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으로 펼쳐진 상상의 나래

잠수함은 은밀하고, 폐쇄적이며, 낯선 공간이다. 그 특유의 분위기로 영화나 소설 등에서 꾸준히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전쟁 속 무기이자, 인간 드라마의 배경이자, 때론 상상력의 촉매로.

리얼리티가 더해진 스릴

잠수함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그 특성으로 국가 안보, 군사 작전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까지 담기 좋다. 특히 냉전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은 잠수함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표작으로는 ‘붉은 10월’(1990년), ‘크림슨 타이드’(1995년), ‘헌터 킬러’(2018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대를 옮기면 독일 잠수함을 다룬 ‘특전 유보트’(1982년), 미 해군 작전을 다룬 ‘U-571’(2000년),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인 ‘그레이하운드’(2020년)가 있다. 이 영화들의 유사성은 바로 ‘잠수함’이라는 폐쇄된 공간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이다. 작은 공간, 한정된 인물, 끊임없는 위협.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때론 전투보다 더 강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잠수함이 주요 배경이 된 영화들이 있다. ‘유령’(1999년), ‘강철비2: 정상회담’(2020년) 정도다.

이 중 하나를 추천하라면, 단연 ‘특전 유보트’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연출, 음악, 연기, 영상 모두 ‘클래식 전쟁 영화’의 교과서처럼 여겨진다. 폐쇄된 잠수함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드라마, 전쟁의 냉혹함, 병사들의 긴장, 그리고 그 안의 인간성. 1982년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CG는 없지만, 아날로그 감성은 오히려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잠수함에 대한 호기심의 시작

잠수함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계기 중 하나는 소설 <해저 2만리>였다. 쥘 베른이 1869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잠수함이 제작되기 앞서 상상된 ‘노틸러스호’를 타고 펼쳐지는 해저 모험을 담고 있다. 이후 잠수함은 무기이자 상상의 도구로 자주 등장하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소설 제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저 2만리는 사실 오역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원제 ‘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는 ‘바다 밑 2만 리그’라는 뜻인데, 여기서 ‘리그(lieue)’는 프랑스의 도량형 단위로 약 4km다. 환산하면 총 8만km인데, 2만 리(약 7,854km)로 번역되며 수치가 확 줄어든 셈이다. 일본 번역을 그대로 들여오면서 생긴 오류인데, 지금은 그냥 굳어져서 사용되고 있다.

잠수함은 실제로는 현실적인 공간이지만, 상징적 의미도 강하다. 박범신 작가의 <토끼와 잠수함>은 ‘경찰 호송 버스’를 잠수함으로, 그 안에 갇힌 사람을 ‘토끼’로 비유했다. 억압받던 유신시대의 현실을 담은 소설이다. 왜 <토끼와 잠수함>일까? 이 의미는 ‘잠수함 속 토끼’라는 말에서 출발했다. 이 말은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에게서 유래했다. “시인과 작가는 잠수함 속 토끼여야 한다”라고 말한 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게 된 표현법이다. 이 표현은 작가가 잠수함에서 근무하던 당시 있었던 일을 토대로 나온 말이다.

과거 실제 잠수함에서는 산소 센서 역할로 토끼를 태우곤 했다. 토끼는 폐활량이 적고 숨을 자주 쉬기 때문에 산소 농도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다. 토끼가 이상하면 그건 곧 위기 신호이기에 잠수함은 바로 수면 위로 떠올라야 했다. 작가들은 이처럼 세상보다 먼저 위기를 감지하고, 그것을 알리는 존재라는 의미로 잠수함을 사용하고 있다.

노란색 잠수함 타고 모험의 세계로

잠수함은 전쟁과 억압만 상징하지 않는다. 상상의 세계로도 우리를 데려간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 비틀즈의 노래로 유명한 이 애니메이션은 상상력의 끝판왕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음악을 사랑하는 해저 마을 ‘페퍼랜드(Pepperland)’. 마을의 가장 인기 밴드인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음악을 싫어하는 블루 미니스(Blue Meanies)가 마을을 공격한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보지 않은 프레드 선장이 노란 잠수함을 타고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찾으러 떠난다. 선장은 영국 리버볼에서 비틀즈를 만나 노란 잠수함에 탑승시켰다. 페퍼랜드로 돌아가는 길에 비틀즈는 여러 독특한 경험을 한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에서 비틀즈는 밴드를 구하고 힘을 합쳐 블루 미니스를 몰아낸다. 비틀즈의 15곡이 삽입됐고, 팝아트, 사이키델릭 아트, 옵아트 등 다양한 미학이 뒤섞여 만들어진 비주얼은 지금 봐도 세련됐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비틀즈 목소리는 아쉽게도 실제 비틀즈의 목소리는 아니다. 애니메이션이 길다고 느껴진다면, 뮤직비디오나 노래만 들어도 좋다. 어느새 “We all live in a yellow submarine~”을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초록색 잠수함은 어떨까?

잠수함에 대한 비틀즈의 상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폴 매카트니가 나이 들어 직접 쓴 동화책 <그랜쥬드의 초록 잠수함>을 냈다. 그 책은 손자·손녀와 함께 떠나는 모험 이야기다. 초록 잠수함은 바다를 지나 하늘을 날고, 음악을 나누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상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섞인 세계다.

또 다른 작품 <노랑이 잠수함을 타고>는 어린이 그림책으로, 아빠와 아이가 상자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흑백에서 점점 색이 입혀지는 구성, 만화 형식이 섞인 연출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잠수함은 여기서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아이와 아빠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따뜻한 장치가 된다.

잠수함은 무기지만, 상상의 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전쟁의 기억, 누군가에게는 억압의 은유, 또 누군가에게는 노래와 상상의 상징. 잠수함 하나가 끌어내는 이야기의 결은 참 다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