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VOL.128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과학, 적정기술

우리의 과학기술은 이제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넘나들고 있다.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과학에는 언제나 ‘사람’을 위한 기술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첨단기술과 하위기술 그리고 중간기술로 나뉘는데 중간기술을 우리는 ‘적정기술’이라 부른다.
편의만이 아닌 생존을 위한 친환경적인 기술이 적정기술의 바탕이다.

세상을 녹이는 따뜻한 기술

적정기술은 1960년대에 경제학자 슈마허(E. F. Schumacher)가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처음에는 중간기술로 불리었다. 슈마허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중간기술 운동을 펼쳤고, 이 운동이 이후 간단한 기술로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데서 ‘적정’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로 확대되었다. 이후 대안 기술, 따뜻한 기술, 착한 기술로도 불린다.

특별한 환경이나 훈련 없이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적정기술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주로 개발도상국의 저소득층이 사용하기에 저렴한 비용은 필수 요소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비용이 많이 들면 현지인들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당한 제품 크기와 간단한 사용법이 따라줘야 한다. 사용법이 복잡하면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 직관적인 사용법을 보유해야 한다. 현지 상황을 고려해 현지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하며 지역 사회를 위해 일자리 창출까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야 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을 위한 기술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적정기술은 희망이다

만약 갑자기 전기가 끊겨버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부분을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를 통해 다양한 물품들을 생산하고 첨단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지진,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닥치면 첨단장비들이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거대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첨단 시스템이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정지해버리는 경우를 이미 많이 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적정기술이 위기 상황에 해결방안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인류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적정기술은 현재 개발도상국에 적용되어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친환경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리터 오브 라이트’다. 제작비가 1달러 정도로 전기세가 제로인 리터 오브 라이트는 페트병 조명이다. 브라질의 자동차 정비회사 기계공에 의해 만들어진 조명은 어두운 곳을 페트병 하나로 밝혔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지붕 구멍에 물을 채운 플라스틱 페트병을 끼우면 끝이다. 이는 햇빛이 페트병을 통과할 때 물 분자에 의해 사방으로 확산시키는 원리를 이용했다. 이 밝기는 일반 백열전구 수준이다. 전기가 365일 끊기지 않는 한국에서는 의문스러운 기술이지만 의외로 낮에도 어두운 곳이 많다. 이미 필리핀 파클로반의 빈민가에 설치해 성공했다. 이제 이 조명은 새벽과 저녁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태양광 패널, 배터리, 센서, LED를 추가해 낮에 햇빛으로부터 받은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쟁에서도 적정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전쟁 중에 매립된 지뢰는 휴전 상황에서도 지역 주민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장애를 갖도록 한다. 이를 위해 전기와 같은 동력 없이도 지뢰를 제거하는 장비가 개발됐다. 물론, 지뢰를 제거하는 장비도 있지만 투입된 사람의 생명 위협, 높은 비용이 개발도상국에서는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개발된 마인카폰(Mine Kafon)은 안전, 비용, 시간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했다. 거대한 공 같은 마인카폰의 중심부는 대나무를 꽂을 수 있으며 대나무 끝에는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고무 원판이 장착되어 있다. 이를 굴려 공의 무게로 지뢰를 밟아 터지도록 설계했다. 폭발로 부서진 대나무는 쉽게 교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손과 발의 힘으로 최대 지하 7m의 물을 끌어 올리는 머니 메이커 펌프, 두 개의 항아리에 모래, 물만으로 기화열 원리로 온도를 낮춰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팟인팟쿨러, 추운 곳에 난방을 할 수 있도록 맥반석·진흙·철을 포함한 돌을 이용한 온돌인 지세이버, 축구공 안에 작은 소켓을 장착해 낮 동안 공을 차고 노는 동안 발생한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저장하고 이를 전구로 사용하는 쏘켓 등이 있다.

첨단기술에 의해 적정기술을 등한시하기도 하지만 개발도상국에, 아니 사람에게 36.5℃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적정기술은 희망의 씨앗이다. 그 따뜻한 마음이 첨단기술에도 녹여져 우리의 미래에도 따뜻한 첨단기술이 생겨나길 바란다.

적정기술은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추구하는 인간중심적 기술로,
생산 비용이 적게 들고
유지 보수가 쉬운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