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궁궐터를 찾아
경주는 법당의 화단을 정리하다가도, 철거 예정지의 돌무더기 사이에서도 유물이 발견되는 도시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유물이 발견되다 보니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속속 발견되는 유물은 대부분 신라시대의 것이다.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첨성대를 먼저 떠올린다. 별을 관측하기 위해 세웠다는 첨성대는 그 자체로 경주의 천 년 역사를 품고 있다. 첨성대를 벗어나 살짝 시야를 틀면 나무가 우거진 낮은 언덕이 보인다. 이곳을 대부분의 사람은 언덕인가 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곳은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도성인 월성이다.
월성은 신월성, 반월성 등 다양하게 이름으로 불린다. 공식 명칭은 월성으로, 지형이 반달처럼 생겨 신라시대부터 불려 온 이름이다. 신월성은 초승달을 뜻하는데 주로 문헌과 설화 속에서 등장한다. 반월성은 조선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뜻은 반달 모양을 의미한다. 하나의 장소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건 그만큼
긴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월성 주변에 몇 해 전 공개된 장소가 해자다. 해자는 성이나 요충지를 파 물로 채운 인공이나 자연의 도랑으로, 외부 침입을 방어하는 시설이다. 자연해자와 인공해자로 나뉘며, 진주성의 남강이 대표적인 자연해자다. 경주의 월성에는 두 형태 모두가 존재한다. 남쪽으로는 남천이 흐르며 자연해자 역할을 했고,
첨성대가 보이는 북쪽으로는 인공해자가 조성되어 있다. 이 인공해자는 1984년부터 장기간 발굴이 진행되다가 2022년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발굴 결과 해자는 시대에 따라 두 가지 형태로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땅을 파서 물을 채운 수혈해자였으나 통일 이후에는 그 위에 석축을 쌓아 물을
가둔 석축해자로 발전했다. 통일 이후의 해자는 단순 방어를 넘어 조경의 의미까지 더해진 구조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자의 구조 변화는 곧 신라 왕조의 위상 변화와 방어 전략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해자에서는 도끼, 칼, 못과 같은 철제유물이 나왔다. 또한 1,600년 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방패 2점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해자의 존재는 월성이 단순한 언덕이 아닌 고대 왕궁이자 국가의 핵심 거점이었음을 증명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해석을 뒤흔드는 발굴 결과가 공개됐다. 2025년 2월, 동궁과 월지 주변에서 대규모 궁궐터가 확인된 것이다. 그동안 동궁과 월지가 궁궐 외곽에 딸린 부속 공간으로 여겨졌으나, 이번 발견으로 동편 일대가 태자의 거처이자 정무 공간인 진정한 ‘동궁’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기존에
동궁으로 추정되었던 월지 서편의 대형 건물터는 오히려 왕의 정무 공간, 즉 ‘정전(正殿)’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곧 월성 자체가 통일 이후에는 기능이 축소됐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즉 경주의 권력 중심축이 월성에서 월지 일대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주 월성의 해자는 자연해자와
인공해자를 모두 갖췄다.
무기마저 아름답다
경주는 수십 년간 우리나라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학여행 1번지다.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로 올라간다. 당시 학생들은 개성, 금강산과 함께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 흐름은 해방 후까지 이어져 1980년대까지 경주는 빠지지 않는 수학여행지가 됐다. 이 여정에서 대표 장소가
국립경주박물관이다.
1975년 문을 연 국립경주박물관은 경복궁 경회루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건축물이다. 외관은 세월의 흔적이 짙지만 내부는 2020년 초 전면 리뉴얼을 거쳐 깔끔한 현대식 전시 공간을 바뀌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신라의 흔적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철의 왕국 신라의 기술력과 권력을 엿볼 수 있었다.
박물관을 걷다 눈에 띄는 유물은 판갑옷이다. 긴 철판 지판들을 못이나 가죽끈으로 연결해 만든 이 갑옷은 4세기 초 신라와 가야에서만 발견된 형태다. 강력한 방어력, 뛰어난 제철 기술, 신분 상징성, 넓은 보호 범위 등에서 우수성을 보였으며, 동아시아 고대 갑옷 문화의 중요한 발전 단계로 평가받고 있다. 말을
위한 철제 보호구도 출토됐다. 말의 몸을 감싸는 철판 장식은 단순한 장비를 넘어서 신라의 조직적인 군사체계와 기술력을 증명한다. 전쟁터에서의 철은 강력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신라의 칼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가 달린 ‘고리자루 큰칼’이다. 이 외에도 손잡이와 칼끝에 고사리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진 칼들도 있다. 이들은 실용적인 무기이기보다는 의례용이나 상징적인 장신구에 가깝다. 그러나 정밀한 제작 기술만큼은 당시 신라의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특히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칼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이 있다. 칼과 칼집에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 여기서 ‘이사’는 인명을, ‘지’는 이름 끝에 붙는 존칭, ‘왕’은 지위를 의미한다. 이사지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 누구인지
유추를 못하지만,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의 신라 귀족이나 마립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사지왕이 여성적 부장품으로 인해 여성일 거라는 의견도 팽배하게 맞서고 있어 금관총은 아직 피장자가 명확하지 않아 ‘총’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칼은 신라 고분 출토품 중 유일하게 주인의
이름이 확인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전시실을 돌다 보면 금관 못지않은 화려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말안장 뒷가리개다. 황남대총과 금관총에서 출토된 말안장 뒷가리개에는 금동판에 용, 봉황, 덩굴무늬 등이 투각기법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여기에 금·은 상감기법으로 은선과 금선이 감겨 있다. 특히 오색찬란한 색상을 어디서 왔을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데 이는 비단벌레 날개를 장식으로 사용한 결과다. 수천 마리의 비단벌레 날개가 촘촘하게 뒤덮여 화려한 초록빛을 뽐낸다. 황남대총의 경우 약 2,000마리, 금관총은 3,000~4,000마리의 비단벌레 날개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눈부신 초록빛은 장인의 손길을 넘어 신라 귀족의 권위와 부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은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오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열릴 예정인 APEC 정상회의의 만찬장으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결정된 것. 한국의 전통문화와 유산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방문 전 일부 전시관은 공사 중일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좋다.



국립경주박물관
-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
· 누리집 :
-
· 개관시간 :
10시~18시(입장마감 17시 30분까지)
-
· 휴관일 :
매년(1월 1일, 설·추석 당일)
-
· 입장료 :
무료
놓치면 곤란한 곳 신라천년서고
박물관을 찾았다면 2022년에 개관한 신라천년서고를 빼놓지 말자. 과거 수장고로 사용되던 건물을 재탄생시킨 이곳은 학습보다는 휴식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형 도서관이다. 월지관 뒤편, 대나무 숲 아래 조용히 자리 잡은 이 도서관은 방문객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제공한다. 탁 트인 창 너머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함께,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기 좋은 환경이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사진 명소’로도 입소문을 타며, 박물관을 둘러보다 가벼운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입구에는 ‘대화 가능’, ‘음료 섭취 가능’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즐길 거리
이런 곳도 있다!
교촌한옥마을에 2023년 다소 낯선 공간 하나가 문을 열었다. 바로 숭문대. <삼국사기>에 등장한 왕실 도서 보관·관리하는 장소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곳에서는 월성 북쪽 성벽 아래의 해자에서 발견된 동물 뼈, 씨앗, 목제 유물 등을 비롯해 해자의 축조 과정과 구조, 주변 건축물의 변화 등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금관총 보존전시관과 신라고분정보센터도 함께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금관총 보존전시관은 최초의 금관이 발견된 곳으로, 고분의 작업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와 연결된 신라고분정보센터에서는 금관총에서 본 것들을 실감나게 재현한 영상, 유물을 3D 스캔으로 복원한 콘텐츠 등 고분을 다각도로
즐길 수 있다. 그 옆으로 올해 문을 연 오아르미술관이 있다. 유현준 건축가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통창을 통해 고분을 하나의 작품처럼 볼 수 있다.



고분도 식후경
1960년대 이후 경주는 한우 사육 두수가 전국 1위를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높은 사육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경주에선 한우가 싸다’라는 말이 종종 들린다. 이런 경주에서 구워 먹는 전통적인 방식도 있지만 국수로도 즐길 수 있다. 한우 사골로 우려낸 육수에 얇게 저민 한우가 올라가
기존의 칼국수와는 다른 묵직한 맛을 낸다.
든든한 한 끼를 해결했다면 다음은 후식 차례. 경주 황리단길에는 ‘경주스러움’을 입은 다양한 디저트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일명 ‘천년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와 석굴암 석가여래좌상의 얼굴을 본뜬 빵, 문화재 모양을 본뜬 초콜릿 등 경주 고유의 역사와 감성을 담은 간식들이 가득하다. 황리단길의
북적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노동동으로 향해보자. 고분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에서 맛좋은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