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X-III Batch-II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그의 딸 아테나에게 준 방패 이지스(Aegis)는 어떤 창, 칼도 뚫을 수 없는 무적의 무기다.
현존 최고의 방어력을 갖춘 이지스시스템을 장착할 정조대왕함(광개토-Ⅲ Batch-Ⅱ 1번함).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을 탑재한 한국형 구축함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결과가 지난 7월 진수식을 통해 모습을 공개했다.
글. 함정사업부 구축함사업팀
통상 군함을 바다의 방패라고 한다. 그러나 함정사업을 하면서 군함을 만들다 보면 방패와 같은 단순한 무기체계라기보다는 다양한 무기와 군인들을 품고 있는 부대라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실제로 군함에는 함을 조종하는 인원, 레이더 등 탐지체계를 운용하는 인원, 선체와 장비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인원 등이 많게는 수백 명이 길게는 수개월간 항해하면서 생활한다. 따라서 군함에 탑재되는 백여 종의 장비가 각자의 성능을 발휘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 무기들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운용자까지 고려해서 건조해야 한다. 이러한 군함들도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 청의 함정사업부를 둘러보면 지원함, 상륙함, 잠수함, 고속함, 호위함, 구축함 등 건조하는 함 종을 팀의 이름으로 정한 여러 사업팀이 있다. 이때 지원함과 상륙함은 전투지원과 상륙작전이라는 함의 임무를 기준으로 함 종을 분류한 것이고, 잠수함은 수상함과 구분해 분류한 것이다.
고속함, 호위함, 구축함은 모두 전투함인데 이들의 분류는 부대의 규모로 판단하는 것이 이해가 편하다.
예를 들어 지상군으로 보자면 대위급 지휘관과 20~30명의 부대원으로 구성된 ‘중대’가 대위 정장이 지휘하는 고속함과 규모가 유사하다. 또 이러한 중대 3~5개가 모이면 중령이 지휘하는 ‘대대’가 되는데, 100여 명이 탑승하는 호위함이 이와 유사한 수준이다. 그리고 대대가 모여 만들어지는, 대령이 지휘하는 ‘연대’를 구축함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군함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단순히 승조하는 병력의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군함에는 다양한 무기체계가 탑재되는데, 이는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과 전투능력 자체가 향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떠한 함포와 유도탄을 탑재할 수 있는지에 따라 대함전과 대공전의 수행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가 결정된다. 또한 음파탐지기와 어뢰의 탑재 여부와 그 종류에 따라 적 잠수함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대잠전을 수행할 수 있는지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축함은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큰 전투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축함에 고성능 레이더와 대공 미사일을 이용해 적 유도탄과 항공기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이지스 전투체계, 그리고 향상된 능력의 음파탐지기를 탑재한 ‘정조대왕함’이 건조되어 7월 말, 공개됐다.
구축함의 이름은 국민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이나 호국의 위인을 선정해 해군에서 제정한다. 해군은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의 상징성을 고려해 조선후기 문화부흥, 부국강병 등의 업적을 지닌 정조대왕함으로 함명을 제정했고, 이번에 진행된 진수식에서 함명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정조대왕함은 선별된 인원을 태워, 바다에서 한반도 전체와
기동함대를 수호하는 첨단의 요새이자 성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정조대왕함의 전력명은 KDX-III Batch-II다. 이는 실전 배치되어 운용 중인 세종대왕함 등의 7,600톤급 KDX-III Batch-I을 발전시킨 것이다. 총 전장 170m, 8,200여 톤급으로 200여 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약 55km/h로 항해할 수 있다. 무장으로는 기존 Batch-I과 같은 5인치 함포는 물론, 탄도탄 대응 유도탄·대공·대함·대지·대잠 유도탄을 탑재해 수행할 수 있는 작전의 범위와 전투능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특히 최신의 이지스 전투체계와 탄도탄 요격 미사일을 탑재해 그동안은 아군에게 날아오는 미사일을 보고 추적하는 데 그쳤으나, 날아오는 적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해 적의 위협이 국민의 생활공간에 접근하기도 전에 막아낼 역량을 갖출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함대지 미사일의 탑재로 적의 공격수단이 있는 육상을 직접 공격해 위협의 근본을 제거할 수도 있다. 또한 탐지와 추적거리, 동시추적 및 추적속도 등 전반적인 대응능력이 Batch-I에 비해 진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국내에서 새로 개발한 다종의 소나센서를 통합 운용하는 통합소나체계를 탑재해 잠수함 탐지거리도 약 3배 증가할 예정이다. 이렇게 건조된 정조대왕함은 선별된 인원을 태워, 바다에서 한반도 전체와 기동함대를 수호하는 첨단의 요새이자 성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이러한 군함 존재 자체의 의의를 생각할 때, 최신예 기술을 적용해 수원 화성을 건조한 정조대왕이라는 이름은 참 잘 어울린다고 보인다.
군함과 성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성이 백성들의 생활공간을 벽으로 둘러싸고 그 위에서 군인들이 싸우는 것과 같이 정조대왕함은 국민들이 생활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에 배치되어 외세의 침입을 막는다.
또 성을 짓는 것도, 군함을 만드는 것도 모두 ‘건조(建造)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총, 칼, 전차 및 전투기와 같은 여느 무기체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다. 건조라는 단어를 그대로 풀어쓰면 ‘세워 만든다’라는 뜻이다. 이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 등을 설계하고 쌓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군함은 단순한 무기체계가 아니라 거대한 건축물과도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함은 부대다. 성과 같이 무장한 군인이 먹고 훈련하며 살아가는 생활공간이자 전투를 수행하는 전장으로서 그 자체가 요새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군함이 지키는 구역 안은 과거 백민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성벽 안과 같고, 그 밖은 외세와 싸우는 전장으로서 공간이 확연하게 나누어진다. 이렇듯 정조대왕함은 단순한 방패가 아니다. 바다에 건조되어 대한민국의 위로, 아래로 침입하는 적들을 막아내는 성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