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으로 연결된 세계
에펠탑에서 센 강을 따라 5km 반경에는 예술, 문화, 역사, 패션, 군사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정상급의 박물관들이 즐비하다. 센 강을 따라 파리의 박물관을 여행해 보자.
글. 정효정 여행작가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의 강국이다. 특히 수도 파리는 ‘유럽의 문화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전 세계에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술과 음악 같은 예술 분야뿐 아니라
역사적인 건축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명품으로 대표되는 패션 등 파리에서는 이 모든 문화 예술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
한편, 프랑스는 서유럽 방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기도 하다. 독자적인 군사적 역량을 기르기 위해 세계 정상급의 국방기술력을 지니고 있으며,
미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핵 항공모함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스톡홀름 국제평화 연구소에서 발표한 ‘세계 무기 수출국 10’ 순위에 따르면 프랑스는 미국과 러시아의 뒤를 이어
방산수출 규모 3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이 미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세계 무기 수출국 반열에 오르려면 프랑스를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문화, 예술뿐 아니라 군사력까지 강국인 프랑스, 지금부터 파리의 문화와 예술, 역사가 집약된 박물관을 방문하며 프랑스의 역량을 살펴보자.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는 파리는 박물관의 도시기도 하다. 이 도시에는 130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박물관 여행의 시작은 파리의 랜드마크
에펠탑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에펠탑에서 센 강을 따라 5km 남짓한 거리에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에펠탑 자체가 근대 건축의 살아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존의 건축은 석재를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구스타프 에펠은 금속을 연결해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높은 300m 높이의 철골 구조물을 세웠다. 건축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에펠탑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나면 곧이어 알마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이다. 파리 시민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현대 미술뿐 아니라 음악회,
패션쇼, 퍼포먼스, 강연 등을 즐길 수 있는 가장 핫하고 세련된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같은 건물의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는 피카소,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거장이 그린
현대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센 강을 따라 동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그랑 팔레가 나온다. 이 건물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지어졌다. 그랑 팔레의 중심에는 철골과 유리로 된 거대한 돔이 있는
대형 홀이 있는데, 당시로선 획기적인 건축기법이었다. 파리 곳곳에는 아직도 이렇게 1900년이나 1937년 박람회 당시 지어진 건물이 많다. 당시 만국박람회는 모든 새로운
과학, 기술, 물건이 등장하는 행사였었을 뿐 아니라, 자국의 앞선 건축을 자랑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현재 그랑 팔레는 2024년 프랑스 올림픽을 위한 준비로 대대적인 공사
중이다. 이 유서 깊은 건물에서 태권도와 펜싱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그랑 팔레에서 나와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보자.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파리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사진, 영화 등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이
다리 건너에 앵발리드가 있다. 이곳은 17세기 루이 14세가 부상병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현재는 프랑스의 군사 위인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는
프랑스의 국민 영웅 나폴레옹 1세의 묘지가 있다. 전해지기론 나폴레옹을 흠모했던 히틀러가 파리를 점령한 후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앵발리드에는 추모 공간 외에도 상이용사를 위한 프랑스 군 요양 병원, 생 루이 성당, 프랑스 군사 박물관 등이 있다. 군사 박물관은 프랑스 군의 과거와 오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고대부터 중세, 부르봉 왕조 시대, 나폴레옹 시대, 제1·2차 세계대전 등 시대에 따라 쓰던 무기나 방어구, 전투복, 훈장, 디오라마, 미니어처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시관에서는 나폴레옹이 전투 시 사용했던 옷, 총기, 모자, 망원경 등을 만날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샤롤 드골 전시관이 나온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갑부대를 지휘했던 전쟁 영웅이자, 프랑스의 18대 대통령이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이 열리면 이곳에선 양궁 경기가 개최된다고 한다. 대한민국 양궁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어, 이 공간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게양되길 기대해 본다.
앵발리드 바로 옆에는 로댕 미술관이 있다.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향하면 이번엔 오르세 미술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많이 보던 반 고흐나, 르누아르, 드가,
마네, 세잔 등 인상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바로 건너편은 모네의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다시 도보로 15분, 이번엔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루브르는 12세기에 파리를 지키는 요새로 출발해 17세기까지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거듭났다. 현재 이곳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한 62만 점의 소장품이 있으며
이 중 8개 전시관에 공개되는 작품 수는 3만 5천여 점에 달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센 강을 따라 다시 이동해 보자. 이번에는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는 퐁네프와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이 나온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바로 뒤편에는
제2차 세계대전 강제 이송 희생자 추모관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강제 추방당한 유대인을 20만 명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시테섬에서 15분 정도 북쪽으로 걸어가면 파리의 복합문화센터인 퐁피두센터가 나온다. 이곳엔 국립 현대 미술관과 도서관, 북 카페, 영화관 등이 있다. 이곳에선 1905년
이후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피카소, 세잔, 레제, 칸딘스키, 미로, 자코메티,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등이다. 작품 관람을 마치면 6층 전망
대로 올라가 보자. 미술관 입장권이 있으면 무료다.
파리 시내 전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다.
센 강변의 박물관들을 방문하다 보면, 프랑스라는 나라의 특징과 저력이 한눈에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박물관 외에도 센 강 주변에는 도시 건축 유산 박물관, 인류 박물관, 케
브랑르 박물관, 파리 패션 역사 박물관, 장식 박물관, 국립 자연사 박물관 등이 있다.
박물관 방문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을 노려보자. 박물관 무료입장의 날이다. 그리고 많은 박물관을 방문하고 싶다면 파리 뮤지엄 패스(Paris Museum
pass)를 사용할 수 있다. 파리 시내와 근교에 있는 50여 개 박물관과 미술관, 고성 등을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 패스인데, 일정과 계획을 잘 짜서 구매하면 많은 금액을
아낄 수 있다. 보통 박물관 입장료가 10~15유로이기 때문에 4개 이상의 박물관에 방문할 계획이면 파리 뮤지엄 패스를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