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책은 1분에 10권이 팔려 엿새 만에
100만 부가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런 열풍은 출판계에 역대급 호황을 안겨주고 있다.
이 현상을 단순히 노벨문학상의 일시적인 영향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앞서 ‘텍스트힙’이라는 문화 현상과 결합해 더욱 폭발적으로 작용했다.
놓치면 곤란해!
책 읽는 나, ‘힙’ 하다
Z세대를 사로잡다
‘금일’, ‘사흘’, ‘심심한 사과’, ‘중식’···. 지난해와 올해 중반에 문해력 논란과 함께 자주 언급된 단어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해력 저하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았으나, 현재는 그와 정반대되는 개념인 ‘텍스트힙’이 떠오르고 있다.
텍스트힙은 ‘텍스트(Text)’와 ‘힙(Hip)하다’의 결합으로, 책과 독서를 트렌디한 문화로 인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책 사진, 독서하는 모습, 공감이 가는 문장 등이 #책스타그램, #책추천,
#북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샷으로 공유된다. 짧은 형식의 콘텐츠가 주목받는 시대에 긴 호흡의 책이나 문장이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문화는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6월, 5일간 열린 행사에는 약 15만 명의 관람객이 유료로 입장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도서전을 여러번 다녀왔다는 ‘N차 방문’ 인증샷도 넘쳐났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올해 2월, 영국 매체
가디언은 ‘독서는 섹시하다’라는 제목으로 종이책 열풍에 관한 기사를 실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우리나라의 독서에 대한 열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한강 신드롬’이라는 표현이
생길 정도로 가시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스24의 집계로는,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10월 10일부터 16일 사이 한강 작가의 도서를 제외한 국내 도서 전체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증가했고,
‘소설·시·희곡’ 분야의 판매량은 49.3%나 증가했다.
이런 폭발적인 증가 뒤에는 텍스트힙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에 대해 허영으로 치부하는 의견도 있지만 독서 인구가 늘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다독가로 유명한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허영이
없으면 문화적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가 없다”며 허영이 문화적 시선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결국,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독서의 활성화로
이어지며, 지속 가능한 독서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텍스트힙과 결합한 매거진
텍스트힙은 인스타그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스타그램과 텍스트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매거진 콘텐츠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인스타 매거진은 Z세대들이 자신의 취향을 바탕으로 글과 사진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대개 1인이 운영하며 패션, 음악, 시, 푸드, 영화, 여행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룬다.
트렌디한 사진과 위트 있는 글이 어우러져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스타 매거진으로는 시를 전문으로 다루는 포엠매거진(@poemmag), 문화예술 관련 매거진 제비(@jebi.mag), 책과 관련된 슐튀르미디어(@sulturemedia), 5명의 에디터가 책, 영화,
음악
등 자신의 취향을 모은 생맥(@saengmag), 디자이너에 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노드 매거진(@nodd_mag), 그리고 빵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빵모닝(@bbang.morning) 등이 있다. 이러한 인스타
매거진들은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멋져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구독자들은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기회를 얻는다.
결국, 텍스트힙 문화와 인스타그램의 결합은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일반화되던 가운데, 10대와 20대는 새로운 방법으로 독서를
즐기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40대부터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텍스트힙은 허영이다”라는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 독서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