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70
1945년에 창설된 유엔이 유엔군을 조직해서 처음으로 치른 전쟁이 바로 6·25전쟁이다. 미국 주도 아래 유엔회원국이 연합군을 만들어 한 참전. 이 참전에는 전투나 물자의 지원만이 아니라 현대의 의료체계를 구축한 6개국의 의료지원이 있었다.
자료참조. 국가기록원, 유엔 평화기념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우리에게 의료지원부대를 보낸 국가와 의료진을 기념하기 위해 1976년 국방부가 세운 기념비의 문구다. 이처럼 다친 장병과 민간인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라들. 전쟁 중만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의료지원국은 우리 사회에 크게 기여했다.
스웨덴 •
6·25전쟁 중 첫 의료지원국이자 가장 오래 머문 국가는 스웨덴이다. 1950년 7월 스웨덴은 유엔에 가장 먼저 야전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1950년 9월
부산항에 도착한 스웨덴 의료진은 1957년 4월 철수 때까지 6년 6개월 동안 활동했다. 스웨덴은 유엔군 사령부의 병상 증설 요구에 따라 진찰실과 수술실을 갖춘
‘스웨덴적십자야전병원’을 차렸다. 스웨덴은 중립국으로서 야전병원을 운영하며 겨울이 되어 동상으로 병원 문을 두드리는 북한군, 중공군을 내치지 않고 적십자의 이름으로 병원을
운영했다.
덴마크 •
덴마크 정부는 유엔회원국 중에서 제일 먼저 지원의사를 밝혀왔다. 1950년 6월 유엔이 우리나라에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자국의 적십자사에 뉴욕을 왕복하던 상선 유틀란디아호를
병원선으로 개조해 지원했다. 특히 유틀란디아호는 8개월마다 본국으로 귀국해 재정비한 후 재차 파견됐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귀국에 앞서 보유하고 있던 약품과 의료기자재들을
유엔한국재건단을 통해 여러 민간병원에 기증한다. 또한 인천항을 통해 떠나며, 참전국의 부상자, 포로 등 651명을 본국으로 후송하는 임무도 지원한다. 덴마크 의료진은 정전
이후에도 노르웨이, 스웨덴과 긴밀히 협조해 국립의료원의 설립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 보건사에 길이 남을 공헌을 했다.
노르웨이 •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은 1951년 5월 자국을 출발해 1954년 11월까지 의정부와 동두천에 자리를 잡고 매일 4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동두천에서
미군 제1군단을 직접 지원해 부상자를 치료하며 군인은 물론 민간인을 위한 외래환자 진료소도 설치해 운영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의료진이 우리
나라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노르웨이 야전병원을 대표하는 샘 교수와 덴마크 유틀란디아호 마그누스 박사 그리고 한국 의료진과 함께 스칸디나비아 국가에 의한 지속적인 의료지원을
논의했다.
이탈리아 •
이탈리아는 6·25전쟁 발발 당시에 유엔회원국은 아니었다. 더구나 국정이 불안한 상태였음에도 적십자연맹의 요청에 따라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이에 1950년 10월
이탈리아의 제68적십자병원은 자국을 떠나 1950년 12월 6일 영등포구 신길동 우신초등학교에 병원을 열었다. 이탈리아는 6·25전쟁에 전투 및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한 마지막
국가가 됐을 뿐만 아니라 참전국 중 유일한 비회원국의 의료지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인도 •
인도는 1950년 11월부터 1954년 2월까지 의료지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의료진을 파견했다. 특히 공수훈련을 받은 의무 장병들로 파견해 외과, 마취, 일반, 치과의사
등을 포함 2개의 외과반과 1개의 치과반으로 제60야전병원을 꾸렸다. 인도 의료진은 우리 민간 의사들에게 병원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 1951년 대구 서부시립병원 운영을 돕고
우리 군을 대상으로 마취 교육과 민간인 외래환자 치료를 위한 진료소도 개소했다.
독일 •
독일(당시 서독)은 정전협정(1953년 7월) 이후인 1954년 의료지원단이 파견되었다는 이유로 그동안 의료지원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학계의 의견 등을 수렴해 지난
2018년인 6·25전쟁 68주년을 계기로 독일을 의료지원국에 포함했다. 당시 독일은 부산에 서독적십자병원을 개원하고 1959년 3월까지 최신식 의료기기를 갖춘 종합병원
규모의 병원을 4년간 운영하며 가난한 부산시민과 피난민을 무료로 진료했다. 또한 간호학교도 무료로 운영해 간호인력을 양성하고 민간 의사에게 의술을 전수했다.
6개국은 멀고 낯선 땅에 의료진을 보내준 것은 물론, 전쟁 이후에도 기꺼이 전쟁 이전의 회복과 의료 발전에 힘썼다. 이들이 남겨준 희생정신과 의료체계 등의 유산은 후대에도
남아 한반도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