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람

VOL 118

2022 MARCH
홈 아이콘 K-방산 특집 ③ K-방산 특집 ③

K-컬쳐에 이어 K-방산으로 한발자국 성큼

  방위산업진흥국 방산일자리과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 라면들

중동 국가와 무역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아랍 상인’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10세기경 비잔틴 제국과 당나라, 신라까지 상업로를 개척했던 아라비아 상인의 정신을 물려받아서인지, ‘빨리빨리’가 몸에 익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동인 특유의 기상천외한 협상 전략과 지연전술을 구사하는 아랍 상인들에게 적응하기 쉽지 않다. 중동 국가와의 협력 사업은 특유의 문화를 이해하고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이집트 K9자주포 수출사업도 이와 같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왔다. 2013년 7월 처음 자주포 입찰공고가 나왔으니 사전 사업 설명 등을 포함해 2022년 2월 최종 계약까지 10년 이상 소요된 사업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협상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입장에서는 지난한 협상 과정에서도 지속해서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략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려드는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외국 정부와 협상을 하다 보면 시일이 길어지는 경우가 잦다. 매일 만나면 빨리 완료할 수 있을 텐데 회의 일정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작년 12월에는 4일 계획으로 카이로에 출장을 갔다가 2주간 머무르게 되어 담당인 나와 중동아프리카협력과장님 둘이서 이집트 현지에서 성탄절을 보내기도 했다. 수출협상을 직접 수행하는 업체는 더욱 고되고 힘든 상황을 경험하기도 한다. 2주일 출장을 계획하고 이집트에 왔다가 6개월 이상 장기체류하는 직원도 있었고, 호텔 식사비용 절감을 위해 호텔 창고 한 칸을 빌려서 취사도구와 라면, 통조림 등을 보관해 놓고 사용하곤 했는데 다음 출장인원이 가서 라면을 먹고 보니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것이었다는 웃지 못할 상황도 펼쳐졌다.
국방 관련 협상은 외국의 정치상황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2010~11년 중동 지역을 휩쓸었던 ‘아랍의 봄’은 이집트에도 영향을 미쳤고, 대통령이 두 번 바뀌면서 국방분야 의사결정권자가 모두 바뀌어 사업을 사실상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도 K9자주포는 새로 집권한 대통령이 국방장관 재임 시절부터 관심을 두던 사업이었기에 다시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지만, 2~3년 이상의 사업추진 기간 지연은 피할 수 없었다.

K-방산 & One Team ③ 01 MOU를 체결하기로 사전 협조를 하고 이집트 측에서 행사장 준비도 완료했지만, 추가 협의가 필요함을 이유로 이집트 측은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출장인원 모두가 빈 책상을 보며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PCR 검사로 남아나지 않았던 코

국외출장이 잦은 우리 국에서 코로나19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위험인 동시에 출장 실무를 준비하는 담당들에게는 극악의 난도를 선사하는 장애물이다.
우선 코로나19 이전보다 비행편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환승에 따른 이동시간 증가 및 피로가 늘었다. 특히 청장님께서 한번 출장을 떠나시면 인니, 이집트, UAE, 폴란드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연계해서 다니시니 담당들은 국가 간 연결 비행편 중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찾느라 머릿속에 비행 이동 경로와 시간이 그려질 정도였다.
또한 입국·출국 시 각각 두 번씩, 그리고 국가에 따라서는 출장일정 간 매일 받아야 하는 PCR 검사 때문에 비용 증가는 물론 콧구멍이 얼얼해지는 경험도 계속해야 했다. 출장이 가장 많았던 중동아프리카협력과장님은 PCR 검사만 100번 가까이 받아야만 했다.(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받는 PCR 검사가 정식 절차대로 수행하기에 가장 고통스럽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K-방산 자부심

K-컬쳐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국외 여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외 출장 때문에 2021년과 2022년 사이에 외국을 수차례 방문했다. 공항 또는 길에서는 물론이고 때로는 협상을 하는 회의장에서도 BTS, <오징어게임>이 언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집트 K9자주포 수출사업, UAE 천궁-Ⅱ수출사업을 경험하면서 K-방산에 대한 자부심은 현장에서 오히려 더 잘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무기체계는 이미 어디를 가더라도 관심받는 무기체계가 됐다. 중동 국가들은 이전까지는 무기체계를 도입한 경우에 주변 정세를 이유로 함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두 수출사업은 수입국에서 먼저 나서서 SNS와 주요 보도 매체를 통해서 알리는 전략을 취했다. 이는 단순히 무기체계 도입을 알리는 것을 넘어서 주변국에 무기체계 도입을 통해 탄탄한 국방력을 과시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방산전시회에서도 한국 업체의 인기가 늘어난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한쪽 구석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유수의 방산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시회장의 주요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전시회 개최국 군 인사뿐만 아니라 무기체계에 관심 있는 다양한 사람이 전시회장을 찾고, 무기체계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2021년 10월 이집트 방산전시회에 참석한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방문한 외국 방산업체 부스는 라팔과 한화디펜스 단 두 곳이었고, 이는 계약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국가-국가 신뢰, 제품의 완성도가 뒤따라야

수출사업 중에서도 특히 방산수출은 국가와 국가 간 신뢰와 훌륭한 제품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기체계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것은 청장님께서 외국 인사를 만날 때 항상 말씀하시는 “Buy-Sell 관계를 넘어서서 상호 Win-Win 관계가 되는” 것에 가장 부합하는 국가 간의 협력이다. 업체가 단순히 세일즈 활동을 많이 한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며 정부가 대대적인 지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낮은 품질의 제품이라면 수출이 되기는 어렵다. 외국의 수요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높은 품질의 다양한 무기체계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업체와 정부가 원팀으로 협력해 외국과 협상에 임하고, 단순히 거래 상대방으로서가 아니라 국가 간 협력한다는 자세로 임할 때 최대 규모의 수출성과를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세계 자주포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K9자주포와 같은 무기체계의 저변이 커져 KF-21, 유도무기, 함정, 잠수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일등 무기체계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K-방산 & One Team ③ 02 드디어 K9자주포 협상이 완료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환담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