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창공의 라이벌

기나긴 전쟁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맞수의 무기들이 있다. 그중 항공기에서 쟁쟁한 라이벌들은 무엇일까?

글. 남도현(군사칼럼니스트)

공중전이 시작되다

공군의 가장 큰 역할은 하늘에서 지상이나 해상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폭격기나 공격기가 마음 놓고 작전을 벌이도록 여러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가 하늘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제공권 확보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제공권을 놓고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지고는 하는데 이런 임무는 날렵한 전투기가 담당한다.

지금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원거리에서 레이더로 상대를 포착해 미사일로 전투를 벌이는, 이른바 BVR(Beyond Visual Range)이 대세지만, 근접해서 기관포로 전투를 벌이던 시절에는 상대보다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마치 곡예처럼 현란하게 비행하며 공중전을 벌였다. 그 때문에 조종사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일단 전투기의 성능이 좋아야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만든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체인 플라이어 1호가 12초 동안 36.5m를 비행했다. 그러자 유사 이래 한시도 싸움을 멈춘 적이 없던 인간들은 이 신기한 물건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무기로 이용할 생각을 했다. 당장은 성능이 부족해서 폭격 등에 사용할 수 없자 정찰이나 연락 임무 등에 투입했을 정도로 발걸음이 빨랐다.

그러다가 약 10년 후인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하늘에서 적기와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 벌어졌다. 처음에는 멀뚱멀뚱 상대를 바라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상대의 비행을 방해하는 것 외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한시도 살상과 파괴를 멈춘 적이 없었던 인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살상 방법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

전쟁 시작 보름 정도가 된 8월 15일, 정찰 비행에 나선 세르비아군의 미오드락 토미치는 오스트리아군 정찰기와 마주쳤다. 근접 견제하던 중 갑자기 상대 조종사가 권총으로 사격을 가하자 토미치도 권총으로 응사하며 현장을 이탈했다. 교전은 짧고 싱겁게 끝났지만, 이는 전쟁사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 순간이었다. 인류 최초의 공중전이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전에 특화된 전투기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들은 상대의 정찰을 막거나 반대로 아군의 정찰을 방해하는 적 전투기 요격에 나섰다. 하늘은 엔진의 굉음과 기관총 소리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처럼 전투기들은 탄생과 동시에 누가 더 뛰어난지 치열하게 경쟁했고 덕분에 전쟁사에 길이 남는 많은 라이벌이 속속 등장했다.

모의공중전을 펼치는 사진 속의 F-14(상)와 F-16(하)처럼 근접해서 전투를 펼쳤다.
ⓒ 위키피디아
1915년 블레리오 정찰기에 탑승한 미오드락 토미치(우)
ⓒ 위키피디아

하늘의 전설이 되다

그중 첫손 꼽히는 최고의 라이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럽 하늘의 제왕 자리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웅을 겨룬 독일의 Bf 109와 영국의 스피트파이어(Spitfire)다. Bf 109는 지금까지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역사상 1위부터 154위까지의 에이스1)들이 사용한 무기사의 걸작이다. 다시 말해 공중전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달성한 전투기다.

그러한 Bf 109가 호위하는 독일 폭격기들의 맹공이 이어진 1940년 영국본토항공전 당시에 스피트파이어는 절체절명 위기의 영국을 구해낸 보검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Bf 109와 스피트파이어는 전쟁 내내 치열한 대결을 펼쳤고 결국 양측의 조종사들은 상대 전투기에 대한 경외감을 감추지 않을 정도가 됐다. 가히 전투기분야의 전설들이다.

Bf 109와 스피트파이어가 레시프로(Recipro) 전투기 시대를 상징하는 라이벌이라면 미국의 F-86과 소련의 MiG-15는 제트기 시대의 최고 라이벌이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한 후 불과 3일 만에 미군은 완벽하게 제공권을 장악해 3년 후 정전 때까지 일방적으로 우위를 보였다. 그러나 적 후방인 압록강 일대에서 벌어진 공대공 전투만큼은 예외였다.

1950년 11월 8일, 갑자기 출몰한 공산군의 MiG-15는 그때까지 유엔군이 전쟁에 투입한 모든 전투기를 압도했다. 이에 미국은 이제 막 배치가 이루어지던 신예기인 F-86을 불과 한 달 만에 한반도에 전개시켰다. 이후 F-86과 MiG-15는 이른바 ‘미그 앨리’라 불리게 되는 한만 국경 상공에서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 둘이 라이벌이 된 데는 당대 최고를 다투던 성능도 그렇지만 극적인 요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선 비밀스럽게 개발이 이루어지고 등장도 마치 영화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다. 거기에 더해 미국과 소련 최초의 후퇴익 제트 전투기이었던 이들은 그 모양이 마치 한 사람이 설계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외형이 너무 닮았다.

어느덧 최초의 공중전이 벌어진 지 한 세기가 지났고 그사이에 많은 전투기가 등장했다. 사실 Bf 109와 스피트파이어, F-86과 MiG-15의 전성기는 상당히 짧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최고의 라이벌로 여전히 명성을 날리는 이유는 실전에서의 활약상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면 무기의 명성은 단지 성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전투기 역사 최고의 라이벌인 스피트파이어(상)와 Bf 109(하)의 합성 사진
ⓒ Imperial War Museum
제트 전투기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막한 라이벌 F-86(상)과 MiG-15(하)
ⓒ 위키피디아
공대공 전투에서 5기 이상의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를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