁 때 조지 워싱턴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이 역사적 사건은 1776년 12월 25일 밤에 일어났다. 영국군과 비교해 수적으로 열세였고 정식 훈련도 받지 않은 대륙군(식민지 미국의 군대)은 몰리는 상태였다. 한 달 전 대륙군은 뉴욕시를 빼앗기고 델라웨어강 건너 펜실베이니아로 물러났다.

서른네 살의 총사령관 워싱턴은 투지가 넘치는 사나이였다. 크리스마스 날 밤 얼음이 둥둥 떠내려가는 델라웨어강을 다시 건너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술에 취해 잠을 자던 독일인 용병들은 속절없이 당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아침에 쳐들어간 건 반칙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작전의 성공으로 대륙군은 크게 고무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7세기 초 앞 다투어 북아메리카에 이주했다. 영국은 1607년 버지니아에 최초의 정착지 제임스타운을 건설했고, 프랑스는 1608년 퀘벡을 건설했다. 처음에는 각자 영역을 넓히느라 바빴지만 18세기가 되자 양국은 북아메리카의 지배권을 놓고 충돌했다. 20년 가까이 전쟁을 한 끝에 영국은 1763년 프랑스를 굴복시켰다. 영국은 북아메리카를 독차지하게 되었으나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독립의 실마리가 되었다.

전쟁을 치르느라 빚더미에 앉은 제국 정부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더해 북아메리카가 영국 영토임을 못 박기 위해 행정력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 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식민지 주민들은 전쟁 동안 물자와 인력을 징발당하고 본국의 갖가지 요구에 시달려 반발감을 품고 있었다. 여기에 세금까지 더해지자 반발감은 더 거세졌다. 긴장이 높아가던 차에 보스턴 차 사건이 발발했다. 1773년 부당한 과세에 불만을 품은 보스턴 주민들은 항구에 정박한 동인도회사 선박에 올라 차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국 정부는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정체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주민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권리선언을 발표하고 영국 왕에게 진정서를 보냈다. 1775년 4월 처음으로 총성이 울렸다. 영국군은 민병대가 콩코드에 무기와 탄약을 쌓아놓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빼앗기 위해 출동했다. 콩코드 부근 렉싱턴에서 영국군과 민병대가 마주쳤다. 누가 먼저인지는 불분명하나 총격전이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했다.

13개 지역의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 다시 모였다. 버지니아 대표 워싱턴은 싸우자고 주장했으나 대다수는 승산이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했다. 대표 회의는 독립선언문을 채택하고,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선출했다. 전쟁은 6년을 끌었다. 1781년 10월 영국군이 항복했다. 2년 뒤 조지 3세는 미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로이체는 왜 70여 년이 지난 19세기 중반에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을 불러냈을까? 1848년 독일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났으나 실패로 끝났다. 독일계 미국인이었던 로이체는 혁명을 지지했고 독일의 진보세력이 미국 독립전쟁에서 희망을 보기를 바랐다. 로이체는 같은 크기로 두 점의 그림을 그렸다. 1849년 완성된 첫 번째 그림은 브레멘 미술관에 팔렸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두 번째 그림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본은 1851년 뉴욕에 전시되어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다.

뱃머리에 우뚝 선 워싱턴 장군이 서광이 비치는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난 옆모습이 단호하다. 바로 뒤쪽에 성조기를 든 사람은 제5대 미국 대통령이 될 제임스 먼로 대령이다. 배에 탄 대원들은 독립군의 다양한 구성을 보여준다. 사냥꾼 복색을 한 사람, 흑인, 농부, 심지어 여성도 있다. 붉은 상의에 검정 스카프를 매고 노를 젓는 젊은이가 남장 여인이다. 화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미국의 승리를 위해 힘을 합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