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이
세계를 물들이다

글. 김주덕(성신여대 생활산업대학 뷰티산업학과 교수)

일러스트. 이혜리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 K-팝이 세계의 무대를 흔들고 K-무비가 칸과 아카데미를 수놓았듯, ‘K-뷰티’는 한국인의 섬세한 미의식과 과학 기술이 탄생시킨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다.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은 기술과 문화, 감성이 어우러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동백오일에서 시작된 한국 화장의 역사
(1945~1960년대)

해방 직후, 한국의 화장품 산업은 전쟁의 상처 속에서 태동했다. 1945년, 서울 회현동의 작은 공방에서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 문을 열었다. 창립자 서성환은 동백오일을 원료로 한 ‘ABC포마드’를 만들어내며, 전후(戰後)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단정함’과 ‘희망’을 선물했다. 6·25전쟁때문에 부산으로 피난한 그는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ABC바니싱크림’과 ‘ABC유액’이 잇달아 출시되며, 위기 속에서도 브랜드의 생명력은 더욱 강해졌다.

1954년 서울 복귀 후 그는 국내 최초의 화장품 연구실을 설립하고, 일본 유학 경험자와 약학 전공자를 영입해 체계적인 연구개발(R&D) 시스템을 구축했다. 1959년에는 프랑스 코티(Coty)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코티 백분’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1962년에는 국내 최초의 남성 전용 크림을 선보였다. 전후 가난의 시대에 “남성도 관리 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인식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1960년대 태평양은 ‘아모레’ 브랜드를 출범시키며, 여성 판매원이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방문판매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단순한 유통 혁신을 넘어,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진출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로써 화장품은 단순한 미용품이 아닌 근대적 여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며 대한민국 뷰티 산업의 윤리적,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기능성과 기술력으로 산업화를 품다
(1970~1980년대)

1970년대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이자, 화장품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기였다. 보습 중심 제품에서 벗어나 노화방지, 자외선 차단 등 기능성 중심 화장품이 등장했다. 특히 태평양은 인삼사포닌을 추출해 국제특허를 등록하며, 한국 고유의 원료를 활용한 인삼화장품을 출시했다. 이는 한국적 정체성과 과학기술을 결합한 첫 시도로 평가된다.

1980년대 들어 화장품 업체가 급증하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기업들은 기술 혁신과 원료 개발에 집중했다. 미생물 배양기술과 조직배양기술을 활용한 히알루론산, 시코닌 등의 바이오 원료 화장품이 등장하며, 세계적 흐름에 발맞춘 기술혁신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 브랜드가 유입되면서 국내 산업은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원료의 수입 의존도가 80%를 넘었음에도, 품질 개선과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 자립도를 높였고, 이러한 기반은 이후 K-뷰티 도약의 발판이 됐다.

한류와 함께 세계의 문을 두드리다
(1990~2000년대)

1990년대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흐름이 뷰티 산업을 관통했다. 녹차, 알로에, 인삼 등 천연 추출물 기반 화장품이 주류로 떠올랐고, 피부 건강과 환경을 고려한 ‘자연주의 화장품’이 등장했다. 이 시기 소비자 인식 변화는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한류 드라마가 아시아를 강타하면서, 배우들의 투명한 피부 이미지가 K-뷰티의 브랜드 가치로 이어졌다. ‘겨울연가’의 최지우, ‘대장금’의 이영애, ‘풀하우스’의 송혜교 등 대한민국의 콘텐츠를 대표하는 얼굴들이 곧 한국 화장품의 글로벌 광고판이었다. ‘한국 여성들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것도 이 시기였다.

2000년에는 「화장품법」이 제정되어 ‘기능성화장품’ 개념이 법적으로 도입됐다. 세계 최초의 법제화였다. 이는 화장품이 단순한 ‘사치재’가 아닌 과학기술 기반 산업으로 격상시킨 상징적 사건이었다. 2002년에는 초저가 브랜드 ‘미샤’의 등장으로 원브랜드숍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대중들 사이에서도 화장품은 ‘사치재’에서 ‘일상 소비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유통 마진을 최소화하는 원브랜드숍의 저가 전략은 도매상이 제조사로부터 물건을 납품받아 소매점(멀티 브랜드숍)으로 납품하던 기존의 유통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는 또한, 화장품 ODM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의 화장품 제조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기반을 마련했다.

2008년부터는 정부의 지원 사격도 본격화됐다. 화장품 산업이 국가 미래전략 산업으로 지정되면서 R&D 지원과 수출 정책이 강화되어 화장품의 해외 시장 진출이 날개를 달았다.

K-컬처와 함께 피어난 세계 속의 아름다움
(2010년대~현재)

2010년대는 K-팝, K-드라마, K-무비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시기였다. ‘한류’의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K-뷰티가 있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 화장품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한국인의 미학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기술이 결합된 문화 상품으로 인식됐다.

2012년, 대한민국의 화장품 수출 규모는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24년에는 102억 달러에 이르며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대기업 중심의 프랑스, 미국과 달리 중소기업과 인디 브랜드가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도 고무적이다. 국내 화장품 유통 채널이 인터넷과 H&B 스토어 등으로 다변화되고 내수가 아닌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대한민국의 인디 브랜드들은 K-뷰티를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게 하는 독특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력과 제조 역량, 인적 역량이 제한적인 인디 기업들이 이처럼 하나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디 브랜드 특유의 창의성과 다양성, 민첩성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OEM·ODM 기업과의 전략적 상생·협력 관계를 형성한 것이 주효했다.

대한민국 화장품의 강점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선진국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관리 시스템, 둘째, 빠른 트렌드 감각과 기획력, 셋째, 자연 친화적이고 윤리적인 브랜드 이미지다. 이 세 가지 축은 K-뷰티를 ‘지속 가능한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화장품은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품목 부동의 1위(64.3%)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명동과 성수동의 로드숍 거리는 세계인이 찾는 K-뷰티의 성지가 됐다. 동시에 SNS와 유튜브, 틱톡 등을 통한 디지털 뷰티 생태계가 형성되어 글로벌 소비자와 한국의 뷰티 브랜드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열렸다.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 기술과 감성의 융합

오늘날 K-뷰티는 더 이상 ‘한류의 부산물’이 아니다. AI 피부 진단, 맞춤형 조제, 3D 프린팅 마스크팩, 업사이클링 패키지 등 첨단 기술과 지속가능성이 결합된 미래형 융복합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환경과 윤리를 고려한 ‘클린 뷰티’, 대한민국의 문화와 지역 특성을 담은 ‘로컬 뷰티’로서의 가치도 주목받고 있다. K-뷰티가 외연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삶의 철학이 담긴 문화 코드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의 화장품은 더 이상 유행을 좇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가 K-뷰티의 감성과 기술을 배우고 있다. 광복 80년, 재와 먼지 속에서 시작된 한국의 화장 문화는 세계인의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K-뷰티의 여정은 과거의 복원에서 미래의 창조로, 생존의 산업에서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인의 섬세한 감각과 창의성이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