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무심코 지나갈 수도 있을법한 공간. 나무들로 둘러싸여 그 안에 역사의 흔적을 남겨둔 공간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한국전쟁 이후 사용하지 못하는 탄약을 재정비하기 위해 지어진 탄약정비공장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작년 리모델링 이후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과거의 상흔을 치유하며, 평화로운 미래를 그리는 탄약정비공장이 강원도 홍천에 있다.
Photo_ 강원국제예술제 사업운영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곳곳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을 달래기도 잠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전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 행정구인 강원도 역시 한국전쟁의 흔적을 남겨둔 채 또다시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1973년 10월 준공된 홍천 탄약정비공장은 한국전쟁 당시 겉이 녹슬고 부식돼 사용하지 못하는 재래식 탄약을 전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정비하기 위해 지어졌다. 과거 1군수지원사령부 예하부대에서 사용했던 탄약정비공장에서는 소구경 탄약부터 대구경 탄환까지 약 7~800여 톤의 탄약을 한 해에 정비했을 정도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돌아갔던 시설이었다. 이후에는 홍천 제11기계화보병사단 탄약대대의 탄약정비공장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신형 탄약이 보급되고 난 뒤 재래식 탄약 정비에 대한 어려움이 커지자 탄약정비공장에 대한 사용이 줄어들게 됐고 작년 새롭게 단장하기 전까지 유휴공간으로 더 이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공간이 됐다.
지금은 올해 진행될 강원국제예술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인지라 많은 사람들의 발길은 잠시 끊긴 상태이다.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선보일지 탄약정비공장의 변신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는 변화를 꿈꾸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탄약정비공장은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이었다.
유휴공간으로 남아있던 탄약정비공장에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닿을 수 있게 된 것은 일 년 전, 홍천군 내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예술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이는 강원국제예술제 강원작가전을 통해 본격화됐는데, 그 덕분에 탄약정비공장은 한국전쟁 70년의 긴 시간을 넘어 군사시설을 예술 공원화한 국내 최초의 공간이 됐다.
강원도에 연고가 있는 작가 14명은 ‘풀 메탈 자켓, 자유와 관용의 딜레마’라는 제목의 전시를 통해 이곳에 남아있는 전쟁과 분쟁의 상흔을 문화와 예술로 치유했다. 탄약정비공장 부지와 건물 등의 기존 틀은 그대로 살려둔 채 약 6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해 전쟁과 평화, 자유와 치유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참여 작가와 지역주민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있다. 홍천 출신의 박대근 작가와 능평리 마을 주민 30명이 협업한 작품 ‘空-토기 Empty-Pottery’는 약 2톤의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작품으로 공동체의 정착 생활부터 함께한 토기와 공동체의 파괴를 암시하는 탄알의 형상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높이는 7m에 달하는데, 강원작가전 당시 주민들이 보름 동안 이곳에서 약 2톤가량의 볏짚을 일일이 땋아 만들어 더욱 의미가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작품은 강원작가전이 끝난 뒤 탄약정비공장을 떠났다. ‘空-토기 Empty-Pottery’ 역시 현재는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공장 외벽에 그려진 김수용 작가의 ‘또 다른 위장’과 전시장 내 이상원 작가의 ‘기쁜 소식’, 전시장 입구에 붙여진 정창민 작가의 ‘반짝거리며 매끄러운’만이 탄약정비공장에 남아있다.
작년, 탄약정비공장에서 진행됐던 강원국제예술제 강원작가전에는 총 1만 명의 관객이 방문해 예술로써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유했다. 유휴공간이었던 탄약정비공장은 1군사령부 강원시설단과 제11기계화 보병사단의 도움으로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으며, 지역 주민과의 협업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키워 군·관·민이 함께하는 지역 예술제로 발돋움했다. 특히 탄약정비공장에서 근무했던 퇴역군인들도 다수 방문해 지난 45년간 전쟁을 대비했던 공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며 이곳의 변화를 몸소 느꼈다.
탄약정비공장이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군·관·민의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총알 대신 물감으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은 덕분에 더 이상 탄약정비공장은 슬픔 속에 잠들지 않은 채 평화를 꿈꾸는 공간이 됐다.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 탄약정비공장에서는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공간의 상처를 예술로 아물게 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 | 홍천 탄약정비공장은 홍천터미널에서 두루봉승강장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탄 뒤 도보로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주변이 산과 논으로 둘러싸여 있어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기에 좋다. |
주소 |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결운리 36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