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속 조선의 화력무기

진주성은 임진왜란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곳이다. 패배와 승리를 모두 겪은 진주성전투, 그 안에는 조선 무기의 진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임진왜란의 또 다른 요충지, 진주

‘역사와 문화의 도시’, ‘경남의 중심지’, ‘물과 빛의 도시’라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 진주. 그중에서도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진주성, 촉석루 같은 유산은 물론이고, 임진왜란 3대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왜군이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하며 벌어진 전쟁이다. 1592년 4월, 부산진성이 함락된 후 왜군은 거침없이 북상했고, 선조는 결국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피신한다. 그 사이 한양은 함락되지만, 5월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사천해전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가 전환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곽재우의 의병군도 정암진 전투에서 성과를 올렸지만, 선조는 평양조차 포기하고 의주까지 물러난다. 이어 평양성마저 왜군에게 점령당하고, 조선 전역은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7월 8일,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이 승리하고, 곳곳에서 의병군들의 저항이 이어진다. 후방에서 조선 의병의 거센 반격을 받은 왜군은 결국 전선에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평양에서는 조명연합군의 압박에 밀려 한양까지 후퇴하게 된다.

바로 이 혼란의 시기, 1592년 10월. 제1차 진주성전투인 진주대첩이 일어난다. 진주는 당시 경상도 서부 일대를 관장하던 전략적 거점이었다. 무엇보다 왜군이 곡창지대인 호남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고, 바닷길은 이순신의 수군이 틀어막고 있었기에 육로 확보가 절실했던 왜군에게 진주는 반드시 점령해야 할 요충지였다.

진주성전투가 진행되기 전, 진주목사가 병사하자 김시민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진주성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2만여 명의 왜군이 대나무 사다리 수천 개와 높다란 산대를 쌓아 진주성을 공격했고, 이에 맞서 조선군 3,800명과 성안의 민간인 2만 명이 끝까지 저항한다. 조선군은 대기전(화약무기), 끓는 물, 큰 돌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어에 나섰다. 압도적인 병력 차이,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조선군은 끈질기게 버텼고, 결국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둔다. 김시민 장군은 이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끝내 그해 11월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지휘력과 외곽에서 의병들이 협공한 전략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반격의 상징이 됐다.

진주성 그리고 논개

진주대첩의 무대가 된 진주성은 천혜의 방어 지형을 갖춘 곳이었다. 남강을 끼고 주변 지형을 활용해 축성됐고, 고려 말에는 토성에서 석성(石城)으로 개축되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구조로 재탄생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진주성은 과거보다 축소된 모습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은 현재보다 약 3배 정도 넓었고,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큰 연못을 매립하는 과정에서 외성이 훼손되면서 지금은 내성만 남아 있다.

진주성을 찾는 많은 이들이 가장 많이 향하는 곳은 단연 촉석루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이 누각은 여러 차례의 복원을 거치면서 원래 이름인 ‘장원루’에서 지금의 ‘촉석루’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었고,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지휘소로 사용됐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지휘소로 활용됐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이층 누각인 촉석루는 지금도 위엄 있게 진주 남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 촉석루와 함께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논개다. 논개가 등장한 시기는 제2차 진주성전투 때다.

1592년 1차 전투에서 패배한 왜군은 이듬해인 1593년 7월 다시 진주성을 공략한다. 이번에는 무려 9만 3,000여 명의 대군이었다. 상황은 전보다 훨씬 열악했다. 명나라 군은 지원을 포기했고, 권율 장군과 곽재우 의병장 등 조선 장수들도 진주성을 포기하며 철수했다. 결국 진주성은 고립됐다. 끝까지 남아 저항한 황진 장군의 전사는 조선군의 사기를 크게 꺾었고, 진주성은 결국 함락된다. 성안으로 들이닥친 왜군은 군인과 백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을 저지르며, 약 6만 명이 희생당한다. 이 비극의 끝자락에 논개의 이야기가 있다. 진주성을 점령한 왜군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한 연회를 촉석루에서 연다. 논개는 왜장을 유인해 촉석루 아래 남강 절벽 ‘의암’에서 함께 몸을 던진다. 지금도 촉석루에서 남강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의암’이라 불리는 작은 바위가 있다. 생각보다 아담하고 단출한 바위지만, 논개의 의로움과 절개를 기리는 상징적 장소다.

진주성에는 이 외에도 논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의기사, 김시민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전공비, 그리고 조선시대 경상우병영의 실무 공간이었던 중영, 당시 식수 공급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 그리고 임진왜란을 집중 조명한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

진주성은 남강과 주변 지형을 활용해
만든 천혜의 방어가 가능한 곳이었다.

조선의 무기를 한눈에

으레 박물관 하면 딱딱해서 ‘노잼’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몇 해 전부터 박물관이 달라졌다. ‘굿즈 맛집’, ‘열일하는 박물관’ 등 전혀 상관없을 법한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물관별 특화 전시를 통해 각자의 특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을 ‘핀셋’ 공략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1층과 2층 모두에 걸쳐 임진왜란실이 마련되어 있고, 진주대첩을 포함해 전쟁 당시 사용된 무기들을 집중 조명한다. 입구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일본, 명나라 등 주변국의 정치·군사 상황이 세계사 연표와 함께 정리되어 있어, 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는 단연 화약무기들이다. 입구에 전시된 비격진천뢰는 조선 선조 때 이장손이 개발한 무쇠 포탄으로, 임진왜란에서 실제 사용된 전력이 있다. 특히 경주성 전투에서 위력을 발휘해 왜군을 효과적으로 몰아낸 대표 무기다. 또 당시 조선은 크기별로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등 네 가지 화포를 운용했다. 이 가운데 ‘현자총통’은 정유재란 직전에 만들어졌고, 나머지 세 화포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실전 배치됐다. 수성전, 공성전 등에서 조선 보병이 주로 사용했다.

반면, 일본군은 조총을 전면에 내세웠다. 일본은 1543년 포르투갈 상인에게 조총을 처음 접한 후 기술을 자체화했고, 1575년부터는 내전에도 활용하면서 철포(뎃포) 운용 능력을 키웠다. 여기서 흥미로운 어원도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무대뽀’라는 말, 바로 이 일본어 ‘뎃포(鉄砲)’에서 나온 말이다. 무(無) + 뎃포 = 무데뽀, 즉 ‘철포도 없이 막무가내로 덤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총도 없이 무모하게 전투를 벌였다는 의미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조총의 위력이 강했다는 의미일 터다. 아마 임진왜란 당시 일본도 우리를 향해 이 말을 남발했을지 모른다.

조선에도 조총이 들어오긴 했다. 1589년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가 선물한 것이 그 시작이지만, 조선은 당시 서양식 무기 기술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선조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한창이던 1593년에 들어서야 자체 제작에 겨우 성공한다. 전투에 있어서 화력의 격차는 곧 전세의 간극으로 이어졌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과 명나라의 무기, 갑옷, 문서, 그림 등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임진왜란 피난 일기인 오희문의 <쇄미록>, 화포 모형, 활, 창, 철곤, 완구 등의 무기를 터치스크린으로 작동 원리까지 알아볼 수 있다.

박물관 2층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 칼, 판옥선, 거북선 관련 자료들이 마련되어 전쟁 전체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참고로 7월 8일,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 출전시킨 날을 기념해 ‘방위산업의 날’로 정하고, 해당 시기에 다양한 기념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국립진주박물관
  • · 주소 :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35

  • · 누리집 :

    jinju.museum.go.kr

  • · 개관시간 :

    9시~18시(입장마감 17시 30분까지)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1월 1일, 설·추석 당일)

  • · 입장료 :

    무료(진주성 내에 있어 진주성 입장료 2,000원(성인 기준) 필요)

화력무기를 영상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은 2020년부터 시즌별로 화력무기와 관련한 다양한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식의 화약무기, 조명연합군과 후금 간에 벌어진 사르후전투, 정주성 전투의 단편영화, 조선 화포에 대한 이야기 등이 인기다. 영상은 박물관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즐길 거리

뷰맛집은 여기

진주성과 촉석루를 제대로 눈에 담고 싶다면, 남강 건너편에 있는 남가람공원을 추천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진주성 전체 뷰 포인트’다. 남가람공원의 가장 큰 매력은 잘 정비된 대나무숲 길.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여름에도 산책하기 좋고, 중간중간 나무 사이로 촉석루와 진주성, 의암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포인트가 숨어 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진주남강유등전시관도 추천 코스다. 이곳에서는 유등의 역사, 과거와 현재의 기술로 연출된 유등 등을 만나고, ‘인생샷’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났다. 조금 여유가 된다면 유람선을 타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낮에는 진주성의 위엄을, 밤에는 조명이 어우러진 남강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물빛나루쉼터는 유람선 매표소이자 전망대, 카페 역할을 겸하는 공간인데, 전면 유리로 마감된 구조 덕분에 휴식하면서 보는 뷰가 꽤 근사하다.

일단 먹고 보자

냉면 하면 평양냉면, 함흥냉면만 떠오르기 쉽지만, 진주냉면은 그 못지않은 역사를 자랑한다. 진주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해산물과 소고기를 함께 끓여낸 육수에 계란 입은 육전이 얹어진 것.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음식이지만, 6·25전쟁 이후에는 명맥이 끊겼다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복원 작업이 이뤄졌다. 박물관과 넓은 진주성을 여행하다가 출출한 타이밍에 진주성 입구 쪽 중식당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 육즙 터지는 딤섬부터 찹쌀완자까지, 딤섬 라인업이 꽤 괜찮다. 진주 여행을 하다 보면, 이곳의 마스코트인 ‘하모’ 캐릭터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남강에 사는 수달을 귀엽게 형상화한 캐릭터로, 마카롱 같은 간식부터 굿즈, 카페 인테리어까지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진주남강유등전시관 옥상에 있는 카페에서도 하모 굿즈를 만날 수 있으니, 들러보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