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일기 예보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온도는 날씨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역사 속 전쟁에서 이런 날씨의 변화는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안개가 도운 승리

안개는 대기 중에 작은 물방울이 떠다니는 현상이다. 이는 온도와 습도의 차이에 의해 공기 중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물방울이 형성되고, 이 물방울들이 모여 안개를 만든다. 안개는 시야를 가려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들기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특히 안개의 이점을 잘 활용했다. 1806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프로이센군이 독일 예나에서 격돌한 당시, 이른 아침 짙은 안개가 깔려 프랑스군의 이동을 숨겨주었다. 이를 통해 기습 공격이 가능해져 하루 만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아우어슈테트에서의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의 짙은 안개는 양측 병력의 위치와 수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들었고, 적은 병력을 가진 프랑스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두 전투 모두 새벽에 급격히 떨어진 온도로 인해 짙은 안개가 발생했으며, 이는 프랑스군에 유리하게 작동했다. 사실, 안개를 활용한 그의 전술은 처음이 아니었다. 1796년 몬테노테 전투에서도 나폴레옹은 짙은 안개를 이용해 오스트리아-이탈리아 동맹군을 포위한 후 승리했다.

무더위의 오판

안개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뛰어난 군사 전략가 나폴레옹도 오판을 범했다. 프랑스는 유럽의 패자가 되기 위해 당시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한 영국을 견제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인도와 영국의 주요 거점인 이집트를 정복하기로 계획했다. 프랑스군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후, 수도 카이로로 향했다.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에 패배해 바다를 피해 최단 경로인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행군을 결정한 것. 여기서 나폴레옹은 큰 오판을 저질렀다. 원정 시기는 7월, 두꺼운 군복을 입은 군사들은 45℃가 넘는 사막을 식수와 식량이 없이 건넜고, 더위와 탈수, 식중독이 겹쳐 많은 병력을 잃게 됐다. 결국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점령했지만, 손해가 많이 발생했다. 비슷한 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발생했다. 전장 역시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이었다. 북아프리카의 주도권을 놓고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과 독일의 롬멜 장군이 엘 알라메인에서 치열하게 싸운 전투는 넉 달간 이어졌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독일은 보급망이 무너졌고,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물과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군인들은 더위에 쓰러져 갔다. 전차 내부는 80℃를 넘는 온도로 치솟았고, 그로 인해 독일군은 큰 피해를 보았다. 결국 보급 부족과 더위를 이겨내지 못한 독일군은 패배를 맞이하게 됐다.

이렇게 추울 수가

혹한의 추위로 패망한 전쟁에서도 나폴레옹은 빠지지 않는다. 그가 추위를 오판한 지역은 바로 러시아였다.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약 6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을 떠났다. 그 사이 감염병이 퍼지면서 9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 병력은 겨우 10만 명에 불과했다. 힘겹게 도착한 모스크바는 사람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었고, 그 와중에 러시아군은 도시 곳곳에 불을 지르며 모스크바를 폐허로 만들었다. 음식과 의류를 구할 방법도 사라졌다. 결국 10월, 나폴레옹은 회군을 결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겨울이 일찍 찾아왔고, 비와 눈은 물론 -40℃에 달하는 혹한이 병사들을 덮쳤다. 그 결과, 살아 돌아온 군인은 4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전해진다.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6·25전쟁 중 유엔군과 중공군이 맞붙은 장진호 전투는 극심한 추위 속에서 벌어졌다. 장진호 지역은 함경남도 개마고원 일대의 산악지대이며, 기온이 -40℃까지 떨어지는 곳이다. 미군으로 이뤄진 유엔군은 함흥에서 강계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진격하다 중국군과 맞닥뜨려 전투를 시작했다. 당시 매서운 추위에 피가 나면 곧바로 얼었고, 총기와 수류탄도 무용지물이 됐다. 통신 장비는 자주 고장이 나며 전투에 큰 지장을 주었다. 이러한 혹한은 미군뿐만 아니라 중공군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줬다. 미군은 철수 명령을 받고 후퇴하는 과정에서도 추위 때문에 사상자가 많았다. 그러나 14일간의 시간을 확보해 준 덕분에 다른 부대들은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고, 10만 명을 구출한 흥남철수작전도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안개는 시야를 가려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들기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