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를 더하다
인간은 역사 이래로 개인의 안위 확보와 집단의 안전을 보장하며, 개인과 집단을 파국이 아닌 발전으로 이끌어 왔다. 인류가 수천 년간 구축해 온 다양한 종류의 안전보장 체계 아래 국가와 개인은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 발전 등으로 인해 그동안 인류가 구축한 안보체계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사이버안보와 우주안보라는 새로운 문제가 당면해 있다.
글. 정대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위성정보활용센터장
우주안보는 법, 제도를 만들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우주로의 접근과 이용을 가능하게 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추진과 궤도, 통신과 제어기술이 확보되던
시기가 태동기다. 발사체로 위성을 궤도에 올리고, 인간이 우주에 진출한 시점이 우주안보의 시작점이다. 초기의 우주개발은 냉전 시대 양극체제 유지를 위한
우주기술개발과 우주안보에 집중됐다.
1991년 구 소련 붕괴로 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세계는 다극화 시대로 전환되고, 우주기술개발과 우주안보는 큰 변환을 맞이한다. 2000년부터 20년간,
우주기술은 5가지 분야인 국제협력, 상업적 활용 증대, 관측정보능력 확대, 차세대 우주기술개발, 우주상황인식 구현으로 세분화해 발전돼 왔다.
이제 우주안보는 자국 우주안보를 보장받으면서 법체계를 정비하는 시기가 된다. 2020년 이후부터 우주기술은 민간산업과 결합해 뉴스페이스 시대가 시작되고,
우주안보는 이미 개발된 우주상황인식기술을 이용해 우주물체의 충돌과 운영을 관리하는 우주교통관제를 본격적으로 국제법이 마련되고 있다.
미국 등 정부와 학계가 정의하는 우주안보란 ‘우주공간에서 인간의 활동을 자유로이 보장하는 법, 제도, 활동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사용의 보장’이다. 우주안보의 큰
특징은 지구가 아닌 새로운 공간인 우주가 안보의 대상공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법, 활동을 보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주기술의 사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더 깊이
생각하면, 우주기술개발은 자유경쟁이고 그 사용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전통적인 국가안보는 땅, 바다, 하늘을 근간으로 영토 내의 일들을 담당 부처가 관할하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왔다. 반면, 우주안보는 각각의 담당부처와 우주로의 접근과
이용을 전담하는 부처가 긴밀해야 한다는 특수성이 있다. 예를 들면, 무중력인 우주에서의 신약개발은 유망한 우주활용 분야이지만 신약개발의 주무 부처인 식약처는 우주로의 접근과
운영을 할 수가 없다. 우주로의 접근과 운영을 우주개발 전담부처가 담당하더라도 우주개발 전담부처가 식약처의 전문영역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비체계적·비효율적이
된다.
우주안보에서 공간영역은 우주지만 우주에서의 활동 결과물은 땅, 바다, 하늘의 모든 공간에서 중대한 파급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지구상의 활동은 지역적이며, 타지역으로의 이동에는 속도의 한계, 국경의 제한 등이 있으나, 우주상의 활동은 전 지구적이며, 타 지역으로 시간당 1,667km 이동되고,
국경에 제한이 없다. 그렇기에 인간안보 해결을 위한 우주기술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인간안보란 현대사회에서 강력히 대두되는 새로운 안보개념으로 인간가치를 보장하고 지속하는 것, 회복력을 의미한다. UN은 에너지, 물, 기후대응 등 17개 분야의 인간안보를
설정, 미국, 유럽 등은 이민, 팬데믹 질병, 환경오염 등을 인간안보로 지정해 대응해 오고 있다. 인간안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관찰과 분석이 필수이기 때문에,
전 지구적인 관측의 유일한 수단인 우주기술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UN은 17개 인간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위성활용이 필수임을 2017년에 선언한 바 있다.
UN은 외기권(지표에서 500km 고도의 대기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위원회와 UN군축위원회를 통해 우주안보를 논의한다. UN국제전기통신연합과 UN국제민간항공기구는
우주교통관제를 논의하면서 국제규범 창출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우주안보를 법제화하는 국가우주전략 발표, 우주정책 지침 발표, 우주군 창설,
우주상황인식 체계 수립, 우주교통관리 체계 정비, 수출통제개혁 등 일련의 우주정책을 제정한다. 이를 통한 미국 우주안보의 목적은 우주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및 활동을
국제적으로 보장받는 것과 미국의 우주자산과 우주활동을 보호하는 것이다. 미국은 우주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하면서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 양자 우주협력을 강화하고 자국의
법제를 양자적 관계를 통해 다자화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각국은 우주공간을 새로운 전장 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민군이 협력하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2019년에 우주군을 창설했다. 중국은 2016년에 우주 분야를
사이버전 및 전자전 분야와 통합한 전략지원군을 창설했고, 러시아는 2015년에 전략우주방어사령부가 조직됐다. 일본은 2020년에 우주작전대를 신설했는데 기존의 각종 우주전략
조직을 보강하더니 2022년에는 우주작전군으로 개편했다.
현재 우주안보 국내법규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개발진흥법과 국정원 안보 관련 우주정보 업무규정이 있으며, 국방안보 법적 근거로는 통합방위법과 방위사업법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우주안보 거버넌스가 부재하며, 우주개발에 참여하는 부처, 기관의 역할이 모호하고 업무 협력체계가 복잡한 상황이다. 군은 2022년
합동참모본부에 국방우주력 발전 전담 부서인 군사우주과를 신설했고, 공군은 본부 소속의 우주센터를 2021년에 개소해 최근 육군·해군 본부에도 우주 군사력
창출을 위한 ‘우주발전과’ 등의 조직을 구성한 바 있다.
우주안보 발전방향은 우주기술 고도화와 법, 체계의 구축이다. 국방우주안보 발전방향은 우주안보와 동일하며, 구체적으로는 국방에 사용되는 우주기술의 고도화와
국방우주안보법, 체계의 구축이다. 국제협력과 국제법은 포괄적이면서도 국가별 양자 협력에 있어 일정한 차등이 있기 때문에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안보, 안전, 지속가능성 세 가지 합리적인 국제규범 창출 과정이 국제적·국내적으로 전망된다. 또한, 우주운영이 자국의 독점적인 행위인지
국제사회가 구축할 세 가지 가치를 준수하는 국제법 행위인지는 우주교통관제 이슈를 통해 해결될 전망이다.
인간은 우주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들을 이용해 우주로 나아가는 것을 운명으로 가져왔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만든 안보체계가 지금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듯이,
우리 시대가 만들 우주안보체계가 후손들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