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총 등장이요!

영화와 소설 속 총은 하나의 소품이지만, 장르의 분위기와 캐릭터의 성격, 서사의 추진력에 따라 강력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망토 휘날린 서부극 속 총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선 두 남자. 긴장감이 감도는 한 사람의 손은 가죽 홀스터 근처에서 미세하게 움직인다. 바람에 모래만이 휘날리는데 ‘빠라빠라빰 와와와~’ 노랫소리가 흐른다. 이때 앵글이 서서히 위로 올라와 한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무표정한 얼굴에 절제된 액션, 그리고 서늘한 눈빛을 지닌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그리고 그가 빠르게 손에 쥔 건 ‘콜트 1851 네이비 리볼버(Colt 1851 Navy Revolver)’. 이 모습은 영화 ‘석양의 무법자’ 속 한 장면이다. 이제 서부극의 대표적인 장면이 되어버린 이 장면은 개봉한 지 약 6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패러디되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한 콜트 1851 네이비 리볼버는 실린더를 회전시키며 장전된 6발이 발사되는 리볼버다. 실제로도 당시 미국 서부 지역에서 민간인들이 많이 사용하던 리볼버였다. 콜트사에서 6연발이 나오기 전 미국의 총기는 총알을 넣고 한 번 쏘면 재장전하는 형태였다. 이런 중에 연발식으로 출시된 콜트사 리볼버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였다. 그 중 콜트 1851 네이비 리볼버는 기존 리볼버에서 소형·경량된 1851년의 모델이다. 이외도 각종 리볼버와 소총, 산탄총 등이 등장했다. 서부극에서 총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룰을 정하는 심판이자 타이머였다. 권총이 ‘덜컥’ 뽑히는 순간, 승부가 시작되니 말이다.

턱시도를 맨 사나이의 총

“딴 따다단 딴딴” 음악 소리와 함께 등장한 턱시도를 입은 사람,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권총 하나. 이어진 강선으로 만들어진 강렬한 외곽 이미지. 이 설명으로 쉽게 생각나는 인물은 제임스 본드. 007 시리즈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역시 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007 시리즈는 영화로 유명하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언 플레밍이 1953년 《카지노 로얄》로 시작해 14권의 책을 펴냈고 이후 여러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아 소설이 나왔다. 제임스 본드는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정보부 경험을 꾹꾹 눌러 담아 창조한 인물이다.

영화 속 오프닝 이미지의 실루엣 속에 등장한 총기는 월터(Walther)PPk다. 이 총은 휴대성이 좋게 콤팩트 사이즈를 지녔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월터PPk는 세계 최초로 더블 액션 권총인 월터PP를 개량한 권총이다. 방아쇠 한 번에 해머 젖히기와 발사를 동시에 해내는 더블 액션 구조로 인해 출시된 1931년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독일 경찰과 군 장교들이 사용했는데 이 보다 작게 개량한 것이 월터PPk다. 여기서 k는 독일어로 ‘짧다’라는 kurz의 단어에서 온 말이다. ‘작지만 할 건 다 하는’ 월터PPk는 1962년 영화 시리즈의 시작부터 1990년대까지 본드는 오랫동안 함께했다. 이후 18번째 시리즈부터 발터 P99로 바뀌며 장탄수와 탄종이 조금은 현대화됐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본드의 손에는 다시 월터PPk가 돌아오기도 했다. 2021년 작품 ‘노 타임 투 다이’에서는 PPK/S와 최신 개조 권총이 병용됐다. 배우는 바뀌어도, 본드의 총은 캐릭터의 정체성을 떠받치는 중요한 상징으로 기능해 온 것이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제작이 중단된 007 시리즈가 최근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맡은 배우가 물색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연 새롭게 탄생할 제임스 본드의 손에는 어떤 총기를 들고 등장할까?

문학의 원리에서의 총

소설 속에서 총은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총은 사랑과 절망의 비극을 상징했고, 《레미제라블》에서는 혁명과 저항, 사회적 갈등의 표식이었다.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위협 앞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용기와 보호의 장치였다. 이런 총이 도구를 넘어 문학 이론에도 등장한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말한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은 무자비하게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총을 소개했다면 2장이나 3장에서는 반드시 총을 쏴야 하며, 만약 쏘지 않을 것이라면 과감하게 없애버려야 한다”라는 원칙, 일명 ‘체호프의 총’이다. 이 원리는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고 플롯에 의미 있는 장치만을 남기라는 요구로 자리 잡았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소품, 행동들 등 모든 것은 복선이나 떡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초반의 소품이나 인물 설정이 후반부의 결정적 순간을 만드는 사례는 숱하다. 《해리포터》에서는 초기에 제시된 성물들이 마지막 대결의 열쇠가 되고, 처음엔 주변에 머물던 인물이 뒤늦게 서사의 추를 바꾸기도 한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이야기 초반 놀잇감으로 사용하던 배가 후반부의 탈출과 은신의 공간으로 쓰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도 여전히 이 원리를 따르는 것이 많다. 물론 떡밥을 던져놓고 끝내 회수하지 못한 사례들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