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변화해 온 질량 정의

바빌론의 탑이 무너진 이유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 언어 장벽이 생겼고, 이에 따라 불신과 오해가 쌓였기 때문이다. 단위도 마찬가지다. 문화, 지역, 시대에 따라 너무도 다양한 단위들이 존재해 서로 다른 해석과 혼란을 초래했다.
이런 혼란을 정리한 중요한 전환점은 프랑스혁명이었다. 프랑스혁명 이전, 유럽에는 약 25만 가지의 도량형이 뒤엉켜 사용됐다. 각 지역의 영주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발생하는 특정 도량형을 선택적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시작되면서 통합되지 않는 단위들을 왕정 시대의 잔재로
여겼고, 이를 해결하려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1791년,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준을 지구로 설정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칙을 따른 결과였다. ‘지구 북극점에서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지나 적도까지 가는 거리의 1,000만분의 1’을 새로운 길이의 기준으로 정했고, m를 길이의 기호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m(미터)라는 단위가 탄생했다.
왜 길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냐고 의문이 들 수 있다. 질량은 이런 미터로 인해 생겨난 정의이기 때문이다. 처음 고안된 질량 단위는 ‘Grave(그레이브)’였다. 1Grave는 0℃에서 물 1cm3(가로×세로×높이)에 해당하는 물의 질량으로 정의됐다. 하지만 Grave라는 이름은
‘Gravitas(중력)’에서 파생됐지만, 귀족을 뜻하는 ‘Graf’와 비슷한 발음 때문에 비판이 제기되어 폐지됐다. 그 후 1795년 새로운 법안에 따라 질량 단위를 ‘g(gram, 그램)’으로 정의됐다.
g은 라틴어로 gramma에서 유래됐으며, 1g은 1,000분의 1Grave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 단위가 너무 작아서 정밀도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았고, 1798년 1,000배를 뜻하는 ‘Kilo(킬로)’의 접두어로 붙여 kg이라는 단위가 탄생했다. 1kg은 ‘4℃에서 물 1L의
질량’에 해당됐는데 물을 기준으로 삼기엔 재현성이 떨어지고 불안정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하나의 물체를 만들어 이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바로 이 물체가 ‘국제 킬로그램 원기’다. 이 원기는 백금으로 제작됐으며, 1870년대까지 질량의 표준 역할을 했다. 이후 다시 합금으로
바뀌었다가 1889년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90% 백금과 10% 이리듐 합금으로 만들어 1kg의 ‘르그랑K’라는 새로운 원기로 교체됐다.
원기의 세대교체

가로·세로 각 39mm인 원기둥 모양의 킬로그램 원기는 온도와 습도 조절이 철저히 이루어지면서 외부 공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3중 유리관으로 밀폐된 상태로 보관됐다. 원기는 세상 어떤 금속보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파리 근교 세브르 국제도량형국 금고에 보관됐다. 원기와 백업용 복제품 6개는 여러 나라의 요청에 따라 복제되어 배포됐고,우리나라도 1894년경 고종이 즉위하던 시점에 킬로그램 원기 39번을 도입하게 됐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에 보관 상태가 악화되어 1993년 원기 72번을 도입했고, 2003년에는 84번, 2017년에는 111번 원기를 도입해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4개의 원기를 보관하고 있다.
이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약 130년간 통용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기의 질량은 미세하게 변했다. 이는 원기가 지속적으로 마모되고 표면에 오염물질이 축적되며 산화되기 때문이다. 마모를 막기 위해 지난 129년간 철저히 보관되면서 단 네 차례만 금고에서 꺼냈는데도 말이다. 그 결과, 원기의 질량이 약
50μg(0.00005g) 정도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그 정도가 모래 알갱이나 미세먼지와 같은 질량이지만, 과학계에서는 이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겼다. 왜냐하면 단위의 기준이 변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원기의 변화는 ‘단위의 본질’이 무너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 측정하든 변하지 않는 기준이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측정값에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제 도량형총회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를 기준으로 새로운 단위를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2019년 5월 20일부로 질량의 기준은 더 이상 물질이 아닌, 물리 기본 상수인 플랑크 상수(ℎ)로 정의됐다.
현재도 사용되는 전통의 질량 단위

우리나라도 오랜 시간 자체적인 무게 단위를 사용해 왔다.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비공식적으로 널리 쓰이는 단위가 바로 ‘근’이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1근 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이때 근이 무게의 근이다.
이 ‘근’은 단순한 편의적 표현이 아니라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단위다. ‘근’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단위는 중국에서 유래됐고, 그 배경에는 진시황이 있다. 진나라 이전의 중국은 다양한 민족과 언어, 문화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기능하기
어려웠다. 진시황은 강력한 왕권 아래 나라를 통일하며 모든 것을 표준화했는데, 여기에는 무게 단위도 포함됐다. 이 시기 만들어진 도량형은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푼(分), 돈(錢), 냥(兩), 관(貫), 근(斤) 등 다양한 무게 단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단위 체계는 훗날
‘척관법’으로 발전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황종관에 물의 중량 88분을 기준으로 삼고, 10리가 1분, 10분이 1전, 10전이 1량, 그리고 16량이 1근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정리하면, 1근은 16냥이며, 1냥은 약 37.5g에 해당한다. 따라서 1근은 약 600g이 되는 셈이니 돼지고기 1근은 곧
600g이라는 의미다. 그 외에도 ‘돈’은 금이나 보석처럼 고가의 금속을 잴 때 사용하는 단위로, 약 3.75g에 해당한다. 1냥은 10돈, 즉 37.5g이며, 가장 작은 단위인 ‘푼’은 약 0.375g으로 약재나 귀금속의 정밀 측정에 주로 사용된다. 10푼은 1돈이다.
여기서 아리송한 부분이 바로 근이다. 고기처럼 1근이 600g으로 통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채소를 살 때는 ‘1근’이 400g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이유는 바로 거래 방식의 차이다. 채소는 대량으로 거래되다 보니 과거에는 ‘관(貫)’을 기준으로 삼았다. 원래 1관은
약 6근이었지만, 거래를 간편하게 하려고 사람들이 1관을 10근으로 간주하면서 자연스럽게 ‘1근=10냥’이라는 계산이 생겼다. 이 경우 1냥은 약 37.5g이므로, 10냥인 1근은 약 375g이다. 이 단위를 반올림해 시장에서는 400g 정도로 통용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고기의 ‘근’과 채소의 ‘근’이
서로 다르게 사용된다.
참고로, 중국에서도 ‘근’을 사용하지만, 그 기준은 또 다르다. 중국의 1근은 500g 정도이다. 그러니 중국 여행 중 시장에서 ‘1근’을 주문했을 때, 우리 기준으로 100g 부족하다고 당황하지 말자.
포도주 통으로 무게를

무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질량 단위는 ‘t(톤)’이다. 1t은 미터법 기준으로 1kg의 1,000배에 해당되는 단위다. 그런데 이 t이란 단위는 쓰이는 분야와 맥락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달라진다. 미터법에서의 t은 본래 총질량을 나타낸다. 하지만 선박으로 넘어오면 적재능력이나 부피를 의미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3,000t급 상선, 5t 어선 같은 표현은 무게가 아닌 적재 가능한 용적을 말한다.
이 t의 단위 어원은 흥미롭게도 ‘술통’이다. 라틴어 tunna에서 유래된 말로, ‘tun’은 대형 술통을 의미하며, 프랑스어로는 300~750L 크기의 포도주 통을 tonneau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왜 하필 ‘술통’이 단위가 됐을까? 과거 유럽에서 해상 운송이 활발해지던 시기, 각국은 선박에 세금을
부과할 기준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배의 크기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실린 화물인 포도주통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몇 개의 포도주 통을 실을 수 있는가에 따라 배의 크기와 운송 능력을 가늠한 것이다. 이 방식은 특히 영국에서 널리 채택되며 정착됐고, 이후 국제적으로도
퍼지게 된다. 선박 한 척이 1,000개의 포도주 통을 실을 수 있으면 1,000t, 1,500개면 1,500t으로 보는 식이었다. 참나무로 만든 통은 둥글고, 내부에 담긴 포도주는 해수보다 비중이 작아서 실제 적재 무게보다는 용적에 더 가까운 방식으로 계산하게 됐다. 결국 t은 단순한 무게가 아니라 실을
수 있는 부피와 운송 능력을 뜻하는 지표가 됐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함정에서는 이와는 조금 다른 t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대형수송함 마라도함은 14,500t, 한산도함은 4,500t으로 표기되는데, 이 경우 t은 ‘배수량’을 의미한다. 배수량은 함정이 물에 떠 있을 때 밀어낸 바닷물의 양으로 계산한 무게로, 중량톤수이다. 배의 실제 무게를 직접 잴 수는 없기
때문에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그 원리를 활용했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다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자기 몸무게만큼 물이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원리는 물속에 잠긴 물체가 그만큼의 부피만큼 물을 밀어낸다는 ‘부력의 법칙’이고, 이 개념이 바로 ‘배수량’의 기반이 된다.
함정의 무게를 측정할 때는 ‘경하배수톤수’와 ‘만재배수톤수’로 구분한다. 경하배수톤수는 기계장비와 설비만 포함된 순수한 선박의 무게를 뜻하고, 만재배수톤수는 화물, 연료, 승조원까지 전부 실은 상태의 무게를 말한다. 또한 ‘표준 배수량’이라는 개념도 있는데, 이는 과거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서 함정의 크기를
제한하기 위해 정한 기준으로, 승조원과 탄약은 포함하되 연료와 식수는 제외한 배수량이다. 이 배수량도 t으로 표기된다. 왜냐하면 물 1L의 무게는 정확히 1kg이고, 물의 비중은 1로 정의되기 때문에 1m³는 1,000L, 즉 1t에 해당한다. 그래서 배가 밀어낸 물의 부피(m³)를 곧바로 무게(t)로
환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