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으로 연결된 세계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빛나는 드레스덴. 매년 겨울이면 꿈처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진다.
글. 정효정 여행작가
11월이 되면 독일은 겨울을 밝히는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에 반짝이는 조명 아래서 따끈한 음식을 받아들고 행복한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독일 날씨의 특성인 우중충함은 날아가 버린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크리스마스 전 4주를 뜻하는 대림절부터 행해지는 행사로 보통 11월 말에서 크리스마스까지 거의 한달 동안 운영된다. 그 역사는 중세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 작은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그중 독일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도시가 바로 드레스덴이다.
베를린과 체코 프라하 사이에 위치한 드레스덴은 과거 작센 왕조의 수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엘베 강과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바로크 건축물들의 조화로 ‘바로크의 진주’로 불리기도 했고, 한편으론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한때 독일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호화스럽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된다. 1945년 2월 14일 영국군의 폭격으로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된 것이다. 유럽 전선의 폭격 작전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작전이었다. 3일간 약 3,400톤의 폭탄이 도시로 떨어졌고 2만 5천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곳은 동독의 중요 도시였지만 전쟁의 폐허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90년 독일의 통일 이후 도시의 재건이 시작되어 현재의 고풍스러운 예술·문화 도시로 재탄생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방산업체의 주요 무기 수출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무기 수출국 10순위 중 5번째로 꼽힐 정도로 주요한 기술을 지닌 국가다. 한편 대한민국은 어느새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 잠수함 수출국이자 아시아 최초의 잠수함 수출국이 되었다. 어느새
대한민국의 기술력은 이제 독일에 견줄만큼 성장한 것이다.
드레스덴의 여행은 그 역사와 의미를 알고 있으면 더욱 흥미롭다. 드레스덴 여행의 중심은 역시 엘베강이다.
엘베강에서 석양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장소는 브륄의 테라스(Bruehlsche Terrasse)다. 괴테가 이곳을 방문했다가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유럽의 발코니’라 칭했는데, 이후 이곳의 별명이 됐다. 과거에는 요새의 일부였으나 18세기 하인리히 폰 브륄 백작이 공원으로 꾸몄고 이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되었다. 해가 질 땐 크루즈를 타고 엘베강을 유람하는 것도 좋다. 19세기에 제작된 증기선을 타고 강 하류에서 출발해 강 상류에 도착할 때까지 고풍스러운 도시의 전경을 만끽할 수 있다.
드레스덴의 상징을 만나고 싶으면 구시가지를 뜻하는 알트슈타트(Altstadt)로 가야 한다. 사실 이 근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완벽하게 폐허가 된 곳이다.
하지만 노이마르크트 광장에 위치한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야말로 드레스덴의 과거의 유산이며 시민정신이다.
이 바로크 양식의 육중한 돔형 교회는 1945년 폭격의 마지막 날 벽체만 남기고 거의 무너져 내렸다. 종전 후 동독은 종교적인 상징을 없애기 위해 이 폐허를 허물고자 했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철회되었다. 독일 통일 이후인 1994년부터 기부금을 받아 복구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시민들은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던 잔해들을
시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교회가 복구될 것임을 믿고 돌에 번호까지 새겨가며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민들로부터 시작한 복원 운동은 전 세계의 후원을 받으며 2005년 완공됐다. 파괴된 지 60년 만의 재건이었다.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기 위해선 우선 알트마르크트(Altmarkt)로 향해야 한다. 구 시장 광장이라는 의미의 이곳은 11개의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진다.
드레스덴은 슈톨렌으로도 유명하다. 슈톨렌은 빵 안에 럼주에 절인 과일이 들어간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매년 드레스덴에는 도시의 최고 제빵사들이 모여 슈톨렌 축제를 벌인다. 드레스덴에서 생산된 슈톨렌은 ‘드레스덴식 슈톨렌’이라는 인증 마크가 따로 붙어있을 정도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것은
추운 겨울을 녹여주는 따뜻한 글뤼바인(끓인 와인)이다. 계란이 들어간 따뜻한 술인 에그노그도 겨울의 별미다. 한편 설탕을 잔뜩 묻힌 폭신한 도넛이나 독일의 대표 소시지 요리인 커리부어스트 등도 맛볼 수 있다.
제 589회 드레스덴 크리스마스 마켓은 11월 29일에 개장한다. 올해는 작센 주가 6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전쟁의 상혼을 딛고 다시 문화와 예술, 그리고 IT 산업의 중심지로 피어나고 있는 드레스덴, 이 유서 깊은 도시에서 크리스마스가 주는 꿈과 낭만을 만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