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일, 우리 군 정찰위성이 드디어 우주 궤도에 올랐다. 우리 손으로 만든 군 정찰위성 확보사업이 마침내 성공적으로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국가 안보의 새 시대를 연 주역 5인을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지형
425사업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조 3천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군 정찰위성을 개발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총 5대의 위성을 쏘아 올려 북한의 도발 징후 및 전략표적을 감시하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425라는 명칭은 고성능 영상레이더(SAR) 탑재 위성과 전자광학(EO)·적외선(IR)탑재 위성의 SAR를 숫자 4로, EO를 숫자 25로 하여 만든 사업명칭입니다. 이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전해져오고 있어요(웃음).
이지형
질문하신 대로 우리 정찰 능력 자체는 미군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촬영한 북한 영상을 우리가 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위치 정보를 미군에 주더라도 촬영 주체인 미국이 위치를 선정하기 때문에 정확히 우리가 원하는 위치자료를 확보할 확률이 낮다고 봅니다. 때문에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표적지를 정확하게 찍고 그 영상을 빠르게 받아 작전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독자적인 위성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정병학
1호 위성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발 협약을 체결하고 난 이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주관으로 2017년 말부터 개발을 시작, 2023년 말에 발사 성공에 이르게 된 위성입니다. 이 위성은 국내 기존의 개발 기술들을 활용하고 군에서 필요로 하는 보안성, 생존성을 강화해서 만든 위성이에요. 현재 2~5호기 위성은 국방과학연구소의 주관으로 개발되고 있는 SAR위성입니다. 1호 위성의 경우 주·야간에 EO/IR(전자광학/적외선)을 이용하고 나머지 SAR 위성 같은 경우는 기상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촬영이 가능해 군사적 효용성이 뛰어난 위성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O/IR위성과 SAR위성을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아주 유용한 정찰자산이 될 것입니다.
공종필
위성의 전자광학탑재체 개발팀은 미국 현지 발사장에서 맡은 시험을 한 뒤 발사 전에 지상국과의 교신을 확인하기 위해 국내로 복귀했습니다. 저희가 긴장하면서 봤던 것은 발사 후 첫 신호를 받고 2주간 탑재체에 관련된 시험을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전자광학탑재체로 촬영한 이미지가 지상으로 잘 받아지는
것까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최종 목표였으니까요.
일반인들은 그냥 위성에서 사진을 찍어서 다운받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위성에서 찍은 영상을 압축하고 처리해서 지상국의 안테나로 정확히 전송돼야 성공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그간 개발과정에서 실험한 영상과 실제로 내려받은 이미지를 비교했는데 꽤 좋은 영상이 내려온 것 같아
무척 안도했지요.
정병학
방위사업청도 분주했습니다. 청장님, 지휘부에 계신 분들, 팀장님, 저를 포함한 관계자 간 실시간 정보공유를 하는 온라인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습니다. 새벽 3시 19분 발사를 할 시점이 됐을 때 실무자 입장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발사 당시의 광경이 너무 웅장해서 정말 경이롭더라고요. 발사 후 최종 위성과 지상국과의 교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대화방에 있던 모든 분들이 축하하면서 서로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던 그날의 분위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벅찬 감동의 기억입니다.
김규선
미국의 발사 주관사인 SpaceX(스페이스엑스)는 보통 한 달에 세 번씩 우주로 위성을 발사하는 상황을 겪습니다. 425위성이 발사대에 오르기 전 앞서 두 차례의 발사가 이뤄지고 있었던 터라, 손님이 왔나 보다 하는 분위기입니다.(웃음)
공종필
제가 조금 다른 말씀을 드리자면 독일에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같은 DLR(독일 항공우주 센터)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2006년부터 저희와 교류를 계속하고 있는데 우리와 비슷하게 본인들도 전자광탑재체를 2017년 올리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쪽은 아직 안 끝난 상황이고 우리보다 개발 속도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DLR 기관 관계자들은 군 정찰위성 발사가 대단한 일임을 잘 알고 있어요. 저희에게 축하 메일도 보내줄 만큼요.
이지형
사업을 관리하는 방위사업청 입장에서 볼 때는 전력화 일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개발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력화 일정과 연계되어 있으면 상당히 복잡해져요. 우리의 목표는 전력화 일정을 준수하는 것이 목표인데 시험 평가 중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민간(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적용되는 개발 기준과 군이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서 그랬었는데 사실 그건 표현상의 문제였지, 본질은 같았거든요. 군 시험평가부의 정확한 평가 기준과 그 표현 방법이 민간 시험평가에 적용된 사례라고 판단되며, 이 결과로 민간 시험평가의 평가기준 표현이 재정립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공종필
1호 위성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제게는 매우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위성의 성능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동시에 그 어려운 광학계·전자계를 통틀어 전자광학 탑재체를 만들어낸 동료들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꼭 말하고 싶습니다.
김규선
현장에서 일을 한 건 저희와 같은 관리자가 아니라 젊은 연구원과 실무자들입니다. 모든 칭찬과 공은 젊은 연구원과 실무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일을 던져주는 사람이었고 일을 하는 분들은 많은 젊은 연구원이었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이야기하고 싶고 이번 위성 발사 성공을 기점으로 향후 더 좋은 위성을 만들어 자주국방에 또 다른 기여를 해주길 바랍니다.
임현진
저는 일을 받아서 하는 입장이었어요.(웃음) 사실 아무리 어려운 일이어도 경험 많은 선배님들이 계시고, 조사연구가 가능한 동료들이 있어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외에 저희 팀도 발사의 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준비기간을 포함해서 10년 정도 달려왔는데 그동안 정말 다들 열심히 했고 다음에 더 멋진 위성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울컥하네요.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정병학
사업 막바지에 총참여 인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군 정찰위성 개발에 참여한 총인원은 300명 이상이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의 땀이 모여 완성한 과업이었던 거지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업을 진행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을 제대로 만난 시기는 마지막 2년 정도였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발사 성공에 이르기까지 고생해 주신 모든 연구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과 술 한잔도 못했던 게 상당히 아쉽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군 정찰위성 사업을 할 것이기 때문에 후속 사업 때는 우리 참여 인력과 맛있는 것도 먹고 회포도 꼭 풀면 좋겠습니다.
이지형
우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온 우리 연구원분들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정찰위성 사업은 소요가 2015년이었지만, 관계기관의 협의가 필요해서 사업자체는 2015년, 실질적인 EO/IR사업은 2018년에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임 팀장님들, 사업부장이셨던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님 등 사업관리 부문에서 많은 일을 해주신 덕분에 오늘의 성공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의 건배사를 소개합니다. “우리 좋은 사이오(425)!”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좋은 사이라는 걸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실 상상력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원래는 관심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23년을 우주와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까 오히려 상상력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였습니다. 위성과 우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니 그것이 공부로 이어지고 책을 보게 되고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목표와 꿈을 갖게 됐지요. 우주 산업은 전자, 기계, 물리… 모든 것이 다 결부되어 있는 종합학문입니다. 우주에 대한 관심은 곧 나의 꿈과 희망, 상상력이 더 커진다는 의미이지요.
우주는 원래 상상의 영역에 속한 분야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잠자리에 누워서 우주에 대해 상상하고 혼자 질문하며 또 답해보는 시간을 보냈었지요.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위성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인류의 화성 이주를 상상하는, 이 시대에 좀 더 큰 상상력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 왔습니다. “스스로에게 막힘 없이 질문하는 상상을 해보라”고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뉴스페이스 시대에 상상력은 더 큰 미래로 가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결국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에서 우주를 향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이 꿈꾸고, 더 많이 상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두지 않는 엉뚱한 생각들이 상상력의 출발지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상상력이란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계속 해서 다음 단계로 가게끔 북돋고 응원하는 게 선배들의 역할이고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에 ‘언제나 상상하라’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단체관람으로 영화 <스타워즈>를 보면서 우주에 대한 열망과 경험을 처음으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1호 위성은 그 시절에 가졌던 상상력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룬 첫 성공작이 아니었을까 해요. 상상력의 진정한 의미가 궁금하다면 저는 나로호 발사장에 꼭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공간 자체가 바로 상상력이거든요. 현실로 만들고 싶다면 늘 ‘상상’하고 ‘경험’하고 ‘굳은 의지’를 가지세요. 우주라는 공간을 현실화시키는 시발점도 바로 상상력이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방 우주 분야는 군 정찰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것을 기점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우리 연구원들이 품고 있는 상상력이 기본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봐요. 우리에게는 광속이나 우주비행체 등 현재 기술로는 아직 시도해 볼 수 없는 수많은 과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상상력의 기본은 원래 있던 기술들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여겨요. 우주 관련 영화, 우주박물관 등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생각, 더 큰 상상력을 키워간다면 미래가 현실이 되는 세상을 반드시 만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