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의 역사를 만난 영천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최무선을 만날 수 있는 곳, 경남 영천. 이곳에는 최무선 장군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다.

개인의 노력으로 화약 제조를 배우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출생지나 활약지에는 그와 관련된 건축물이나 도로, 기념관이 생기기 마련이다. 경남 영천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노랫말에 등장한 최무선 장군의 고향이다. 노랫말 가사에 최무선 장군을 수식하는 단어는 ‘화포’다. 이 수식어가 말해주듯 고려시대의 장군인 최무선은 우리나라 화약과 화포의 역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런 그의 흔적이 영천 곳곳에 존재한다.

최무선 장군은 화약과 화기의 제조를 담당하는 임시 관청인 화통도감을 설치했고 왜구를 무찔렀다. 또 화차와 화약, 화포 등을 개발하며 발명가로서 크게 활약했다. 그의 이런 업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염초 제조법을 배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숨겨져 있다. 1370년경, 고려는 나라 안팎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처해 있었다. 특히 왜구의 빈번한 침입으로 국가 안보는 위태로웠다. 왜구들은 해상에서 빈번히 약탈과 침입을 감행해 해안 지방의 민생을 크게 불안에 싸이게 했다. 고려의 무기로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막기 어려웠다. 무관이었던 최무선은 국가 생존과 국민 안전을 위해 강력한 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당시 고려는 화약 제조 기술이나 무기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중국 등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최무선 장군은 염초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염초 제조법이 무엇이기에 필요성을 느꼈을까? 염초는 화약의 주성분이다. 고순도의 염초 없이는 안정적이며 강력한 화약 제조가 어려웠다. 당시 고려는 대부분의 염초를 중국 등지에서 수입했다. 그래서 최무선 장군은 염초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중국의 강남에서 오는 상인이나 중국과 교류하는 무역항인 벽란도에서 중국인 이원이라는 염초 제작 장인을 만나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원과 같은 마을에 머물며 성심껏 대우한 뒤 은밀히 염초 제조 비법을 물었고, 몇 달간 여러 차례 시험을 거쳐 기술을 터득했다. 당시 이원은 화약 제조법이 국가 기밀임을 이유로 거부했으나, 최무선의 간곡한 부탁과 진심에 감명 받아 점차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전해진다.

화약과 화기의 제조를 담당하는
임시관청인 화통도감을 통해
다양한 무기를 제작했다.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다

최 장군이 염초 제조법을 배우고 돌아와 고려 조정에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했다. 고려 조정은 새로운 무기 기술과 화약 제조법에 대해 경계심과 의구심을 품었고, 기술의 위험성과 정치적 부담 때문에 즉각적인 승인을 주저했다. 하지만 그의 끈질긴 건의와 시범 전투에서의 화약 무기 성과, 그리고 왜구의 지속적 위협이 겹치면서 조정은 점차 화통도감을 인정했다. 1377년 화통도감이 설치되어 화약 무기 생산을 시작했다. 화통도감에서는 다양한 화기를 제조했고,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화통방사군도 조직했다. 화통방사군은 고려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여러 전투에 참전했고, 내륙으로 침입하는 외세에 대비해 여러 관청에 비치되기도 했다. 대규모 관청에는 3명, 중규모 관청에는 2명, 소규모 관청에는 1명이 소속되어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이 부대는 조선시대에는 화통군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다. 제작된 화기들은 1380년 진포대첩과 1383년 관음포해전에서 왜구를 격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화통도감은 임시 관청으로 설립되어 1389년 폐지됐으며, 그 후 군기시로 그 기능이 통합됐다.

화통도감에서는 다양한 구조를 가진 화약무기가 만들어졌다. 성벽이나 적의 진지를 공격하는 데 사용한 대장군포·이장군포·삼장군포, 화살이나 쇠뇌로 쏘는 화약 무기인 화전, 쇠로 만든 화약 탄환으로 포환 또는 발사체에 사용하는 철령전, 작은 화포와 유사한 화기인 화통, 소형 화포인 신포 등이 있다. 또 화약을 담은 통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화차도 있다. 화차는 전투 시 다수의 발사체를 연속으로 쏘아 적진에 화재 및 폭발 피해를 주는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었다. 이 무기들로 왜구와의 싸움인 진포해전에서 전술적 우위를 확보하며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 외의 화통도감을 통해 제작된 무기들에 대한 이름과 형태는 전해질 뿐이지만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진포해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최무선과학관

진포해전은 1380년에 고려 수군이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진포에서 왜구의 함선을 맞아 대승을 거둔 해전이다. 최무선 장군은 부원수로서 이 해전에 참가해 직접 개발한 화약 무기를 활용했다. 당시 고려 수군은 100척의 함선을 보유했는데, 왜구의 5배에 달하는 500척에 비하면 적은 병력이었다. 하지만 화약 무기와 화포를 장착한 함선은 장강하구에서 진을 치고 있던 왜구에 일제히 함포 사격을 퍼부어 왜구 함선을 화염에 휩싸이게 했다. 고려군의 함포 사격으로 인해 왜구의 선단은 크게 파괴됐고, 승선하고 있던 왜구 병사들은 대부분 불에 타거나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 《고려사》는 “시체가 바다를 덮어 피의 물결이 굽이칠 정도”라고 기록할 만큼 대규모 피해였다.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 무기를 활용한 전술은 왜구를 상대로 한 기존의 근접 전투에서 원거리 함포 전술로 이룬 결과다. 이는 이후 조선 수군의 전술 모델이 됐고, 16세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런 최무선 장군의 업적과 그가 발명한 무기들의 이야기가 영상, 체험 등으로 최무선과학관에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화약 이야기가 가득하다. 과학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무기들의 원리가 과학과 접목해 적혀 있다. 일례로 최무선이 배워온 염초에 대해 ‘부뚜막이나 마룻바닥 등의 흙에 사람의 오줌과 재를 섞은 뒤 말똥을 쌓아 거적을 덮어 1년간 썩게 해 염초를 만들었다’라는 설명을 적어두었다. 더불어 아이들이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또 배 위에서 화포를 쏠 때 배의 흔들림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눈에 띈다. 당시 왜구의 배는 침저선으로 바닥이 뾰족했다고 한다. 뾰족한 배는 흔들림이 심해 화포를 발사하면 명중률이 낮았고, 고려의 배는 바닥이 편평한 평저선이라 흔들림이 약해 화포의 명중률이 높았다고 한다. 과학관은 파도의 출렁임을 통해 알 수 있도록 모형도 설치해 이해도를 높였다.

과학관에는 최무선 장군이 제작한 대장군포를 발전시킨 대형화포, 대완구포에 장착해 발사하는 조선의 비격진천뢰 등 고려에서부터 현재까지 화약의 발전사도 엿볼 수 있는 전시물이 있다. 그리고 최무선 장군의 이름이 붙여진 장보고급 잠수함 3번함인 최무선함의 진수식에서 사용했던 도끼도 전시되어 있다. 최무선 장군의 18대 주손이 보관하던 중 과학관 개관에 맞춰 기증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영상체험관에서는 진포대전을 다룬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데 활을 쏘고 대포를 맞추는 등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INFO. 최무선과학관
  • · 주소 :

    경북 영천시 금호읍 창산길 100-29

  • · 누리집 :

    www.yc.go.kr/toursub/cms/main.do

  • · 개관시간 :

    10시~17시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1월 1일, 설·추석 당일)

  • · 입장료 :

    무료

즐길 거리

지붕 없는 미술관 누비기

영천 깊숙한 곳, 작은 시골 마을 가상리에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시안미술관. “왜 이런 시골에 미술관이 있지?”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위치지만, 이곳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영천의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다. 시안미술관은 폐교된 옛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내부는 전시실, 야외 조각공원, 미술관 카페, 미술관 숍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시안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농사만 짓던 가상리 마을에도 변화가 생겼다. 영천시 문화예술과 협력해 작가들의 작품 40여 점이 마을 곳곳에 설치된 ‘별별미술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된 것. 덕분에 마을은 이제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됐다. 마을에는 다섯 개의 산책길이 있다. 걷는길, 바람길, 스무골길, 귀호마을길, 도화원길. 이 길들을 따라 걸으면 주민들의 일상, 자연 풍경, 역사와 문화유산이 예술 작품과 어우러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배부터 든든하게

영천은 포도로도 유명하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포도 재배지로, 포도 재배에 최적화된 토양과 낮은 기온, 충분한 일조량을 지녔다. 그 덕분에 영천 포도는 껍질이 얇고, 과육은 단단하며, 당도는 높다. 2000년대부터 영천시는 와인산업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지금은 10곳이 넘는 와이너리가 운영되면서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뿐 아니라 와인 제조와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영천을 방문하면 포도와 와인으로 즐기는 또 다른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영천공설시장에는 곰탕골목이 있다. 전통시장에서 시작된 이 골목은 초기에는 소머리국밥과 곰탕을 파는 작은 노점과 식당 몇 곳에 불과했지만, 진한 국물 맛과 서비스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골목형 먹자골목으로 발전했다. 이곳 업소들은 가마솥에 사골과 소머리를 끓이는 전통 조리법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