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태생이 전쟁터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종종 전쟁이나 군사 용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한 단어들을 알아본다.

참고. 장한업,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 2022 등

‘마지노선’을 지켜줘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마지노선’은 마치 사자성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어와 한자의 합성어이다. 마지노선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독일의 재침략을 방지하기 위해 세운 방어망으로, 이를 제안한 프랑스 국방 장관 앙드레 마지노(Andre Maginot)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프랑스 동부 국경을 따라 펼쳐진 마지노선은 당시 최첨단 기술을 집약해 약 10년 동안 건설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철통 방어선으로 믿었다. 그러나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벨기에로 침공하면서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프랑스 파리를 함락시켰다. 결국 마지노선은 쓸모없는 시설로 전락하게 됐지만, 현재는 어떤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한계점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이 ‘데드라인’이야

또 다른 선인 ‘데드라인’은 마감 기한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의미의 은유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선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부로 끌려온 많은 포로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했다. 음식과 의복 등 기본적인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포로들은 탈출을 시도하게 됐다. 이를 막기 위해 수용소 측은 나무 말뚝으로 울타리를 설치하고, 이를 넘는 포로들은 사살했다. 실제로 ‘죽음의 선’이 그어졌던 것이다.

‘게릴라’콘서트가 시작됐다

일상에서 ‘깜짝’이라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는 ‘게릴라’는 실제로 ‘기습, 교란, 파괴 활동을 하는 부대나 함대’나 ‘진지 없이 일어나는 유격전’을 뜻한다. 이 단어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연합군이 벌인 반도전쟁에서 유래했다. 프랑스군이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공격하며 자행한 만행과 횡포로 인해 스페인 사람들이 봉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의 농부와 양치기들이 군인들에 의해 ‘게릴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게릴라(Guerrilla)’는 전쟁을 뜻하는 ‘Guerra’와 작은 것을 의미하는 ‘illa’가 결합된 표현이다.

‘에프엠’대로 해

“저 사람 너무 FM이라서 피곤해”라는 표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규칙, 원칙, 고지식 등을 뜻하는 이 용어는 사실 군대 용어에서 유래했다. ‘FM’은 ‘Field Manual’의 약자로, 야전 교범을 의미하며 군사 교육이나 작전 지시, 첩보 등을 기술한 참고 자료를 담고 있는 교과서이다. 이 용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며, 사실상 콩글리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앰뷸런스’에 연락해 주세요

구급차를 의미하는 ‘앰뷸런스’는 산책, 걷다라는 라틴어 ‘Ambulare’에서 유래한 말로, 야전병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단어다. 부상자를 임시로 돌봐주는 의료 부대나 소규모 병원이었던 앰뷸런스는 19세기 중반 크림전쟁 동안 의미가 변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국가 간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다양한 응급 처치 용품들이 개발됐다. 이러한 용품들을 갖춘 부상자 치료용 마차를 보고 사람들은 이를 ‘움직이는 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최애의 컴백 ‘D-DAY’가 3일이야

‘수능까지 D-DAY 3’, ‘컴백 D-DAY’와 같은 표현들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된다. ‘디데이’는 군사용어로, 특정 날짜를 의미하지 않고 군사 작전의 시작일을 나타낸다. 이 용어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디데이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펼쳐진 1944년 6월 6일이다.

이런 ‘개판 오 분 전’을 보았나?

대부분의 사람은 ‘개판’이라는 표현이 동물인 개를 뜻한다고 생각해 개들의 싸움판을 연상한다. 그러나 이 말의 유래는 6·25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많은 피난민이 남쪽으로 몰려들며 굶주림이 심각해졌고, 미군은 쌀과 옥수수 등으로 식량을 원조했다. 큰 솥에 밥이나 죽을 끓여 배급했지만, 그 양은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배급을 밥과 죽이 완성되기 5분 전에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많은 사람이 음식을 얻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때 솥뚜껑을 연다는 뜻의 ‘열 개’와 뚜껑을 의미하는 ‘판’이 결합되어 ‘개판’이라는 표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즉, 솥을 열기 5분 전의 상황을 묘사한 말이다. 아마도 먹을 것을 쟁취하기 위해 아수라장이 펼쳐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