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를 바꾼
야누스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다. 전쟁의 역사는 화약의 등장을 계기로 혁명에 가까운 변곡점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굴곡진 변화만큼 화약은 때로는 이롭고 때로는 해롭게 인류에 영향을 끼쳐왔다.

Writer_ 정태겸 작가

화약의 발상지나 발명 과정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중국에서 개발했다는 점만은 큰 이견이 없다.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화약의 용도는 무기가 아닌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연단술의 결과물이다. 연단술은 중국의 도교사상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다. 서양의 연금술과는 다른 개념으로,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을 불로장생의 약으로 생각했다. 특정한 방법을 사용해 귀금속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도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인 노자가 활동하던 기원전 350년경에는 당대의 지식인과 신선술을 연마하는 방사들에 의해 이런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연단술은 단약을 만들어 불로장생을 이루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 단약 개발의 결과 중 하나로 발명하게 된 게 바로 화약이다. 당나라 시대의 연단술사이자 의사였던 손사막은 <단경 (丹經)>의 ‘내복유황법’에서 복화(伏火) 제조법을 서술해 놓았다. 그 제조법의 재료가 바로 황, 초석, 목탄 등이다. 지금의 흑색 화약과 매우 비슷한 조성물이다. ‘화약’이라는 단어도 도교의 경전을 집대성해 1445년에 발간한 <도장(道藏)>에서 처음 등장한다.

탄생의 과정도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화약은 약재의 일종으로 분류됐다. 1596년 간행된 <본초강목>의 한 부분을 보면, “피부병과 살충에 효과가 있고 습기와 전염병의 일종인 온역을 제거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다시 말해, 화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물건이었던 것. 그런데 이 약재가 가진 폭발력은 결국 대량 살상을 위한 물건으로 활용되기에 이른다. 묘한 아이러니다.

이 물질이 군사무기로 사용된 것은 8세기 즈음이다. <신당서>나 <구국지>에 ‘방사책으로 병영을 불살랐다’라든가 ‘날아다니는 불을 쏘아 성문을 불태웠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송나라가 들어서고부터는 화약의 무기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중국의 4대 발명품이라고도 부르는 화약이 서구로 전해지는 건 몽골의 유럽 원정이 계기가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쪽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했다는 ‘희랍의 불’을 로저 베이컨이 재현해 화약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내세우고 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화약이 유럽에서 그 위력을 뽐내자 유럽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는 점이다. 화약은 견고한 성을 뚫었고, 튼튼한 성벽에 의지한 방어전에 익숙했던 유럽인은 그 무시무시한 화력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매년 명절마다 화약을 터뜨리면서 중국인은 액운이나 악한 기운이 모두 물러나기를 빌었다. 놀이용 불꽃도 현대에 들어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규모도 커지고 굉장히 화려해졌다. 불꽃은 연소와 불꽃반응으로 구현되는데, 스펙트럼 분석에 따라 여러 물질을 연소시켜 빨강, 노랑, 녹색 등의 특정 파장의 빛을 방출하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이제는 매년 가을 여의도 일대에서 열리는 불꽃축제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고, 올림픽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도 개·폐막식에 불꽃놀이가 단골로 등장한다.

화약을 이용한 일상용품 중에서 생일에 터뜨리는 폭죽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제는 생일날 케이크와 함께 축하노래를 부르고 마지막에 소형 폭죽을 터뜨리는 게 관례처럼 자리 잡았다. 이제는 그만큼 화약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자동차 충돌사고 시를 대비한 에어백이나 안전벨트도 그 작동방식을 살펴보면 화약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충돌이 감지되는 순간 빠르게 에어백이 작동되기 위해서는 결국 폭발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때 소량의 화약이 터지면서 에어백을 전개시키는 것이다. 안전벨트의 경우 사람의 몸이 튕겨지지 않도록 잡아당기는 역할을 한다. 이때에도 안전벨트 안쪽에서 화약이 터지면서 벨트를 순간적으로 당기도록 한다. 이때 당기는 힘이 무척 강해서 간혹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지만, 탑승자가 중상이나 사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차선책이라고 볼 수 있다.

광산이나 터널 공사에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도 화약을 이용한 물건이다. 낡은 건물을 허물 때에도 화약은 매우 유용하다. 일일이 해체하는 공법으로는 수일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화약을 이용하면 단 몇 초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철거 방식에 비해 소음이나 분진이 줄고 비용도 적게 들어서 아주 효율적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금속을 접합할 때에도 화약이 쓰인다. 화약의 폭발로 인한 충격에너지를 이용하는 클래딩(Cladding) 작업이다. 이렇게 만든 금속은 높은 내구성이 필요한 화학 플랜트나 발전소 설비에 사용된다. 화약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장 결석을 제거하는 의학 시술에 화약을 사용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사람에게 이롭게 하며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나가는 화약의 변신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