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군사툰

1888~1907 군대 편성편

근대 조선의 군대 편성

군복과 무기에 이어서, 근대를 맞이한 조선에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것은 군대의 편성과 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의 계급체계였다. 개항 이전 조선군의 편제는 가장 작은, 현대의 분대에 해당하는 대(隊)에서 사단 혹은 여단에 해당하는 영(營)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글. 김기윤   그림. 우용곡, 초초혼, 금수, 판처

군대 근대화, 편성과 그 제도로부터

새로운 무기와 군복만이 들어왔다고 하여 이것으로 군대의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선 역시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일본과의 국지전을 치르면서 자국군의 한계에 대해 절실히 느꼈고, 개항 이후 별기군을 신설하면서 서양식 군대의 편성과 그 제도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1880년대 초부터 소대와 중대, 대대로 대표되는 서양식 군 편성이 조선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나,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으로 도입이 좌절되었다. 이는 서양식 편성을 갖춘 군대가 반란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청의 영향력이 군대 내에 강력하게 드리우면서 청군의 편제가 도입됐기 때문이었다.

편제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전술의 변화도 가져오게 되었다. 단순한 편제일 뿐만 아니라, 이는 서양의 군사철학이 국내로 도입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강력한 화력과 그것을 다루는 병사 개개인, 그리고 그들을 지휘 통제하는 지휘관의 역량에 대하여 이미 서양에서는 수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었고, 1870년대 보불전쟁을 통하여 독일식의 군사 철학이 전 세계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독립군 활동에 뿌리가 된 편제

이후 독립군은 당시 처한 시대의 군사적 정신과 걸맞은 공세 지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이를 통해 수동적인 병력 운용 대신 능동적으로 부대를 지휘하며 전장 주도권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러한 보병조전의 주요 내용들은 당대의 군사 사상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실제 전투 경험, 그리고 해외 전훈 등을 바탕으로 편찬되었으며 이후 독립전쟁에까지 영향을 준 한국 근대 군사사의 전환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하게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이 근대적인 군사 편제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군사 철학의 도입과 활용 그리고 자국에 걸맞은 형태로서의 모습을 띄게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으며, 이후 독립군의 활동에서도 그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괄목할 만할 것이다.

1888

훈련대 신설로 변화한 군사제도

1884년부터 1894년 청일전쟁 이전까지 약 10년 동안 조선의 근대식 군 편제의 도입은 대외적인 요소 및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불발되었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1895년부터 훈련대를 신설하면서 다시 군사 제도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1895

한국사 최초 단대호의 등장

1895년 육군장관직제와 군부직제를 통하여 파총, 대관, 초관 등의 전통적인 지휘관 계급 및 부대를 폐기하는 대신, 현대의 위관, 영관, 장관급 장교들로 대표되는 계급체계의 도입과 소대, 중대, 대대로 대표되는 부대 편성의 도입이 이루어졌다. 이 때 한국사 최초의 단대호*도 함께 등장했다. 최초의 연대 구성은 1895년 훈련대와 시위대에서부터 시작되었고, 1개 연대 - 2개 대대 - 4개 중대 - 12개 소대의 감편 형태로 편성되었으나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식 편성이 자리를 잡으면서 1개 연대 - 2개 대대 - 10개 중대 - 40개 소대의 형태가 유지됐다.

*단대호 : 숫자상 부호, 병과 그리고 지휘제대를 나타내는 군사부대의 완전한 명칭, 단위부대 번호를 일컫는다.

1900

대한제국 군대의 근간을 이룬 편제

중앙군과 달리 지방군인 진위대는 편제가 감축되어 있었으나, 1900년으로 들어서면서 대외적인 위협인 의화단 운동 등이 발생하자, 1개 연대 - 3개 대대 - 15개 중대 - 60개 소대 편제를 갖추면서 대한제국 군대의 근간을 이뤘다. 이후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등을 거치며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도 군대의 편제는 서양식으로 완전히 정착되기 시작했으며, 당시에 발행된 보병조전 등을 통하여 분대에서 여단에 이르는 편성이 공식적으로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07

임무형 지휘체계와 방식 만들어져

실제로 보병조전이나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해산당한 대한제국 군대가 일본군과 교전한 기록을 살펴보면 임무형 지휘체계와 유사한 방식의 지휘 방식이 이들에게 도입됨을 알 수 있다. 가장 작은 편제인 소대에서 기본적인 전투 편제인 대대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 군대의 장교들은 ‘적절한 독단적인 행동은 전투에서 좋은 결과를 만드는 기초’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이는 1895년부터 1897년 사이에 이르는 실제 전투 경험과 독일식 군사교리를 받아들인 일본군과의 군사 교류를 통하여 얻어낸 전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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