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람

VOL 101

May+ June 2020
홈 아이콘 Add Culture 고마운 선조의 유산

삶의 향방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향한 메시지

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김종대 & 전수교육조교 김희수

가장자리를 깎아 매끄럽게 다듬은 원반형의 나무 위에 수십 개의 한자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얇은 붓으로 써낸 것이 아닌 일일이 조각했다며 가만히 훑는 윤도장의 손에는 세월이 번진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넓고 깊은 세계가 꾹꾹 눌러 담긴 윤도의 고장을 찾았다.

Photo_ 한국문화재재단 / 서헌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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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의 고장에서 전통을 계승하는 이들

하늘을 우러르고 경작하며 생을 연장할 수 있게 된 이래로 우리는 끊임없이 영역 확장을 꿈꾸었다. 그래서 땅으로, 바다로 언제나 길을 나섰다. 때로는 구름 너머의 하늘을 탐하기도 했다. 이때마다 탁월한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 전통 나침반 ‘윤도(輪圖)’다. 윤도의 역사는 예상보다 오래다. 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 발명된 나침반이 그 유래라 전해지며, 우리나라에서는 일식을 관찰하고, 하늘을 살펴 점을 치는 내용 등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히 방위만이 아니라 우주의 순리와 법칙까지 나타내는 윤도가 천문학 연구에 요긴하게 활용된 것이다. 풍수사상이 각광받기 시작한 통일신라 때는 지관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집터나 묏자리 등 명당을 알아볼 때 방향을 가늠하기에 탁월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일상생활로 스며들어 더욱 다양하게 쓰였다. 뱃사람이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는 데 이용했고, 천문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해시계를 볼 때 남북(子午)을 정확히 정하기 위해 썼다. 이때부터 휴대용 윤도가 제작됐고 이를 ‘패철(佩鐵)’이라 불렀다. 패철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뜻인데, 대개 지름이 10cm가량인 9층 윤도가 사용되곤 했으니 방울만한 크기가 만들어진 것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러니 사대부들은 멋으로 부채의 끝에 2~3층짜리 윤도를 매달고 다니기도 했는데 이는 ‘선추(扇墜)’라 부른다. 그 외에도 거울에 단 ‘면경철’, 거북이 등에 윤도를 박은 ‘거북 패철’이 소형 윤도에 속한다. 조선시대 흥덕현에 속한 고창에서 만든 윤도는 특별히 ‘흥덕 패철’이라고 칭했는데, 예부터 흥덕 패철은 으뜸으로 쳤다. 특히 고창 낙산마을에서 만들어지는 흥덕 패철이 방향이 정확하고 견고하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윤도를 찾는 이들이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낙산마을에서는 명품 윤도가 생산되고 있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으로 지정된 김종대 선생과 아들 김희수 씨가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김종대 선생이 윤도를 제작하는 일에 뛰어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윤도의 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윤도를 만드는 일을 배워두면 선생도 백부처럼 큰돈을 벌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풍수가 미신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윤도를 사겠다는 이들이 점차 사라졌다. 한때는 무주에서도 윤도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여기 낙산마을만, 김종대 선생 일가만이 남은 이유다. 윤도만 만들며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가업의 맥을 끊지 말고 꼭 이어서 하라’는 백부의 유언이 마음에 남아서… 그래서 놓을 수가 없었지요. 해서 직장생활이랑 병행하다가, 자식들 다 키웠지 싶은 마흔 중반을 넘어서야 전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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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작업이 정교한 윤도를 탄생시킨다

윤도 제작 기술을 익히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태극을 비롯해 음양(陰陽), 오행(五行), 팔괘(八卦),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및 24절후(節侯)까지 모두 담겨 있으니 일단 그 뜻을 다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김종대선생도 윤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젊은 시절에 서당에도 다녀봤으나 윤도의 비밀을 다 풀지는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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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 윤도는 반드시 200년 이상 된 대추나무로 만들어진다는 게 특징이다. 대추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말려 놓으면 잘 트지 않을 뿐 아니라 비단결 같이 윤기가 나면서 오래 갖고 다닐수록 색이 더욱 빨갛고 곱게 나기 때문이다. 박달나무가 재료가 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무르고 가벼운 편이라 김종대 선생 일가에서는 대추나무를 애용한다. 이때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1년간 물에 담가 진을 뺀 다음 또 1년을 그늘에 말리는 과정도 중요하다. 그러고 나면 조각칼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치밀해져 웬만한 충격이나 습기에 끄떡없단다. 또한 300년 동안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는 천연 자철석도 정교한 윤도의 비결이란다. 강철을 깎아 숯불로 단련한 후 초침처럼 가늘게 두드린 다음 세 시간가량 자철석에 올려놓으면 강한 자성(磁性)이 옮겨 붙는다. 그리고 뾰족한 신주(구리와 주석의 합금) 위에 턱 얹어 놓으면 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자침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자철석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에 자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해서 보관해야 해요.”

윤도 제작의 핵심, 정간 작업

윤도(輪圖)는 태극에 해당하는 한가운데 나침반을 중심으로 말 그대로 바퀴살처럼 동심원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동심원 1개를 1층이라 하는데, 이를테면 아홉 개의 동심원이 있으면 9층 윤도가 되고 안쪽부터 수를 센다. 층수가 많을수록 그 내용이 확장되고 세분화된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있지만 몇 층짜리를 만드느냐에 따라, 또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내용과 차례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별히 몇 층에 무슨 내용을 넣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김희수 전수교육조교가 살뜰히 설명한다. 지관들은 통상 5층 짜리나 9층짜리를 사용한다. 작은 것은 3층짜리도 있고 큰 것으로는 24층, 36층까지 있지만 요새는 만들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쓰임새도 그렇지만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층수를 정할 때 각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담을 글자 수를 고려해 조절한다. 이후 정간(定間) 작업을 하는데 이는 윤도 제작의 정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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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는 정간이 생명입니다.

동심원 하나를 360개로 분금하는 것이 정간인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윤도 기능을 못합니다

“윤도는 정간이 생명입니다. 동심원 하나를 360개로 분금하는 것이 정간인데, 각 칸이 1도 차이를 만들며 각을 이뤄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윤도 기능을 못합니다.”

정간이 끝나면 글자를 새기는 각자(刻字) 작업을 한다. 한 층을 각자하는데 보통 한나절이 걸리고, 글자 수가 많은 층은 꼬박 하루가 걸린다. 24층짜리 윤도의 경우 총 약 3,500자가 들어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장인의 손길이 닿고 세월의 자취가 쌓이는 것이 윤도다. 이른바 ‘수제품’인 셈이다. 어느 분야나 ‘수제’라고 하면 한 땀 한 땀 새겨진 정성과 탄탄한 품질에 감탄하고 투자한 시간에 감동하며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던가. 험난한 세월을 딛고 줄곧 우리 곁을 지켜온 윤도에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다. 또한 세상의 기준이 되어 흔들림없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윤도의 원리는 시대를 초월하고 인생길에 불안과 막연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절개와 정도의 지혜를 전할 것이다.

용어 간단히 살펴보기

· 각자[刻字] : 글자를 새김
· 지관[地官] : 풍수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
· 정간[定間] : 조각칼로 한자가 들어갈 위치를 구획하는 전 과정을 이른다 [중심잡기, 층수 정해 동심원 그리기, 분금(分金)하기]
· 태극 : 가운데 흰 바탕을 의미
· : 동심원을 세는 일종의 단위로, 태극과 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수를 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