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강력하게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밤낮 가릴 것 없이 하늘을 우러르며 소원을 빌다가 놀이를 하다가 관찰하기를 반복하며 하늘이 주는 힘에 기댔다. 이제 하늘을 바라는 일은 생소하다. 모두들 땅으로 저무는 고갯짓을 보인다. 우리 다시 연을 날리며 하늘과 또 친구, 가족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어떻겠냐고 슬며시 제안하는 지연장 이수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래 연이란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연 위에 간절한 소원을 살포시 얹어 하늘 높이 띄운 것이다. 이를 두고 ‘기복연(祈福鳶)’이라 일렀다. 때로는 액을 막아주는 ‘액막이연’을 날리기도 했다. 줄을 끊거나 태워버림으로써 연에 실린 액(厄)을 멀리 떠나보내는 의식이었다. 옛 사람들은 그렇게 하늘에 말을 걸었다. 시간이 흘러서는 연이 우리네 민족 간의 소통수단으로 활용됐다. 특히 임진왜란 중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다는 ‘신호연(전술비연)’은 통신수단으로서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고 전해진다. 문양의 형태와 오방색(청, 적, 흑, 백, 황)으로 변별력을 준 20여 종의 연으로 멀리 있는 아군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진행 상황을 알려 병사들이 전투 태세를 갖출 수 있게 한 것은 물론, 적군이 알지 못하도록 각기 다른 암호를 넣어 전달한, 긴요한 명령체계였다.
“다들 날씨의 영향 때문에 가을이나 겨울철에 연을 날린다고 생각하시는데,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죠. 관습으로 자리 잡은 거예요. 물론 날씨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긴 합니다.”
3대째 전통 연을 만들고 있다는 무형문화재 제4호 이수자 노순 씨가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 유일의 지연장(紙鳶匠)이었던 할아버지 노유상 선생과 기능 이수자였던 아버지가 연을 만드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보고 자란 그에게 연의 시간을 곱씹는 일은 일상인 듯했다.
조선 후기에는 영조대왕이 백성들의 화합을 위해 연날리기를 적극 장려한 바 있다. 때문에 궁 안팎으로 연 날리기가 유행처럼 번지다 못해 농사를 손놓은 백성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관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이에 ‘정월 대보름(농번기의 시작)이 지나 연을 날리는 자들을 백정이라 이른다’는 방을 붙인다. 농한기, 즉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겨울에 연을 날리는 풍습과 농번기에 연을 날리는 자들을 ‘고리백정’이라 부르던 것이 여기서 유래했다. 정월 대보름에 ‘액막이연’을 주로 띄우는 이유도 이와 연관되는데, 줄을 끊어 날리며 ‘이제 연은 그만 날리고, 농사에 집중하자’는 다짐까지 담았단다.
1년에 약 500여 개의 연을 손수 만든다는 노순 이수자. 그렇지만 연 날리기를 많이 하지 않는 요즘은 강습이 더 주된 일이라 한다. 그러므로 교육용 재료를 준비해야 할 일이 훨씬 잦다. 이때 기계를 이용한다고 해서 재료의 질에 소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연은 재료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강습 대상자가 대체로 학생들이나 가족들이라 초보자들이 만들어도 잘 날 수 있는 연을 위해서는 기능성이 보장된 재료가 우선이다. 초보자들을 교육할 때 재료만큼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냐고 묻자, “균형”이라고 노순 씨는 단번에 대답했다. 처음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살이나 꽁수구멍의 위치를 정하는 것이나 연이 살짝 휘도록 실을 조절해 묶어주는 일 등 연의 균형감을 잡아주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 장인들이 해온 방법이 연을 자주 만들지 않는 분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선대의 노하우를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게 풀어 전달하려고 애씁니다. 그게 제 세대에서 무형문화재 이수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잘 갖춰진 과정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차츰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이제는 중요한 거죠.”
“아무래도 방패연은 우리만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죠. 산이 많아 연을 날리기 어려운 자연환경에서 만들어졌잖아요. 무엇이든 안 좋은 여건을 이겨낼 때 더 크게 발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를 감히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유산이죠.”
온 지구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누군가의 눈에는 사양세를 띠는 연 문화에도 노순 씨가 담담하게 전한 말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그러한 철학이 그가 꿋꿋이 연의 가치를 지켜가는 원동력인 듯 보였다. 언젠가 두둥실 떠올라 하늘을 가득 채운 연들을 보며 ‘역시 연에는 타지인의 눈에도 선한 기개가 있구나.’라고 자못 감탄하는 순간을 종종 마주할 듯하다.
· 지연(紙鳶) : 종이연을 뜻하며 가오리연, 방패연을 포함한 모든 연을 통칭.
· 전술비연(戰術飛鳶) : 신호연 이전에 불리던 이름으로 ‘전술로 날린 연’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