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더 멀리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일을 한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와 놀이,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한다. 친구를 사귀고 연애하며,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녀를 양육한다. 전문가 못지않게 운동이나 음악, 예술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글.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이 과정에서 개인차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꾸준하고 힘차게 하지만, 반대로 꾸준하지도 못하고 억지로 혹은 겨우 해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할까? 원동력(原動力)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동력이란 어떤 활동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힘을 의미한다. 원동력이 강한 사람은 성공적으로 일을 해내고, 원동력이 약하거나 거의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원동력을 동기(動機, motivation)라고 부른다.
구체적으로 원동력, 즉 동기란 무엇을 의미할까? 동기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행동의 목적이나 목표가 있어야 한다. 회사에 다니거나 공부하는 것,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분명한 목적이 있는 행동이어야 한다. 그냥 의미 없게 몸을 움직이거나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은 동기와 무관하다.
두 번째로 동기는 목적 있는 행동을 시작하게 한다. 목적 있는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 결심, 계획만 하는 것은 동기가 아니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서 실행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동기는 시작한 행동을 꾸준히 유지하게 한다. 즉흥적으로 목적 있는 행동을 시작했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얼마나 꾸준히 유지하느냐 아니면 쉽게 포기하느냐가 동기, 즉 원동력의 강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꾸준히 해내기 위해 필요한 강한 동기를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동기의 종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동기가 인간의 외부에서 주어지는지, 아니면 내면에서 생겨나는지에 따라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로 구분한다. 구체적으로 외재적 동기는 어떤 활동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금전이나 선물 같은 보상을 의미하고, 내재적 동기는 활동 자체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등 사람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동기를 의미한다. 대부분 직장인은 일에 대한 흥미나 사명감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경우, 이는 외재적 동기로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 자발적으로 동호회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내적 흥미와 즐거움, 보람이 중요하며 이를 내재적 동기라고 하는 것이다.
두 동기 중 어느 것이 더 강력한 동기일까? 먼저 하버드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인 롤랜드 프라이어(Roland Fryer)가 3년에 걸쳐 진행한 실험을 살펴보자. 그는 금전적 보상이 학업능력 향상에 미치는 효과를 알기 위하여 무려 18,000명의 학생에게 무려 630만 달러(약 70억 원)를 제공했다. 성적 우수자에게 25달러에서 50달러까지 포상금, 그리고 독서나 출석, 수업태도 등의 다양한 기준에 따라 돈(보상)을 지급했다. 보상이 걸렸으니 학생들은 공부에 열을 올렸다. 문제는 그 효과가 매우 단기적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3년에 걸린 프로젝트는 ‘현금 보상이 학습 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하지는 못한다’라는 결론만 얻었다.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금전을 비롯한 온갖 외재적 동기는 효과가 단기적이다. 반면 내재적 동기는 더 꾸준하게 행동을 지속하도록 한다. 이는 수많은 경제학, 심리학 연구 결과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라.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을 한 사람들, 온갖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들, 수십 년에 걸쳐서 한 가지에 매진하는 사람들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돈이나 명예인가? 아니다. 자기 일에 대한 흥미와 관심, 사명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강한 동기라고 할 수 있는 내재적 동기를 키우고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으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탐색하고 도전하려고 한다. 아기들을 관찰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인간은 본래 내재적 동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가정이나 학교, 사회가 제공하는 환경 때문에 조금씩 내재적 동기를 잃게 된다. 그 원인은 외재적 동기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마크 레퍼(Mark Lepper)는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A집단에는 그림의 대가로 상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실제로 상을 주었고, B집단에게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상을 주었으며, 마지막 C집단에는 약속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상을 주지 않았다. 2주 후에 마크 레퍼와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이 자유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어느 집단의 아이들이 더 많이 그림을 그릴까? 어떤 이들은 보상의 효과로 A집단을 꼽겠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A집단(9%)보다는 B집단(17%)과 C집단(18%)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실험의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재적 동기를 염두에 두었을 때 내재적 동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외재적 동기를 주겠다고 약속했더니(A), 그림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자기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경향성, 즉 귀인(attribution) 때문이다. 보상이 주어진 경우에는 자기 행동의 원인을 보상(외재적 동기)에서 찾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호기심이나 활동의 즐거움(내재적 동기)에서 찾는다. 자신이 보상 때문에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으니, 보상이 약속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어떤 행동에 대해 보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성적이 올랐다고, 심부름을 해준다고 돈을 주게 되면, 아이는 나중에 돈을 받을 수 없을 때 공부도 심부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돈을 주고 싶다면, 아이의 행동과 무관하게 정기적인 용돈을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들의 내재적 동기가 손상되지 않는다.
자기 내재적 동기를 꾸준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특히 직장의 경우 돈을 받기 때문에 내재적 동기가 손상되기 쉽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귀인을 다르게 하면 된다. ‘내가 돈을 벌려고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선 자기 일에서 흥미와 재미를 찾아내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회사는 나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로 돈을 준다’고 생각하자. 위 실험에서 B집단의 아이들은 상을 받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갑자기 상이 주어진 것이다. 그랬더니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아 내재적 동기가 손상되지 않았던 C집단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는가!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돈을 위해 억지로 하는 사람과 돈은 그저 결과일 뿐이라면서 나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경우 내재적 동기가 계속 손상되어 이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꾸준하게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후자라면 내재적 동기가 유지되거나 덜 손상되어 원동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