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군사툰
인류가 지금껏 입어 온 복식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을 거쳐왔다. 이는 인류가 살아온 환경과 전통, 문화에 따라 독특한 지점으로 발전했으며 이 때문에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군복이라는 것은 더욱 연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다.
글. 김기윤 그림. 우용곡, 초초혼, 금수, 판처
군대가 착용하는 군복이라는 것은 비단 외형적인 부분에서만 특징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것을 입은 당대의 국가가 어떠한 전술과 전략을 도입했는지부터 시작하여, 어떠한 무기를
사용했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까지 수용되어 있는, 굉장히 복합적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선이 1876년 개항 이후 변화하기 시작한 군복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도출해 낼 수 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개항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군제를 개편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미 개항에 앞서 흥선대원군은 정조 사후부터 유명무실하기 시작하던
군대를 재편성해 일시적으로 방위태세를 갖출 수 있었으나, 두 차례의 양요와 운요호 사건을 거치며 기존과 다른 새로운 군대를 갖춰야 할 당위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군대를 구별 짓는 것은 외적인 요소, 즉 군대가 사용하는 군복과 장비에서부터 시작됐다. 교련병대, 일명 별기군의 창설로부터 시작하여 조선은 여러 차례 군복을
교체하였으나 시기상으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1884년 갑신의제개혁을 통한 친군영 군복의 도래와 1895년, 1897년, 1906년 각각 실시된 육군복장규칙으로 구별
지을 수 있었다.
초기 별기군은 녹색의 군복을 입었으며 기존 조선군과는 차별되는 복장을 갖추었으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면서 복식의 차이에 대한 격차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1884년 갑신의제개혁을 통해 당시 고종은 군대의 복식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세우고자 했다.
임오군란 직후 청군의 군복과 기존 조선군의 군모가 혼용되어 사용되는 양식은 조선이 자주적인 군대를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1882년 임오군란 이후 고종은 조선에 파병된 청나라 군사령관 오장경과 논의하여 조선군이 착용할 신식 군복 착용에 동의했다.
오장경이 1882년 6월에 사망하면서 착용할 군복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친군영 군복과 유사한 형태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전체적인 형태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까지 거의 유사하게 이어졌다.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청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면서 조선의 군대는 청이 아닌 일본의 지대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가장 외적으로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바로 군복이었으며 기존의 친군영의 복식 대신 일본군의 메이지 19년식 군복을 수입하여 착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식 군제와 훈련이 도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1895년 육군복장규칙으로 드러났으며, 외견상 일본군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띄었다. 실제로 을미의병 당시 해당 복장의 조선군 친위대와 일본군을 구별하지 못해 의병들이 곤란해 했다는 기록이 존재함으로 보아, 일본식 군복 도입이 이 시기 상당 부분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1897년, 아관파천 이후 칭제건원을 통해 대한제국을 선포함으로써 군대의 복식은 다시 한 번 변화를 맞이했다. 기존의 케피(혹은 피스 헬멧)를 대신한 케피식 군모와 근골식 제복이 도입되었다. 이 시기부터 우리가 흔히 접했던 대한제국 군대의 군복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후 근골식 제복은 1900년 7월 육군장졸복장제식에 의해 더블브레스티드형, 일명 더블버튼식으로 개편되었고 예복과 상복이 본격적으로 분리되었다.
일본군과는 다른 형태의 군복이 정립된 것은 대한제국의 칭제 이후 자주적으로 국가를 이끌어나가겠다는 의도와 함께, 군대의 복장도 자체적으로 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와는 달리,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러시아의 패배로 인해, 대한제국의 군복은 마지막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대한제국 군대의 군복은 1906년 마지막으로 육군복장규칙을 발표했으며, 이 과정에서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착용했던 메이지 38년식(1904~1905년) 군복을 본뜬 것을 채택했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일본의 식민지화 야욕이 드러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처럼 1876년 개항 이후, 1906년 마지막 육군복장규칙 변화에 이르기까지 약 30년 동안 조선, 더 나아가 대한제국은 다채로운 군복의 변화를 보여왔다. 이는 조선에 정치적, 군사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주변국의 영향을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주적으로 자국을 지켜내기 위해 드러낼 수 있었던 일종의 성과로도 볼 수 있었다. 개항을 맞이하여 군대를 새롭게 개편한 조선에는 새로운 정신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또 대내적으로도 보여주어야 할 변화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착용했던 군복에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