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전차 사냥꾼이 된 대공포

개발 당시의 목적과 달리 다른 용도로 더 활약한 무기들이 있다.
대표 무기는 대공포 용도로 탄생했지만 대전차포로 엄청난 명성을 떨친 독일 8,8cm FlaK다.

글. 남도현(군사칼럼니스트)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독일의 Kw FlaK 16 대공포. 이후 걸작 대전차포인 88의 기반이 된다.
ⓒ 위키피디아

비행기를 잡기 위해 탄생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불과 10여 년 전에 탄생한 비행기가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자 대응책의 등장은 필연이었다. 일단 기관총으로 막고자 했으나 사거리가 짧은 데다 많은 총탄을 적중시켜야 했다. 따라서 한두 발의 명중탄으로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대안, 즉 대공포가 필요했다.

그러나 공중에서 3차원으로 이동하는 목표를 맞춰야 하니 생각만큼 개발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 고고도까지 포탄이 힘을 잃지 않고 올라가려면 포구의 속도가 빨라야 했고 더불어 특정 공간에 신속히 탄막을 형성할 수 있도록 연사력도 좋아야 했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나 전선에서는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일단 기존에 사용 중인 포를 동원했지만, 명중률이 형편없어 공갈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실 화력관제시스템의 성능이 좋아진 지금도 비유도무기로 고속 기동 중인 비행체를 맞추기는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발칸이나 오리콘처럼 여전히 포가 사용되기도 하나 현대에 와서는 신궁, 천마, 천궁 같은 각종 미사일이 방공을 담당한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전쟁 말이 되자 지연 신관을 이용해 포탄이 예정된 고도에서 폭발해 무수한 파편으로 탄막을 구성하는 방식의 대공포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1918년 독일도 연사력이 좋은 기존 8,8cm (영미식 표기 방식으로는 8.8cm) SK L/45 함포를 기반으로 하는 8,8cm Kw FlaK 16(이하, Kw FlaK 16) 대공포를 개발했다.

Kw FlaK 16은 후속작들이 앞다투어 채택하게 되는 자동화된 급탄 및 탄피 배출 시스템과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가를 채택했다. 그러나 전선에서 제대로 활약해 보지 못하고 종전을 맞이했다. 다만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항공 전력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었기에 향후 대공포의 중요성도 함께 증대될 것이 확실했다.

패전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많은 중화기의 개발과 보유가 금지됐지만 이미 개발된 일부 무기는 예외 조치를 받았다. 이에 독일은 Kw FlaK 16을 계속 생산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비밀리에 신예 대공포 사업에 착수했다. 이때 개발자들은 앙각 범위가 큰 Kw FlaK 16의 포신을 수평까지 내리면 평사포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전차포로 더 큰 명성을 얻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지상전용 무기로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렇게 연합국 감시를 피해 개발한 새로운 대공포가 1928년 완성됐다. 통상적이라면 8,8cm FlaK 28이라는 이름이 붙여야겠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던 시절이어서 Kw FlaK 16의 단순 개량형처럼 보이도록 8,8cm FlaK 18 (이하 FlaK 18)로 명명했다.

그러던 1936년에 히틀러는 ‘콘도르 의용군’이라는 명칭으로 독일군을 스페인 내전에 파병했다. 소규모 부대여서 이때 FlaK 18은 대공뿐 아니라 여타 교전 행위에도 골고루 투입됐다. 불가피한 여건이 만든 상황이었지만 이른바 88(FlaK 18과 이후의 개량형인 36/37/41을 포함하는 애칭)로 거론될 대전차포로서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전훈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개량형인 8,8cm FlaK 36(이하 FlaK 36)이 탄생했다. FlaK 36은 처음부터 대공 목적 외에도 지상전을 염두에 두고 별도 철갑탄을 함께 개발하고 포방패도 부착했다. 이후 FlaK 36은 88을 대표하는 모델이 됐다. 88이 대전차포의 전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때는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활약한 독일 전차들은 화력이 부족해서 적 전차 요격의 상당 부분을 대전차포들이 담당했다. 그런데 기존 3,7cm PaK 36 대전차포로 마틸다 Ⅱ, 샤르B 같은 연합군 중전차 격파가 어려웠다. 그러자 당시 제7기갑사단장을 이끌던 에르윈 롬멜이 88을 동원해 이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은 독일군 전체에 빠르게 퍼졌다.

결국 6주 동안 이어진 프랑스 침공전에서 152대의 연합군 전차와 151곳의 벙커가 88에 의해 격파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내내 88의 명성은 곳곳에서 쓰였다. 특히 독소전쟁에서는 엄청난 물량전을 펼치던 소련군 기갑부대를 최전선에서 격파한 일등공신이었다. 사실 대공포는 포구 속도가 빠른 직사포여서 포탄만 바꾸면 대전차포로 전용이 쉽다.

88 외에도 영국의 QF 3.7인치 포, 소련의 85mm 포. 미국의 90mm 포가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그럼에도 88의 명성이 유독 높은 이유는 실전에서의 활약상이 피아 모두가 인정할 만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독일은 전쟁 내내 이어진 수적 열세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대공포 역할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전설의 만능포였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적 전차를 요격 중인 Flak 18. 개발 당시에 승전국의 감시를 회피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Kw FlaK 16의 개량형으로 오인하도록 이름을 명명했다.
ⓒ Bundesarchiv
영국전쟁박물관에 전시 중인 FlaK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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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포로 명성을 얻었어도 88은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독일군의 주력 대공포였다. 한마디로 만능포였다.
ⓒ Bundesarch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