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더 진화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타고난 민첩함을 통해 적으로부터 대피하는 것이지만, 모든 동물의 행동이 재빠르진 않기에 다른 방법도 필요하다. 피하기 이전에, 자신의 몸이 아예 적의 눈에 띄지 않게 한다면 어떨까? 바다에 사는 생명체, ‘문어’는 몸 색깔이나 무늬를 주위와 비슷하게 바꾸어가며 다른 바다생물의 공격을 피해왔다. 문어의 변화무쌍한 위장술의 세계를 함께 살펴보자.
위장술의 대명사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카멜레온을 제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사실, 카멜레온의 세포는 자율신경계에 속해 우리가 심장의 움직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카멜레온도 자기 마음대로 색깔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의미의 진정한 ‘카멜레온’은 바로 바다에 사는 문어에 해당한다. 자신의 몸을 위장이라는 목적에 맞게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문어는 어떻게 위장술의 귀재가 된 것일까? 그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연체동물, 일명 두족류라고 불리는 동물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한다. 두족류는 과거에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던 형태에서 오징어로, 오징어에서 또 문어로 점점 진화했다. 문어는 오징어가 가지고 있는 포식촉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헤엄칠 수도 없어 몸을 보호하는 위장에서 더 특화된 능력을 보여주었다. 오징어보다 더 세밀하고 다양하게 피부를 표현하며 몸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다. 인간의 눈보다 발달한 빛 감지 능력으로 주변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해 따라하는 똑똑한 동물, 문어. 진정한 카멜레온의 면모를 톡톡히 드러냈다.
문어의 한자명은 ‘文魚’, ‘글을 아는 물고기’라는 뜻답게 그 지능이 뛰어나다. 문어는 주변에 위협적인 요소가 있다고 느끼면 몸의 색깔과 모양을 즉각 바꾼다. 그 시간이 채 1초도 걸리지 않을 정도. 똑똑한 문어 중에서도 유독 가장 다양하게 모습을 바꿀 줄 아는 것은 1988년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흉내 문어’다. 흉내 문어는 주변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모습 수십 가지를 흉내 낸다. 강력한 포식자의 모습을 흉내 내거나 심지어 자기를 공격하는 생물에 맞춰 그 생물이 가장 무서워하는 천적의 모습을 흉내 내기도 한다. 문어는 뼈가 없는 연체동물이다 보니 좁은 공에도 큰 몸을 우겨서 들어가 숨을 수 있는데, 코코넛 문어는 맨몸으로 다니다가도 숨어야 할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면 양다리로 조개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을 두 쪽으로 집어 포개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문어는 단순히 자신의 몸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도구를 사용해 숨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천적을 만났을 때 먹물을 뿜고 도망가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문어는 높은 수준의 지능을 통해 ‘똑똑한 숨바꼭질’을 펼치며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두족류가 주변 사물과 비슷한 색으로 몸을 변화시키는 원리를 보면, 이들에게는 다른 동물과 달리 몸속에서 색소를 생산하고 보유하는 색소포가 체내에 있는 근육 및 신경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뇌에서 신호를 보내는 즉시 대응하게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휴스턴 대학,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샴페인캠퍼스 공동연구진은 이 두족류의 색소포를 그대로 재현한 모델링 자료를 만들어 주변 환경과 온도에 따라 색을 바꾸는 첨단 위장 물질 개발에 성공했다. 이러한 위장기술은 철저한 보안과 위장이 필요한 군복과 같은 군사용은 물론 산업용이나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응용될 예정이다. 또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도 두족류의 피부 질감을 연구하여 신소재 형상을 변화하는데 사용한 3D 범프를 통해 코팅에 내장된 섬유에 공기를 주입하면 새롭게 프로그래밍한 형태로 변화하도록 개발했다. 이는 앞으로 자연환경을 조사하거나 동물을 관찰 연구하는데 사용할 로봇의 표면을 덮는 소재로 쓰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위험 지역에 접근해야 하는 군사용 로봇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