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란 말을 유행하듯 사용해 단어는 익숙해졌지만, 정의를 물으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메타버스는 무엇이며, 방위산업에서의 메타버스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관련 이야기를 전문가에게 들어본다.
글. 김상균(인지과학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메타버스는 무엇인가? 필자가 메타버스에 관해 받는 질문 중에 가장 답하기가 쉽지 않은 물음이다. 어원으로 보면 ‘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세상’을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이니, 현실을 초월한 세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만 설명하면 몹시 추상적이다. 메타버스는 SF소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개념이다. 학자나 협회가 구체적인 목적을
놓고 정의해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다 보니,
이 용어를 산업에서 활발하게 쓰기 시작한 기간이 2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용어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기에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녹록지 않다.
기술 연구 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 세계(Augmented Reality Worlds), 라이프로깅
세계(Lifelogging Worlds), 거울 세계(Mirror Worlds), 가상 세계(Virtual Worlds)의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분류가 아니라
구성 요소라고 한다. 분류와 구성 요소는 얼핏 비슷해 보이나, 의미상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자동차를 분류한다면 승용차, 승합차, 트럭 등으로 열거할 수 있고, 자동차의 구성 요소를
얘기한다면 엔진, 차체, 바퀴 등이 나온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ASF에서 제시한 기준은 분류에 가깝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라이프로깅, 구글 지도는 거울 세계에 해당한다.
물론, 제페토와 같은 메타버스는 거울 세계, 라이프로깅, 가상 세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제페토 메타버스가 움직이는데 이 세 가지가 자동차의 엔진, 차체, 바퀴처럼
작동한다기보다는 별도의 기능으로 존재한다. 즉, 한 메타버스가 세 가지 분류의 기능을 다 안고 있는 셈이다.
어떤 이는 ASF의 신뢰성과 위상에 관해 비판하기도 한다. 필자의 견해로도 ASF의 분류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필자나 ASF를 비판하는 이 모두가 ASF에서 제시한 모델
이상의 프레임웍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는 ASF의 모델을 참고하기 바란다.
메타버스를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렇다면 이 넷을 묶어서 메타버스를 무엇이라 정의하면 적절할까? 필자는 ‘디지털 현실’이라 정의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기존 세상이
물리적 현실인데, 이에 대비하여 메타버스를 디지털 현실로 바라본다. 학술 단체, 협회 등에서 정의한 사례를 보면 3차원, 가상 등의 용어를 쓰는데 이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협소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메타버스가 반드시 3차원의 시각화된 공간이라고 한다면, 극단적으로 볼 때 양안 시각을 갖지 못한 장애인은 애당초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며 앞서 언급한
구글 지도, 소셜미디어 등을 메타버스에 활용하지 못한다. 가상이라는 단어도 적절하지 않다. 가상은 일반적으로 참에 대비되는 거짓, 허상으로 여겨지거나 일시적으로만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무한한 가치를 창조하고, 인류의 새로운 공간으로 그 가능성이 폭발하고 있는 메타버스를 그렇게 가상으로 치부하는 접근은 현명하지 않다.
방위산업과 메타버스의 관련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보면 좋겠다. 첫째, 메타버스를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접근이다. 둘째, 메타버스는 앞서 정의했듯이 새롭게
확장되는 디지털 현실이다. 이런 디지털 현실 공간을 새로운 영토로 바라봐야 한다. 따라서 국방의 대상으로 메타버스를 대하는 접근이다.
메타버스를 도구로 활용하는 접근을 다시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메타버스를 국민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접근이다. 국방 관련 현안, 정책 등을 국민들이 쉽고, 즐겁게
이해하도록 전달하는 도구로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입영을 준비하는 이들이 군 생활에 관해 미리 이해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도울 수 있다. 국내외 일부 병원에서는
MRI, CT 등 복잡한 검사를 앞둔 환자들을 위해 해당 검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환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영상화하여 컴퓨터 모니터 또는 VR고글을 통해 보도록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보자면, 이러한 접근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 자원을 국민들에게 소개하거나, 또는 미래에 확보하고자 하는 자원에 관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소통 도구로
메타버스를 활용해도 좋다.
둘째, 다양한 목적의 시뮬레이션에 활용 가능하다. 새로운 무기 개발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용이해졌다. 레이시온테크놀로지스(Raytheon Technologies)는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 개발을 위해 거울 세계에 해당하는 디지털 트윈 메타버스에서 미사일 실험을 진행했다. 기존 전투기나 폭격기에서 발사하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계약을 미국 공군과
체결하였고, 디지털 트윈 메타버스 환경에서 미사일 개발 및 테스트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작전이나 무기 정비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교육, 훈련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롤스로이스는 VR장비를 활용해서 C-130J AE2100 엔진 정비를 훈련할 수 있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뉴멕시코주 커틀랜드 미 공군기지에 위치한
제58정비단에서 이를 채택하여, 엔진 정비 실습에 활용하고 있다.
셋째, 작전 능력을 증강할 수 있다. 미국 육군은 전장에 투입되는 전투견용 AR(증강현실) 고글을 실험하고 있다. 전투견에게 원거리에서 명령을 전달할 때 수신호나 레이저 포인터를
사용하는 대신 AR 고글을 통해 시각적 신호를 보내는 접근이다. 미국 국방부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실제 전장에서 사용 가능한 AR 고글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IVAS(Integrated Visual Augmentation System) 헤드셋이라 명명했는데, 군인들로 하여금 상황인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의사결정, 정보 공유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AR 고글을 착용한 군인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애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폭넓게 파악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실제 공간 위에 적의 위치, 적절한 전술,
동료의 위치 등과 같은 다양한 정보를 덧씌워서 제공하는 형태이다.
넷째, 작전에 관한 지휘 통제를 강화하는 데 활용이 가능하다. 미국 우주군은 세계 최초의 우주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고자 우주 시뮬레이션과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슬링샷에어로스페이스
(Slingshot Aerospace)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우주 디지털 트윈을 통해 우주 공간을 전략적 영역으로 인식하고, 디지털로 복제된 우주에서 워게임, 모의 우주임무를
수행하여 미래 우주전에 대비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우주의 실제 상황을 디지털 트윈에 실시간으로 복제, 반영하여 상황에 관한 종합적 분석, 파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IVAS도 지휘 통제력 강화와 연관된다. 군인들이 착용한 헤드셋을 통해 현장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집되며, 지휘부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외부 정보, 기존 데이터 등과 결합하여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보다 정밀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 형태가 가능하다.
메타버스의 발전과 변화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우리만의
방위 태세를 발전시켜야 한다.
메타버스를 도구로 활용하는 접근을 소통, 시뮬레이션, 작전 능력 증강, 지휘 통제력 강화의 네 가지로 살펴봤다. 다음으로 메타버스를 방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소개한다.
메타버스는 공간의 특성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 일례로 국내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인 유니메타는 마인크래프트 플랫폼을 활용해서 두 가지 메타버스를 건설하고 있다. 하나는
유니메타에 참여한 전국 여러 대학교의 캠퍼스를 메타버스에 옮기는 작업이다. 다른 한 공간에서는 유니메타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구조, 기능의
메타버스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공간이 가진 경제, 사회적 가치 인식이 미약한 편이다. 그러나 이런 공간도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영토로 봐야 하며,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 역시 우리 국민임에는 변함이 없다. 반대 상황도 발생한다. 외국에서 건설한 메타버스 공간에 우리 국민이 참여해서 교육, 비즈니스 등의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 국민이 물리적으로는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으나 디지털 현실인 메타버스 속에서는 다른 국가에서 활동하는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들 모두가 방위의 대상이 되어야 하리라
본다. 필자의 견해에 대해 혹자는 “게임 속 세계를 지키라는 것이냐?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를 지키라는 것이냐?”라며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메타버스 플랫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안으로 다양한 상업적 교류, 교육, 의료 서비스 등이 빠른 속도로 녹아들고 있는 상황에서 메타버스를 게임과 동일시하는 자세로는 메타버스 영토의 가치를 온전히 지키기
어렵다.
메타버스는 도구이자 대상이다. 물리적 현실을 지키는데 쓰임새가 좋은 도구이며, 새롭게 지켜야 할 디지털 현실의 대상이다.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의 사이클 모델을 볼 때, 메타버스는 이제 도입기를 막 벗어나는 단계이다. 따라서 현시점의 메타버스를 놓고 도구의 쓰임새와 방위의 대상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메타버스의 발전과 변화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우리만의 방위 태세를 발전시켜야 한다. 평화를 지키는 최고의 수단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조지 워싱턴의 말처럼 새로운 디지털 현실의 평화를 위해 메타버스로 방위산업이 나아갈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