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람

VOL 104

NOVEMBER · DECEMBER 2020
홈 아이콘 Add Culture 지구에게 배우다

1초에 최대 90번의 날갯짓을 하는
공중의 헬리콥터, 벌새

비행 기술을 두고 말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단연코 최고 반열에 있는 생물체가 있다. 위용을 자랑하며 날아다니는 독수리도 아니고, 밤의 전령인 부엉이도 아니다. 손가락에 올려놓아도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작은 새, 바로 ‘벌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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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작은 조류, 벌새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쉬이 떠오르진 않겠지만 벌과 같이 작고 꽃의 꿀을 먹고 산다는 ‘벌새’가 그 주인공이다. 벌새는 몸이 대체로 작은 편이며, 가장 작은 것은 길이가 약 5cm, 체중이 2g 정도, 이들 중 가장 큰 것도 21cm, 24g에 달할 뿐이다. 500원짜리 동전보다도 작다고 하니 언뜻 보면 곤충이라 착각할 수 있다. 이들은 빠른 날갯짓으로도 유명한데, 1초에 50~80번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날개를 저어 벌처럼 ‘윙윙’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어로는 ‘Humming bird(윙윙 대는 새)’라 불린다. 벌새는 이 빠른 날갯짓과 긴 부리를 이용해 꽃의 꿀을 빨아먹는다. 즉, 꽃에 앉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정지한 상태로 날며 부리를 꽃에 향하게 한 다음 정확히 앞으로 날아 부리를 꽃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정지 비행’은 실로 조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능력이다. 여러모로 새보다는 곤충에 가까운 조건을 가진 벌새, 이들은 과연 어떻게 일반적인 새들은 불가능한 ‘빠른 날갯짓’과 ‘정지 비행’이 가능한 걸까?

빠른 날갯짓과 비행의 비밀

이 작은 새는 빠른 ‘날갯짓’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나는’ 동물이기도 하다. 평소 시속 90km로 날아다니며, 낙하할 때는 시속 100km의 엄청난 속도로 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듯 엄청난 속도를 날면서 어떻게 정지 비행이 가능한 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비밀은 날갯짓의 형태에 있다. 벌새는 날개를 아래로 젓는 것만으로 추진력을 얻는 조류들과 달리 아래, 위 두 날갯짓 모두 추진력을 내는 것은 물론, 앞뒤 날갯짓도 추진력을 갖고 있다. 벌새의 날개는 어깨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으며, 다른 조류들은 날개의 중간이 활처럼 휘어져 있는 반면 일자 형태로 올곧게 뻗어있다. 이런 날개구조가 양력과 추진력을 적절히 제어해 정지 비행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체중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가슴에 발달되어 있는 근육이 빠른 날갯짓을 지탱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가슴 근육만큼이나 벌새의 신체 부피를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부위가 심장이다. 벌새의 심장은 체구에 비해 크다. 그만큼 심장 박동도 빠르다. 재빠른 움직임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이 보통 분당 78회 심박 수를 가졌다면, 비행하는 벌새는 전형적으로 1,200번의 심박수를 지닌다. 이 과정에서 열을 발산되며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벌새는 자기 몸무게만큼의 꿀을 먹어야 날 수 있다. 이는 마치 사람이 하루에 1,300개의 햄버거를 먹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또한 12시간씩 잠을 자며 활동하는 시간을 줄여 체내의 에너지를 조절한다.

정교한 로봇 비행체 개발에 도움

이처럼 작은 몸체에서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 발휘되는 탓에 벌새는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에게 탐구의 대상이었다. 특히 이들을 모방해 기술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었는데, 이를 ‘생체모방 공학’ 또는 ‘생체모방 기술’이라 한다. ‘생체모방(biomimetics)’은 자연을 닮고 싶어 하는 인간의 노력이 소재나 기계장치 등으로 구현된 기술을 말한다. 벌새의 경우 그 독특한 비행 기술에 주목해 로봇으로 구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크기, 날갯짓, 정지 비행 등의 특징을 바탕으로 전투 시 눈에 띄지 않게 적진을 탐색하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 시에 구출하지 못한 사람들 또는 범죄자 수색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이 발표한 ‘국방생체모방로봇 기술로드맵’에 따르면 우리 군 역시 전장 상황에서 정보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2033년까지 뛰어오르거나 벽을 타고 오르는 5cm 크기의 정찰용 생체모방 로봇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2년에 KAIST에서 공벌레를 모방한 정찰로봇을 만들었던 바, 앞으로도 더욱 기대되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생체모방 로봇은 미래 전장 판도를 뒤바꿀 ‘10대 차세대 게임 체인저’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벌새가 로봇을 재탄생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