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크고 더 무겁게

더 나은 무기를 만들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기술 발전을 이끈다. 그런데 꼭 실용적인 방향으로만 가는 건 아니다. 무게 생각을 안 한 갑옷, 크기만 키우다 실효성 없는 전차까지. 방향이 종종 엇나가기도 한다.

움직이기가 너무 불편한 갑옷

방어 무기의 대명사인 갑옷. 갑옷의 미덕은 가볍고 튼튼하면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옷의 역사에서 갑옷이 부의 상징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중세시대 갑옷은 휘황찬란한 사슬갑옷에 번쩍이는 투구까지, 당시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럭셔리템 그 자체였다. 철판을 두르고 못을 박아 만든 갑옷의 무게는 지금 감각으로도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다. 영화에서처럼 갑옷을 입고 말에 휙 하니 날렵하게 올라타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엄청난 무게 때문에 말을 타기 위해서는 종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기도 어려웠다고 하니 과연 실용성은 얼마나 있었을까 의문스럽다. 실제로 영국 연구진이 15세기 갑옷을 재현해 봤는데, 무게가 30~50kg에 달했다. 이걸 입고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실험까지 했는데, 같은 무게의 등짐보다 에너지 소모가 더 컸다고 한다.

이런 무거운 갑옷이 미국에서도 개발됐다. 19세기 말, 제1차 세계대전 경에 기관총이 등장하면서 이에 맞서 머리와 가슴을 보호할 수 있는 ‘브루스터 바디 실드(Brewster Body Shield)’가 등장한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철합금으로 만든 18kg 갑옷이었다. 모양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 같다. 미군은 이 갑옷에 직접 총을 쏘며 실험까지 했고, 총알을 막아내기도 했다. 문제는 너무 무거워서 자연스럽게 움직이질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방탄조끼는 6kg 정도이니, 무게가 3배 정도 된다. 움직이기 불편했던 건 당연했다. 구조 때문에 허리를 숙이기가 힘들어 결국 시제품만 몇 개 만들고 끝났다.

열차와 포의 조합, 진짜 실화?

‘열차포’라는 무기를 아는가? 이름 그대로 기차 위에 거대한 포를 얹은 형태이다. 19세기에 요새를 짓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성과 요새를 공격하는 공성포도 덩달아 커졌고, 이를 옮기기 위해 증기 기차를 이용했다. 그런데 옮기고 설치하는 게 힘들다 보니, 둘을 합쳐버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현실화됐다. 그렇게 열차포는 남북전쟁 때부터 하나둘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열차포 중 가장 거대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만든 ‘슈베어 구스타프(Schwerer Gustav) 열차포’다. 프랑스 마지노선을 뚫기 위해 제작된 열차포인데, 포신 길이 32.5m, 구경 800mm의 포구에는 성인 한 명이 쏙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포탄은 무려 4.8t, 작약만 700kg이 들어갔다. 포탄은 최대 약 50km까지 발사되는데, 한 번에 요새 하나가 순간에 사라졌다.

그런데 너무 커서 문제였다. 구스타프 열차포는 총무게가 약 1,350t. 혼자서 포병대대 하나를 운영해야 할 정도로 컸다. 문제는 그 탓에 항공기의 공격에 그냥 노출된다는 것이다. 또 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현장까지 포를 분해해서 열차로 나뉘어 이동했고, 다시 조립하고 전용 철로를 설치하기까지 1달 이상이 소요됐다. 한 방을 쏠 때마다 특수 귀마개를 쓰지 않으면 고막이 나간다는 얘기도 있다. 한 대에서 쏜 포가 50발이 되지 않을 정도로 포신의 수명도 길지 못했다. 효용성이 작아지면서 거의 무기로서의 가치는 사라진 것이다.

크고 무거운 전차, 이쯤이면 집착

무기의 끝판왕을 ‘크기’로 찍으려던 걸까? 독일은 특히 거대 전차에 진심이었다. 히틀러가 꿈꾼 전차, P-1000 라테(Ratte). 이름 속 숫자는 무게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1,000t의 전차다. 이건 기존에 있던 128mm 포를 장착한 전차 ‘마우스(Maus)’의 확장판이다.

원래 마우스는 100t짜리 전차를 계획하며 개발을 시작했는데, 히틀러가 더 큰 전차를 원해 결국 180t까지 나가는 전차가 완성됐다. 당시 마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전차였다. 그런데 이 무게 때문에 도로를 달리면 자국이 남았고, 주변 건물 유리창은 깨졌고, 부교를 건너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탄약도 생각보다 많이 싣지 못했다. 시제기 2대가 만들어졌지만, 포탑까지 완성된 건 단 한 대뿐이었다.

그런데 이 마우스조차 도로 주행이 힘들었는데 1,000t 전차가 가능하긴 했을까? 사실 라테는 계획뿐인 상상의 전차다. 순양전함용 주포를 얹고, 히틀러의 거대한 욕망을 담아 계획했지만, 연비며 구조며 현실성은 없었다. 심지어 1,500t짜리 전차도 기획됐는데, 이름부터 ‘P-1500 몬스터’. 이쯤 되면 진짜 무게로 적을 누르려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이 모든 건, 거대한 병기를 좋아한 히틀러의 망상에 가까운 계획이었다.

사진 출처 : ⓒ 위키메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