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만나다
고전영화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벤허’는 네 차례나 리메이크될 정도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은 단연 전차 경주다. 벤허가 자신을 노예로 전락시킨 친구 메살라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펼치는 전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박진감이 넘친다.
이 전차 장면이 뮤지컬 무대에서 생생하게 재현됐다. 2017년 초연된 ‘벤허’는 루 윌리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외국 라이선스가 아닌 순수 국내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전차 경주 장면이다. 제한된 공간인 평면 무대 위에서 구현된 전차신은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실물
크기의 말 모양은 구체 관절을 이용해 생동감을 살렸고,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에 각각 네 마리씩 배치되어 웅장함을 더했다. 무대 벽면에는 콜로세움을 구현한 영상이 투사되어 마치 실제 고대 경기장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차가 달리는 모습은 회전 무대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표현되며,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총 세 차례의 시즌을 거치며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지만 네 번째 공연이 언제 다시 막을 올릴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고전의 감동을 현장에서 체험해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볼 만한 작품이다.

온라인에서 체험
고대의 전차가 역사 속 유물로 남았다면, 오늘날의 전차는 디지털 세계에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전차들을 가장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바로 게임 속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월드 오브 탱크’다. 전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이 게임은 현실감
넘치는 전차 전투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이다. 등장하는 전차들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 초기까지 실존했던 기종들을 바탕으로 설계됐으며, 그중에는 실제로 양산되지 못하고 설계 도면이나 테스트 단계에 머물렀던 모델들도 포함돼 있다. 경전차부터 중형, 중전차, 구축전차, 자주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전차들이 등장하며, 각각의 외형과 장갑 구조, 포의 성능, 기동성까지 정교하게 구현돼 있다. 플레이어는 전차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실전 같은 전략을 구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실제 전장 못지않은 몰입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전차들도 세계 유저들과 함께 전장을 누빈다. ‘아머드 워페어’, ‘워게임: 레드 드래곤’ 같은 전차 중심의 전투 게임들에는 K1, K1A1 전차까지 등장했다.

영화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한 무기로 처음 등장한 전차는 이후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핵심 병기로 자리 잡았다. 이런 전차의 위용을 가장 극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매체는 단연 영화다. 전차를 전면에 내세운 대표적인 영화로는 2014년작 ‘퓨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미
육군 전차 부대가 독일군, 특히 무장친위대와 벌이는 치열한 전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극 중 주인공들이 탑승한 전차의 이름이자 영화 제목인 ‘퓨리(Fury)’는 실제로 운용됐던 미군의 M4A3E8 셔먼 전차(Easy Eight)를 모델로 한다. 촬영에는 같은 계열인 M4A2E8 셔먼이 사용됐다.
독일군의 전차는 티거 I(Tiger I). 이 역시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 투입됐던 실물 전차로, 두 기종 모두 영국의 보빙턴전차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던 실물을 사용해 촬영했다. 티거 전차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에서도 짧게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 람멜 마을
다리 방어전에서 나타나는 티거는 실제 독일 전차가 아닌, 구소련 T-34 전차를 개조해 외형만 티거처럼 꾸민 복제 전차였다.
전차를 전면에 내세운 다른 전쟁 영화들도 있다. 러시아 영화 ‘T-34’(2018년)는 제목 그대로 소련의 대표 전차 T-34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며, 덴마크 영화 ‘4월 9일’(2015년)에서는 독일의 판처Ⅱ 전차가 등장한다. HBO의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년)에서는 미군의 M4A1
셔먼을 비롯해 영국군의 MK4 크롬웰, 독일의 판처IV 등 다양한 기종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