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더 멀리

생각의 차이가 일류를 만든다

사고력

바야흐로 우리는 모두 현재 거대한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 이것은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AI 메타노믹스 신세계다. AI와 관련한 새로운 직업군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향후 검색은 사라진다는 전망과 함께 20세기를 이끌어 온 전문가 시장의 해체도 눈앞에 다가서고 있다.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던 예술계에선 인간만이 창의적이란 대전제도 무너지고 있다.

글. 이동규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 인공지능 삼국지

시장에선 기대와 우려 모두 팽팽하다. AI 기술이 너무나 강력한 건 사실이지만 저작권 침해 등 사회문화적·윤리도덕적 측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비판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언어·인지능력의 심각한 발달 장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이미 봇물은 터졌다. 현재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의 3가지 큰 문제는 환각(Hallucination), 보안, 고비용의 문제다.

과거 지식의 시대가 ‘아는 것이 힘’이었다면, 현재 검색의 시대는 ‘찾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미래 AI 생성기술 시대엔 질문의 품질, 즉 ‘묻는 것이 힘’이다. 이른바 ‘프롬프트(Prompt)’ 시대의 도래다.

# 탈(脫)전공의 시대

“한 우물만 파라.” 과거 이 말은 점점 더 위험한 제안이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옛 어른들의 말씀이던 못하는 게 없는 재주가 많은 사람도 굶어 죽는다고도 했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해라”는 강력한 주문 앞에서 맥을 추리기도 어려웠다. 특히 고질적인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 풍토에서 어쩌다 발견되는 다재다능한 인재는 유별나기 십상이었다.

과거 분석(Analysis)이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세상에선 과학은 정답만을 찾고, 공학은 해답만을 찾고, 인문학은 관념의 놀이터였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적 화두는 ‘낯선 것들의 연결’이다. 그래서 이들의 연결과 결합을 리드해갈 ‘융합지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br>
특히 학문, 산업, 기술의 칸막이가 판판이 깨져나가는 AI 초융합경제 시대에 ‘전공(專攻)’이란 단어는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2023 CES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혁명적 융합기술이 여는 새로운 미래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수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융복합적 이슈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전히 “제 전공이 아닌데요”만 읊고 있다. 

# 통섭형 인재를 키워라

향후 초강력 AI를 필두로 한 파괴적 신기술은 수많은 오래된 직업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나마 자신이 쌓아 올린 지식과 정보도 대부분 구닥다리 무용지식(Obsoledge)으로 해 버릴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이는 평생 열심히 파왔던 우물이 한순간에 흙으로 메워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서 딥러닝의 대부라 불리는 요슈아 벤지오 교수는 “깊고 좁게 알면 AI에 먹힌다”고 잘라 말했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미래 인재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국내 상당수 기업의 인사관리 또한 깊이와 넓이를 겸비한 인재를 구하고 있다. 자칭 전문가라 칭하며 자신과 다른 분야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이 오픈 이노베이션과 디지털 대전환(DX) 시대에 성공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일찍이 선진기업들은 기존의 한 우물만 파온 종적 ‘I자형’ 인재와는 다른 횡적 연결을 중시하는 소위 ‘T자형’ 인재를 중시해 왔다. 그러나 작금에 새롭게 부상하는 ‘인재 4.0’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통섭형·융합형 인재를 겨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좌·우뇌 통합형, 상상력이 풍부하고 박식한 폴리매스(Polymath), 브리꼴레르(Bricoleur), 에디톨로지스트(Editologist) 등이 뜨고 있다. 기존에 한 우물만 파온 기능적 전문가 계층과는 확연히 다른 융합적 사고를 가진 새로운 인간형이다.

특히 통섭(統攝·Consilience)에서 ‘섭(攝)’이란 글자에는 귀(耳)가 세 개나 달려있어 그 의미가 자못 심장하다. 최근 새로운 돌파구로 ‘탈학습(脫學習·Unlearning)’이 강조되고, 성실한 모범생보다 엉뚱한 괴짜(Geek)들이 뜨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배운 것을 버리고 아는 것을 역분해하는 이러한 과정들은 고정관념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자 기존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다. 

# 창조란 '최초의 생각'이다

한편 상대적으로 인간은 과소 평가되고 있다. 챗GPT에 물어봤다. “인공지능으로서 당신이 가장 어려운 것은?” 돌아온 대답은 ‘감정 이해’였다. AI와 인간의 가장 근본적 차이는 윤리·도덕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육체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첫눈에 반하는 떨리는 사랑의 시작점인 ‘소름’은 물론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들은 너무나 지능적이라 바보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유머, 농담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우리는 “주판은 사라졌지만 수학은 남았다”는 말에서 어떤 영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죽었다 깨도 인간을 능가할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거다. 요컨대, 인공지능은 가능해도 인공지혜는 불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인간만이 가능한 대체불가능한 일을 찾는 것이 지혜의 첩경이다. 이를 위해서는 늘 생각의 물구나무서기와 같은 역발상 훈련, 긍정적으로 부정하는 영감 훈련 등을 통해 자신만의 유니크한 생각근육과 사고의 품질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3력(力)’, 즉 창의력·상상력·공감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단 본격적으로 펼쳐질 AI 대혁명 시대에 인간의 생존 자격증은 획기적 창의성과 입체적 상상력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오히려 인간만이 지닌 아날로그적 상상력이 그 어떤 덕목보다 크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상상은 기존의 금기에 대한 도전이자 기분 좋은 반란이다. 특히 공감(Empathy)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세계는 인공지능이 접근 불가한 인간만의 고유영역이다. 미래에 공감, 감동, 감격 등 인간의 깊은 심연의 바닥을 때리는 것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 던져진 질문들

원숭이가 아무리 진화해도 인간이 될 수 없듯이 AI나 스마트로봇은 결코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최고급 하인을 부리는 주인 몸값은 천정부지가 될 것이다. 오랜 경험에서 발효된 안목과 지혜는 소멸시효가 없다. 결론적으로 AI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인간을 대체한다는 건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미래에도 여전히 읽기·쓰기·말하기·분석이 중요하다. 혹자는 AI 로봇 사피엔스 시대를 점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로봇은 아직 신발끈도 묶지 못한다. 사랑에 빠진 로봇을 보았는가. “두려워 마라. 인간은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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