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게임 산업의 여명기(1970~1984)
한국에 게임기가 처음 들어온 건 1971년. 서울 어린이회관에 설치된 미국산 아케이드 게임기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당시엔 이 기기를 ‘과학 교육용 기기’로 소개했을 정도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전자오락실이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지만, 당시엔 게임에
관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태였다. 대다수 오락실은 비공식적 운영됐고, 게임을 즐기던 청소년들은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찍히는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빠른 시간 내 전국에 2만 개가 넘는 전자오락실이 생겨났지만, 게임의 문화적, 산업적 가능성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고, 오히려 규제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8개 부처가 오락실 규제에 관여하면서 ‘산업으로서의 게임’은 정책 테이블에조차 오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단계
외산 게임 유입과 국산 게임의 태동기(1985~1990)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콘솔 게임, 미국의 PC 게임이 본격 유입됐다. 동시에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국산 게임 개발의 움직임도 일어났다. 1987년 고등학생 남인환이 개발한 게임은 한국 최초의 국산 게임으로 평가되며, 국산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신감을 얻은 ‘소프트맥스’, ‘미리내소프트웨어’,
‘막고야’ 등 국내 개발사, 게임 전문 잡지와 유통사도 등장하며 산업의 초기 생태계가 점차 형성됐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대기업들도 게임 산업을 새로운 유망 시장으로 간주하고 대거 진출했다는 점이다. 삼성, 현대, 쌍용, SKC 등은 자체 게임기를 개발하거나 게임 유통 사업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대부분
철수였다. 제조업 중심 마인드로는 고객 중심 게임 비즈니스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히려 창의성과 유연함을 가진 중소 개발사들이 시장을 이끌었고, 이는 향후 한국 게임 산업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구성하는 토대가 됐다.
3단계
국산 PC 게임 확산과 온라인 게임의 서막(1991~1996)
1990년대 초반부터는 국산 게임 개발이 본격화됐다. <폭스레인저>, <그날이 오면>, <창세기전>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흥행하면서 국산 게임의 경쟁력이 입증됐다. 동시에 컴퓨터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 등이 개최되며 게임 산업 인프라가 점차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큰 걸림돌은
불법복제였다. 수많은 게임이 성공적으로 개발·출시됐지만, 정품이 아닌 복제품으로 유통되며 정작 개발사는 이익을 거두지 못했다. 이는 개발 의욕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게임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게 된다. 바로 온라인 게임이다. 1993년 마리텔레콤의 <단군의 땅>은
PC통신 기반의 머드게임으로, 최초의 온라인 게임 시대를 연 작품이다. 이후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서 상용화가 이루어지며 온라인 게임은 빠르게 보급됐다. 당시에는 텍스트 기반의 머드게임이 주류였으나 이용자 간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기반의 게임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4단계
온라인 게임의 도약기(1996~2000)
1996년에 개최된 제1회 ‘코리아 게임즈’ 전시회는 12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으며 게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으켰다. 같은 해 넥슨은 그래픽 기반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며, 머드 게임을 넘어선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이어서 1998년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대성공을 거두며 온라인 게임을 하나의 대중문화로 안착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 시기에 한국은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스타크래프트>의 대중화, PC방의 전국적 확산, 케이블 방송사의 e스포츠 중계는 게임을 ‘하는 문화’에서 ‘보는 문화’로 확장시켰다. 프로 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군도 처음 등장했다. e스포츠 산업의 붐으로 임요한 등의 유명인이 등장했고, 세계적인 팬덤도 생겨났다. 이 시대 이후 게임은 더 이상 단순 오락이 아닌 ‘경쟁’과 ‘관람’의 콘텐츠로 변모했다. 또한 이 시기는 세계 최초로 부분 유료화 모델이 도입된 시기이기도 하다.
<포트리스>, <퀴즈퀴즈>, <크레이지 아케이드> 등 캐주얼 온라인 게임의 성공은 사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다양화를 가능케 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세계 게임 산업의 선도 모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5단계
온라인 게임의 세계화와 제도적 정착(2001~2010)
2000년대 초반, 한국 게임 산업은 본격적인 수출 산업으로 전환된다. 웹젠의 <뮤>는 3D MMORPG의 가능성을 열었고, 다수의 국산 게임이 동남아를 넘어 북미, 유럽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6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기존의 규제 중심 시각에서 탈피,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섰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 중독’ 이슈가 부상하며 사회적 논란이 커졌다. ‘게임은 중독인가, 예술인가’라는 주제를 둘러싼 공론장이 형성됐고, 게임에 대한 양면적 시각은 결국 제도 및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6단계
모바일 게임 대중화와 뉴 미디어 융합(2011~현재)
스마트폰의 보급은 게임 이용자의 범주를 급격히 넓혔다. <애니팡>은 중년 여성층까지 포섭하며 모바일 게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게임사는 온라인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크로스 플랫폼 게임, 하이퍼 캐주얼 장르, 글로벌 앱 마켓 기반의 수익 모델이 정착된 것도 이 시기다.
최근에는 VR·AR 기기와 메타버스 플랫폼의 확산으로 게임은 다시 한번 기술 진화를 마주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비대면 콘텐츠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게임은 일상의 중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반면, 숏폼 콘텐츠와 소셜 미디어 이용 증가로 게임 이용 시간은 다소 감소 추세도
확인되고 있어 지금의 게임 산업은 새로운 전략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 게임 산업의 현재와 미래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5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극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 상용화, 부분 유료화 모델 도입, e스포츠 산업화 등은 한국이 선도해 낸 창의적 성과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게임은 서브컬처로 치부되거나 규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게임 정책 수립과 콘텐츠 제작 현장을 모두 경험해 온 사람으로서, 한국 게임 산업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이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작업임을 절감했다. <한국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마주한 수많은 공백과 기록 부재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자와 정책 담당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를 보여준다.
이제는 게임뿐 아니라 웹툰, K-드라마, K-팝 등 각 분야의 콘텐츠 산업사도 독립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K-컬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세계적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기록하고 조명하는 작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 우리가 만든 이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다음 세대의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