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으로 연결된 세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여름이 오면 더욱 행복해지는 핀란드로 떠나보자.
글. 정효정 여행작가
휘바, 휘바! 즐거운 휘파람 같은 이 소리는 핀란드어로 ‘좋다’라는 뜻이다. 핀란드에 대한 인상은 이 단어처럼 호감 가는 이미지가 가득하다. 아름다운 설경과 신비로운
오로라, 산타클로스가 사는 동화 속 마을, 뜨끈뜨끈한 핀란드식 사우나, 그리고 귀여운 캐릭터 무민까지 있는 나라가 아닌가.
하지만 이 호감 가는 나라 핀란드는 수백 년 동안 주변 나라의 침략을 계속 받아온 나라기도 하다. 핀란드는 스웨덴 치하에서 600여 년, 러시아 치하에서 100여 년간
지배를 받다가 1917년 12월 6일 비로소 독립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는 생존을 위해 ‘군사적 중립’을 지향했다. 핀란드의 이 같은 행보는 강대국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지켜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핀란드는 오랜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게 된다. 핀란드는 K9 자주포 수출로 인해 우리와 방위산업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K9 자주포는 국내에서 독자 개발된 자주포로 K-방산 수출 확대에
기점이 되는 무기체계다. 155mm, 52구경장 장포신을 탑재했으며
최대사거리 40㎞, 발사속도 6∼8발/1분, 탄약적재량 48발을 지녔다.
UN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23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는 6년 연속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됐다. 수많은 외침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딛고 일궈낸 핀란드의 행복, 이들은 지금 그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겨울 나라 핀란드, 하지만 여름 여행은 어떨까? 여름은 핀란드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계절이다. 해가 짧고 조용한 겨울과 달리 여름은 전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특히 70일 정도 지속되는 백야 기간에는 밤 11시가 되어야 해가 지고, 불과 4시간 후인 새벽
3시면 다시 해가 뜬다. 이 시기가 되면 평소에 과묵하다는 핀란드 사람들도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휘바 케사(좋은 여름)’ 라는 인사말을 나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축제는 유한누스(Juhannus)다. 유한누스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를 기념하는 핀란드의 공휴일이다. 이때가 오면 핀란드 사람들은 강가나
호숫가로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유한누스 전야제엔 밤새 거대한 모닥불 주변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인다. 마치 우리네 정월 대보름 달집 태우기와 비슷한 풍경이다. 젊은이들은
일곱 종류의 꽃을 꺾어 베개 아래 두고 자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미래의 배우자를 꿈에서 만날 수 있다는 낭만적인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은 핀란드 사람들의 유머 감각이 가장 빛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진흙탕 축구 대회, 휴대전화 멀리 던지기 등 각종 기상천외한 대회들이 벌어진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내 업고 달리기’ 대회다. 참가 조건은 아내의 나이와 체중이다. 나이는 17세 이상이어야 하고 체중은 49kg이 넘어야 한다. 남편 쪽의 조건은 따로 없다. 경기 규칙도
별다른 것 없이 그냥 아내를 업고 물웅덩이, 모래 언덕, 통나무 장애물 등을 피해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매 대회마다 각양각색의 포즈로 달리는 커플을 볼 수 있다. 이
고생을 해서 얻는 것은 상금과 아내 몸무게만큼의 맥주다. 물론, 대회를 함께 준비하며 쌓게 되는 애정이 이 대회의 가장 큰 포상일 것이다.
그 밖에도 핀란드 전역에서는 영화, 재즈, 민속 음악, 오페라, 락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축제가 열린다. 이중 가장 유명한 축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페스티벌인
포리 재즈 페스티벌(Pori Jazz Festival)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사이 섬에 메인 무대를 세우고, 어쿠스틱 재즈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 축제는 가평군에서 개최되는 자라섬 페스티벌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핀란드에서 가장 큰 호수인 사본린나 호수에서 개최되는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Savonlinna Opera Festival), 백야의 북극권에서 24시간 내내 영화가 상영되는 미드나잇 선 필름 페스티발(Midnight Sun Film
Festival), 북유럽 최고 민속 음악 축제인 카우슈티넨 민속 음악 축제(Kaustinen Folk Music Festival) 등도 여름철에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여름에도 사우나를 빠트리지 않는다. 핀란드의 행복 지수는 사우나에서 나온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전 국민 3명 중 1명꼴로 사우나가 보급되어 있다고
한다. 핀란드의 사우나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을 정도다.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를 신성한 공간으로 여긴다.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씻으며 가슴속 깊이
행복감을 만끽 하는 것이 그들 일상의 중요한 의식이다.
핀란드에서 여행자가 사우나를 이용할 때 몇 가지
알아둬야 할 팁이 있다. 일단 사우나에 들어설 때 방석 사이즈의 타월을 받게 되는데, 땀이 나무에 스며들지 않도록 깔고 앉는 용도다. 그리고 사우나 초보라면
3층보다는 1층에 자리 잡는 것이 안전하다. 전통 핀란드 사우나는 건식인데, 수시로 뜨겁게 달구어진 돌 무더기 위에 물을 뿌린다. 이때 엄청난 규모의 수증기가 발생하는데
사우나 초보에겐 힘든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사우나 내부에는 ‘바스타’ 또는 ‘비타’라고 불리는 신선한 자작나무 가지 묶음이 걸려 있다. 물에 적셔 가볍게 몸을 때리면
혈액순환과 노폐물 배출에 좋다.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사우나는 한 번에 15분씩, 3번 정도 하기를 권장하며, 사우나 후에 바로 차가운 물을 끼얹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여행자가 가지는 의문이, 핀란드 사우나는 알몸으로 이용하는 지에 대해서다. 사실 핀란드 사람들은 알몸에 대해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특히 수영이나 사우나를 할
때는 알몸인 편이 건강하다고 여긴다. 한 예로 영화
<카모메 식당>에 등장한 헬싱키의 이르왼카투 수영장(Yrjonkatu Swimming Hall)은 원래 완전 탈의가 기본이었다. 남녀 사용 요일만 구분되었을 뿐이다.
2001년부터는 수영복 착용이 가능해졌다. 마찬가지로 원래 전통적인 핀란드 사우나는 알몸이 기본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곳도 많다. 헷갈리면 일단 미리
확인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무민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핀란드 토종 캐릭터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하마처럼 보이지만, 그 정체는 북유럽 전설 속의 거인족인 트롤(Troll)이다.
핀란드 남부 난탈리에는 이 무민 가족이 사는 무민월드가 있다. 파란 벽에 빨간 지붕을 지닌 무민 가족의 집뿐 아니라, 보트, 소방서, 경찰서, 호숫가 등 동화 속에 등장하는
무민 마을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이곳은 일 년 내내 개방하지 않고, 여름에 단 2달, 겨울에 단 1주간만 개방한다. 그래서 무민랜드를 방문하려면 여름을 공략하는 것이
좋다.
이 테마파크의 특이한 점은 디즈니랜드처럼 타는 놀이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아이들은 무민의 집을 방문하고, 무민 엄마의 특제 도넛을 먹어보거나, 동화 속
캐릭터와 함께 축구를 하기도 한다. 무민 랜드의 매력은 동화 속 세상에서 아이들이 실컷 웃고 땀 흘리며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핀란드 사람들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이들은 인공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 자연과 함께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 핀란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모두가 평범하고, 평등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기보다 적절하고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한다. 겨울은 길고 어두웠지만, 그 대신 여름을 더욱 즐겁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핀란드가 행복한 이유는 이렇게 균형 잡힌 삶이 주는 충족감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