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일 게다.
사람을 해치는 전쟁이 사람에게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Writer_ 정태겸 작가
전쟁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결코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가능성조차 만들지 말아야 한다. 물론 평화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기도 한다. 전쟁을 치르지 않더라도 유사시에는 그 어떤 적이라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일어나서는 안 될 그 상황에 대비해 모든 국가는 정예 병력을 갖추려 하고, 그들을 뒷받침할 기술과 인프라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물건 중 상당수가 전쟁을 위해 혹은 전쟁 중에 개발된 것이라는 점을 봐도 그렇다. “이것도 전쟁 중에 만들어진 거였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생각지 못한 많은 물건이 군의 기술에서 탄생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비닐 랩이다. 투명한 비닐로 만든 랩은 원래 전쟁용품이었다. 총알과 화약을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개발했다. 언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총알이나 화약에 물에 젖게 되면 적군과의 응사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랩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랩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두 기술자가 놀러갈 때 채소를 랩으로 포장해 서 갔는데, 보존성이 매우 뛰어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두 기술자가 회사를 설립했고,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크린랩컴퍼니’가 됐다.
버터를 대신하는 마가린도 전쟁의 산물이다. 1800년대 잦은 전쟁을 치러야 했던 프랑스는 전장에서 금세 상하는 버터로 골머리를 앓았다. 전쟁 중에는 지방을 섭취해야만 에너지원을 얻어 전투에 나설 수 있지만, 사냥 등의 행위를 할 수 없기에 지방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당시만 해도 최고의 난제 중 하나였다. 휴대하기 편하면서도 버터를 대신할 만한 지방 공급원이 절실한 상황. 나폴레옹 3세는 값이 싸고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버터의 대용품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때 채택된 것이 화학자 이폴리트메주 무리에가 개발한 마가린이다. 그는 파리 근교의 뱅센 지방에 있는 나폴레옹 3세의 개인농장에서 가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먹이가 부족하면 우유의 생산량은 감소하지만 지방의 양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폴레옹 3세의 공모가 발표된 이후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하는 연구를 거듭해 성공하게 되고, 여기에 ‘올레오마가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때가 1869년이다. 원래 마가린은 우유에서 소기름을 추출한 동물성 기름이었던 것. 이후 높아지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물성 기름으로 제조하게 된다.
피복은 전쟁을 바탕으로 진화를 거듭한 물건이다. 그중에서도 워커는 전쟁에 최적화된 신발이다. 보병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쉼 없이 걷거나 적진을 향해 뛰어갈 때 발목이 쉬이 꺾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역사상 최초의 워커는 로마 제국의 병사가 신던 신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개량의 개량을 거듭했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멈추지 않는 유행처럼 돌아오는 트렌치 코트 역시 전쟁이 낳은 패션 아이템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을 벌이던 영국의 장교가 추위를 이기기 위해 입은 것이 트렌치 코트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트렌치(trench)라는 단어 자체가 참호를 의미하는 걸 보면 이 코트의 용도가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이후 이 코트는 영국 육군에서 널리 이용되는 아이템으로 정착됐다. 패션 아이템으로 거듭난 것은 ‘토머스 버버리’라는 인물에 의해서였다. 그는 영국 육군의 승인을 받아 기존에 나와 있던 레인코트를 개량해 내놓았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트렌치 코트의 시작이다. 그가 판매한 코트가 이른바 ‘바바리 코트’라 불리는 그 코트다.
우리에게 익숙한 가디건도 전쟁 중에 만들어졌다. 가디건의 바른 표현은 카디건이다. 때는 1854년. 흑해 연안의 패권을 두고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 등이 첨예하게 대립한 끝에 전쟁이 터졌다. 이것이 바로 크림전쟁이다. 당시 연합군 측에 합류한 영국의 귀족 카디건 백작은 전장에서 연합군 전사자와 부상자를 숱하게 마주해야 했다. 부상자는 상처가 심해 니트를 쉽게 입고 벗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카디건 백작은 부상병이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니트를 생각해 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카디건이 된다. 이후 프랑스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카디건의 디자인을 수려하게 만들어내면서 비로소 카디건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아이템으로 자리하게 됐다.
군수물자는 전쟁에 필요한 물품의 특성상 보호와 보관, 보존을 특징으로 한다. 처음에는 전쟁을 위한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으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이런 특징 때문이었다. 지금도 우리가 먹고 일하고 자는 순간에도 수많은 신기술이 군용으로 개발되고 있다. 전쟁에서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올 것이다. 비닐 랩이 그랬듯이, 티슈가 필수품이 됐듯이, 또 트렌치 코트가 패션의 잇템이 되었듯이, 그렇게 우리의 삶도 바뀌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