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여행

잠들지 않는 고래의 꿈

울산

한때 ‘죽음의 강’이라 불렸던 태화강은 이제 ‘생명의 강’이 됐고,
한때 포획의 대상이었던 고래는 이제 자유와 꿈을 상징한다.
언제나 역동적으로 변하는 도시 울산에서, 잠들지 않는 고래의 꿈을 만나보자.

글. 정효정(여행작가)

자연과 문명이 함께 하는 여행도

고래는 잠들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는 건 아니다. 일생에서 약 7% 정도의 시간을 자는데, 이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적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 짧은 수면 시간조차 고래는 뇌의 반쪽만 잠이 든다. 나머지 깨어 있는 뇌로 호흡도 하고, 천적에도 대비한다. 그렇기에 고래는 평생 깨어 있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울산 태화강 대곡천의 선바위 유원지에 가면 고래가 그려진 반구대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아마 옛날에는 이곳까지 고래가 올라왔을 것이다.

이렇게 고래가 거침없이 활동하던 울산은 지금은 자동차, 조선, 석유 화학, 수소, 이차전지 등 국내 최대 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로 변했다. 그뿐 아니라 신산업 분야, 미래 방산 기술 등 앞으로도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큰 역할이 기대되는 곳이다. 한편 울산은 태화강국가정원, 장생포고래마을, 영남알프스, 대왕암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고, 또 정성껏 길러진 양질의 한우를 맛볼 수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산업 도시의 역동적인 기운과 매력적인 관광지가 함께 하는 곳, 울산으로 떠나보자.

태화강에 펼쳐진 생명의 경이

한국에는 두 개의 국가정원이 있다. 하나는 순천시의 순천만 국가정원이고 또 하나는 울산시의 태화강 국가정원이다. 울산 도심을 관통하는 태화강은 서에서 동으로 흘러 장생포에서 바다와 만난다. 이곳은 한때 산업화와 도시화로 오염되어 ‘죽음의 강’이라 불리며 방치됐다. 악취로 숨 막히던 이 강을 다시 살린 것은 국가와 시민이었다. 지금 이 강엔 1급수에만 산다는 은어가 살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태화강을 따라 약 83만㎡의 공간에 조성되어 있다. 봄에는 각종 꽃이 피어 봄꽃 축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핑크뮬리와 억새가 정원을 뒤덮는다. 이곳에는 피트 아우돌프가 디자인했다는 자연주의 정원도 있다. 그는 뉴욕 하이라인 파크나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루리 가든,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의 정원 등을 조성한 세계적인 정원 작가다. 아시아에서는 태화강 국가정원이 최초의 시도라고 한다.

태화강 국가정원을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십리대숲이다. 푸른 태화강을 따라 70만 그루의 대나무가 펼쳐져 있다. 대숲에 들어가는 순간 마치 도심의 소음은 멀어지고 귓가에는 사그락거리는 대나무 잎 소리만 들린다. 복잡하던 마음도 순식간에 푸른 대나무처럼 청량해지는 듯하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인구 110만 대도시의 쉼터일 뿐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의 보금자리기도 하다. 태화강 남단 삼호대숲은 여름에는 동남아시아의 백로가, 겨울에는 몽골과 시베리아의 까마귀가 찾는 철새들의 쉼터다. 한때 인간으로 인해 철새들은 쉴 장소를 잃었지만, 이제 인간의 손으로 다시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 영해를 지키는 최초의 호위함, 울산함

울산은 신라시대부터 정치, 경제, 교통의 중심지였고, 국방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었다.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대왕은 자신의 유해를 동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호국용(護國龍)이 되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무덤이 바로 경주의 문무대왕릉이다. 그리고 울산 동구에는 대왕암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문무대왕의 비가 세상을 떠난 뒤 동해의 큰 바위 밑으로 잠겨 호국용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정신과 백성을 아끼는 애민정신이 서려있는 바위다.

울산에서는 또 다른 호국 정신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인근 육상에 전시된 울산함이다. 울산함은 우리 기술과 자본으로 설계하고 건조한 최초의 호위함으로, 수시로 간첩선과 고속정을 침투시켰던 북한의 해상 도발에 대응하고자 만들어졌다. 당시 가스 터빈 2대와 디젤 엔진 2대를 장착해 최고 36노트(시속 66km)로 기동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76mm와 30mm 함포 각 2문과 하푼 대함미사일, 자동사격통제장치, 음향탐지기(소나) 등의 장비를 탑재해, 대한민국의 방산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34년간 대함, 대공, 대잠전을 동시에 수행하며 대한민국 영해를 수호했던 울산함은 이제 전시관이 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관람객은 승조원 침실, 사병식당을 비롯한 생활공간뿐 아니라, 소리로 적이 쏜 어뢰를 탐지하는 음탐실, 레이더로 전술정보를 분석하는 전투정보실, 함장이 작전을 지휘하는 함교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외부갑판에는 실물을 그대로 재현한 대공 레이더와 함포, 폭뢰 등을 볼 수 있어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잠들지 않는 공단을 바라보며, 고래가 되는 꿈을 꾼다

울산에는 ‘한강뷰’ 못지않은 유명한 뷰포인트가 있다. 바로 울산의 대규모 산업단지를 바라볼 수 있는 일명 ‘공단뷰’다. 누군가는 산업 공단에 무슨 볼 것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울산의 공단뷰는 일몰과 야경이 아름다운 명소로 유명하다. 이 공단뷰를 잘 볼 수 있는 핫 플레이스가 바로 ‘장생포 문화창고’다.

장생포 문화창고는 옛 냉동창고를 울산 남구가 인수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6층 북카페의 넓은 창에서도 풍경이 근사하지만, 계단을 통해 7층 별빛마당(옥상정원)으로 올라가면 힘차게 역동하는 공업 단지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5층은 공유 작업실 및 연습실, 4층은 시민 창의 광장, 3층은 미디어아트 전시관, 2층은 체험존, 1층은 푸드코트로 이뤄져 있어서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 또한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늦은 시간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공단을 보며 마치 잠을 자도 한쪽 뇌는 잠들지 않는다는 고래를 떠올렸다. 대한민국은 고래와 닮았다.

깊은 밤에도 누군가는 잠들지 않고 산업을 발전시키고, 또 누군가는 국토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늘 삶의 터전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고래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장생포는 과거 고래잡이로 번성했던 곳이다. 장생포 고래마을에 가면 당시의 생활상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포경업의 역사는 사라지고, 지금 고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석좌교수의 말에 따르면, 고래는 인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장애가 있는 다른 개체를 보살피는 동물이라고 한다. 다친 고래를 보면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힘을 합쳐 돕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는 것이다.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고래들처럼, 고래를 닮은 우리가 향하는 미래 역시 그렇게 되리라는 꿈을 품어본다.

여행 중 쉼표, 먹기

한우의 본연의 맛을 즐기는
한우 물회

과거 ‘언양 우(牛) 시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아주 큰 우시장이었다. 우시장 옆에는 도축장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소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지금도 울산의 한우는 전국 한우능력 평가대회에서 최초 대통령상 3회 수상과 최고 경매 낙찰가 두 가지 타이틀을 획득한 우수한 한우로 유명하다. 울산에서 한우를 맛보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언양 불고기’이지만, 울산 한우의 우수함을 느껴보기 위해선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한우 물회’나 ‘육회 비빔밥’을 추천한다. 신선한 재료와 어우러진 선홍빛 육회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함께 나오는 담백하고 슴슴한 소고기뭇국도 일품이다.

대숲 빵과 대숲 라테

태화강 국가정원의 십리대숲을 모티브로 만든 대숲 빵과 대숲 라테가 있다. 대숲 빵은 외관만 대나무인 게 아니다. 식용 대나무가루와 쑥을 넣은 빵에 생크림을 듬뿍 사용했기에, 한입 먹는 순간 대숲의 푸른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신선한 맛을 자랑한다. 대숲 라테는 달지 않고 고소하다. 빵과 라테에 얹혀 있는 대나무 잎은 실제 대나무 잎이라 먹을 때는 덜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