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군사시설이 집약된 수원화성

수원의 대표적인 장소는 단연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과 함께 떠오르는 대표적 인물은 정조. 정조의 깊은 효심과 개혁의지가 깃든 수원화성은 그 시대의 첨단 기술이 응집된 곳이다.

새로운 성곽 양식, 수원화성

수원을 상징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원화성. 그 자체로 수원의 역사와 정체성을 잘 나타낸다. 신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던 정조의 열망을 담아 만들어진 조선의 계획도시가 수원이다. 정조의 왕권 강화 계획과 더불어 효심이 더해졌다.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양주 배봉산에 묻혀 있었다. 초라한 아버지 묘를 조선의 명당이라 불리는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화산에 거주하던 백성들을 수원 팔달산 아래로 이주시키고 성을 쌓았다. 그 성이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등재된 이유를 살펴보면, 계획적으로 세운 성곽 안에 읍성과 방어용 산성을 결합해 하나의 성곽도시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기존 축성 기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 일본, 유럽의 성곽을 면밀하게 연구해 조선에 가장 적합한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낸 점도 큰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이전의 성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어 시설들이 추가된 것도 큰 이유다.

수원화성은 전통적인 산마루에 축조된 성곽들과 달리 평지에 성을 쌓아 18세기 조선 사회의 상업적 번영과 기술 발전을 잘 보여주는 예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성곽 둘레는 약 5.8km, 면적은 130ha, 성벽의 높이는 4.9~6.2m로, 동쪽은 평지로,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다. 화성에는 총 49개의 시설물이 성곽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일부 시설물은 파손되거나 무너졌다.

성곽의 모습은 버들잎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정조의 취향과 맞닿았다. 원래 정약용이 제안한 설계도에서는 성곽 길이가 약 4.2km였으나, 성곽을 만들기 위해 깃발을 꽂으니 민가들이 성곽 밖으로 밀려나게 되자, 정조가 남북을 조금 길게 만들어 성곽을 5.8km로 수정했다. 이 모양이 마치 버들잎 모양과도 닮았다고 해서 정조는 화성을 ‘유천성(柳川城)’이라 불렀다. ‘柳’자는 버드나무를 뜻하며, 정조는 버드나무를 좋아해서 화성과 수원천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기도 했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화산(융건릉)과의 연계성을 위해 수원읍성을
비슷한 발음의 화성(華城)으로 지었다.

과학기술의 총합

화성의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첫 번째는 재료의 변화다. 기존의 성곽이 석재를 사용한 데 비해, 정약용은 성벽에는 석재를, 중요한 시설물에는 벽돌을 혼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벽돌과 석회를 섞어 성벽을 쌓으면서, 화포의 충격에도 견디도록 방어력을 강화했다. 또한 화살, 창검, 총, 대포 등 다양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군사 시설이 갖춰진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산성에서는 방어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약 100m마다 방어 시설을 보강해 성곽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48개의 노대, 포루, 치성, 옹성 등이 벽돌로 세워졌다. 성문인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창룡문에는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형태의 옹성으로 성문을 둘러싸 방어력을 보강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군은 성문을 쉽게 부수지 못하고,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도 어려워졌다. 성문마다 ‘누조’라는 물통을 두어 적군이 불을 지르면 다섯 개의 구멍인 ‘오성지’에서 물을 쏟아낼 수 있게 했다.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튀어나온 ‘치성’을 설치해, 측면 공격이 가능하도록 했다. 치성에는 대포를 설치할 수 있었으며, 군사들이 머물 수 있는 포루와 같은 시설도 마련됐다. 벽에 총구를 내어 내·외벽을 돌면서 적을 사격할 수 있는 ‘공심돈’과 같은 다양한 군사 시설도 갖추어졌다.

마지막으로, 최신 축조 기술을 적용했다. 정약용은 10가지 새로운 기계장치와 장비를 도입했는데, 거중기, 녹로, 유형거, 대거, 평거, 별평가, 발거, 동거, 구판, 설마 등이 있었다. 이 장비들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 기술을 참고하면서도 정약용의 독창적인 발상이 더해져 제작됐다. 이를 통해 공사 비용과 기간을 절감하며 효율적으로 성곽을 축조할 수 있었다.

수원화성이 궁금하다면 수원화성박물관으로

이런 수원화성의 다양한 이야기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수원화성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야외 전시장의 거대한 기구들이다. 그중 세 개의 기구는 화성 건설에 사용된 녹로, 거중기, 유형거다. 이 기구들은 모두 실제 크기로 재현되어 있어 당시의 기술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녹로는 11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 등을 들어 올릴 때 사용됐다. 거중기는 화성 건설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기구로, 작은 힘으로도 최대 7t까지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유형거는 자재를 운반하는 수레로, 언제나 수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박물관 1층에 들어서면 옛 수원의 모형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다. 당시의 수원은 논과 밭, 초가집,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화성으로, 그 위용을 엿볼 수 있다. 모형 앞으로는 화성 건설 당시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화성연표를 만나게 된다. 2층에 올라가면 화성축성실에서 화성 건설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으며, 화성문화실에서는 정조의 행차와 군사 개혁의 핵심인 장용영에 대한 자료로 이뤄졌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무엇보다 <화성성역의궤>다. 이 기록물은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성성역의궤>는 1794년 1월부터 1796년 8월까지, 수원화성 축성 과정에서 사용된 기자재와 사용법, 적의 공격에 대한 대응 방안, 공사법 등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 문서다. 글과 그림을 통해 당시의 건축술, 사회, 경제, 군사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록 덕분에 수원화성은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고, 유지보수와 복원에도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왕권 강화를 위해 세워진 부대 장용영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내용은 수원화성을 지키는 군대, 장용영에 관한 것이다. 조선 후기,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군사 제도는 왕이 아닌 노론 세력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왕의 개입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정조는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한 차례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데, 자객이 정조의 처소에 침입한 사건이었다. 정조는 자신만의 정예부대를 신설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1785년에 경호부대인 장용위를 설치한다. 처음에는 30여 명으로 시작한 장용위는 50명으로 보강됐고, 그 후 장용청으로 확대되며, 1788년에는 장용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장용영은 한양과 수원 두 곳에 설치됐다. 한양도성에 설치된 장용군사는 ‘장용영 내영’이라고 불렸고, 화성과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지키는 부대는 ‘장용영 외영’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수원행궁을 지키는 일이 주요 업무였으나, 화성 축성이 완료된 후에는 수도 남쪽 방어를 맡는 부대로 역할이 확대됐다. 그 중요성은 정조가 직접 군사 훈련을 지휘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 훈련 모습은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 행사를 기록한 의궤 중 하나인 한글본 <뎡니의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고,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복제본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군사훈련’에 관한 부분은 별도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고 보길 바란다. 그리고 당시 사용됐던 조선의 무기들인 활과 화살, 조총, 화포, 도검 등도 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 · 주소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 · 개관시간 :

    9시~18시(입장마감 17시)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공휴일과 중복 시 다음날 휴관)

  • · 입장료 :

    2,000원(성인 기준) ※ 통합관람권(수원화성박물관, 수원박물관, 화성행궁): 4,000원

즐길 거리

이왕 간 김에 여기도!

전국적으로 ‘○리단길’이라는 별칭이 붙은 길들이 많아졌는데, 수원에 있는 길은 행리단길이다. 행궁동에 위치한 이 길은 정확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성행궁 옆에 있는 화서문로와 신풍로를 끼고, 장안문과 화서문 사이의 넓은 지역을 대체로 행리단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 행리단길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만날 수 있으니 꼭 방문하기 바란다. 또 다른 즐길 거리는 화성어차다.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관광열차는 연무초등학교 옆 연무대 주차장에서 출발해 황호문, 장안문, 매향교 등을 돌아 다시 연무대로 돌아오는 코스로, 수원화성의 주요 군사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화성행궁도 꼭 방문해 볼 만한 명소다. 이곳은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할 때 머물던 임시 궁궐로, 정조가 12년 동안 13차례나 수원에 행차했을 때마다 이곳에 머물렀다.

안 먹으면 섭섭하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수원 왕갈비통닭입니다.” 영화 <극한직업>의 이 유행어가 전국을 휩쓸었을 때, 등장한 수원 왕갈비통닭은 그야말로 인기 상품으로 떠오르며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 유행어 속에는 수원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두 가지 음식이 결합되어 있다. 1940년대 수원 우시장에서 시작된 왕갈비와 1970년대 지동시장 근처에서 시작된 가마솥 통닭이 만난 결과물이다. 왕갈비통닭 외에도 프라이드와 양념치킨은 수원을 방문하면 꼭 맛봐야 할 음식이다. 수원 여행 중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은 특색 있는 커피숍들이다. 이곳의 커피숍은 다른 곳과 다른 특색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수원화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뷰맛집’이라는 것. 커피를 마시며 멋진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이런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