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폰 아카이브
제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9월 15일, 영국은 Mk.1으로 명명한 새로운 무기를 전선에 투입했다. 처음 보는 낯선 기계가 굉음을 내고 다가와 기관총을 난사하자 독일군은 경악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전에 없던 무기체계여서 어떻게 작전을 펼쳐야 하는지 몰랐던 영국군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20년 후, 그 무기의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고 100년이 지난 지금, 전차는 지상전의 왕자로 자리매김했다.
글.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최초의 전차와 현대 전차를 평면으로 비교하면 궤도로 움직이고 장갑을 둘렀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비슷한 점이 없다. 1930년대까지 포탑이 많은 전차들처럼 모양도 가지각색이었을 만큼 전차는 여러 형태로 개발되고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제2차 대전 발발 시점에 경(輕), 중형(中型), 중(重) 전차로 크게
정립됐다.
전차의 3대 요소는 공격, 방어, 주행이다. 그런데 MBT(Main Battle Tank, 주력전차)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어느 하나의 성능을 늘리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이유로 1940년대까지는 어느 한쪽을 포기하거나 줄이는 대신 다른 성능을 극대화해 용도가 상이한 전차를 각각 만들어 사용했다.
중형전차는 전선을 돌파하거나 기갑전을 펼치는 용도로, 중전차는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을 이용해 진지 격파 등을 수행했다.
사상 최대의 전쟁인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전차는 명실공히 지상전의 왕자가 되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 동부전선은 전차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도 쿠르스크 전투를 위시해 제2차 대전 당시 벌어진 많은 기갑전을 능가하는 전투는 없다. 당연히 전차와 관련한 기본적인 패러다임이 이때 정립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MBT는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제2차 대전 이후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세대를 구분한다. 독일의 힐메스(Rolf Hilmes)가 그의 저서에서 제시한 기준이어서 공식적인 것은 아니나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3.5세대까지 실용화됐다.
기동력이 좋은 중형전차 차체에 이전에 중전차에서나 운용했던 대구경 주포가 탑재된 전차가 1세대 전차다. 제2차 대전 종전 후 등장해 냉전 초기에 주력으로 활약했는데,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에 배치된 미국의 M46, M47, M48, 소련의 T-54, T-55, 영국의 센추리온 등이 대표적이다. 기술적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 2세대 전차 수준으로 개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1세대 전차는 도태되었지만, 일부 국가에서 2선급 전차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모든 임무를 하나의 전차로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인 MBT 시대가 개막됐다. 1960~70년대에 배치된 미국의 M60, 소련의 T-62, T-64, T-72, T-80, 서독의 레오파르트 1, 영국의 치프틴, 일본의 74식 등이 대표적이다. 활동 시기가 냉전의 절정으로 치닫고, 국지전이 많이 벌어지던 시기여서 1세대 전차와 더불어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꾸준히 개량이 이루어진 덕분에 2022년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에서도 보이고 있다.
기존 전차가 대전차 화기에 쉽게 뚫리자 신소재와 첨단 사통장치 등을 채택해 공격력을, 대추력 엔진을 장착해 기동력을 향상시킨 MBT가 3세대 전차다. 1980년대 이후에 배치된 우리나라의 K1, 독일의 레오파르트 2, 미국의 M1, 러시아의 T-90, 영국의 챌린저 등이 대표적이다. 3세대 전차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주력으로 활동 중이다. 미국의 M1은 탄생한 지 40년이 지났고, 현재 러시아의 주력인 T-90도 1960년대 말에 개발된 T-72의 개량형이다.
디지털 센서를 사용하는 사통장치, 신형 복합장갑, 능동방어시스템, 데이터링크를 통해 타군까지의 협동전까지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MBT가 3.5세대 전차다. 아직은 4세대 전차가 개념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고 3세대 전차가 오랫동안 활약하는 동안 기술의 발전이 있었으나, 냉전 종식으로 신예 전차 사업이 취소되고, 3세대 전차를 개량해 3.5세대 전차로 사용 중이다. 우리나라의 K2전차, 프랑스의 르클레르, 일본의 10식처럼 새롭게 개발된 전차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