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요소는 전투력, 책략, 지형, 사람, 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종종 날씨 조건이 전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날씨의 덕과 탓을 본 제2차 세계대전 속의 사건들을 알아본다.
잡학다식
날씨 때문에
날씨 덕분에
날짜를 변경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유럽을 탈환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 이 작전에 혁혁한 공신은 바로 날씨였다.
이 작전은 15만 6,000명의 병력, 약 1만 2,000대의 항공기, 7,000여 척의 선박을 동원해 진행됐다. 그렇기에 철저한 준비가 필수였다. 작전 감행일(D-Day)은 썰물로 해안 접근이 가장 쉬운 날,
시야를 확보해 줄 보름달이 떠 있는 날로 선택해야 했다. 연합군의 기상예보장교는 6월 5일과 18일이 적절한 날짜라고 권했다. 군 수뇌부는 결전의 날을 6월 5일로 선택했다. 그러나 6월 3일, 세 개의 저기압이
접근해 날씨가 점점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상륙작전에 치명적일 수 있어 군은 다음 날인 6월 6일로 디데이를 연기했다. 당시 독일군은 6월 3일과 4일 연속된 악천후로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노르망디 해안의 방어를 책임지는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은 이런 날씨 상황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해 아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독일 집으로 향한 상태였다.
6월 6일 새벽,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날씨가 개선되자 연합군은 노르망디 해안으로 상륙했다. 오전 9시에는 해안 방어선을 뚫고 전세가 연합군에게 기울었다. 연합군의 디데이 연기는 작전의 결정적 성공 요인이 됐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는 두 번째 예정일이었던 그 시기에 대규모 돌풍이 상륙 지점을 강타해 인근 지역을 초토화한 것이다. 만약 연합군이 이 날짜로 작전을 연기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와 유럽 상황은 현재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안개로 바뀐 순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는 안개의 득과 실을 모두 경험했다. 1939년 11월, 나치 독재를 반대한 게오르크 엘저는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 작전을 세웠다. 히틀러가 뮌헨의 맥주홀에서 연설을 하기로 한 전날, 엘저는
직접 만든 폭탄을 설치하고 1939년 11월 8일 21시 20분에 터지도록 설정했다. 폭탄은 정확한 시간에 폭발해 맥주홀의 지붕과 벽면을 파괴했지만, 히틀러는 살아남았다. 바로 안개 덕분이었다. 연설이 끝난 후
히틀러는 융커스 Ju-52 수송기를 타고 맥주홀에서 베를린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안개가 낀다는 날씨 예보로 수송기 대신 열차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당시 베를린행 열차 출발 시각은 9시 30분이었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히틀러는 평소보다 짧게 연설을 하고 악수 시간도 줄여 맥주홀을 9시 7분에 떠났다. 그는 폭탄이 터진 9시 20분에 맥주홀에 없었던 것이다. 안개가 히틀러를 살렸다.
히틀러의 생에 또다시 안개가 등장한다. 그는 노르망디 전투에서 패한 후 남은 전력을 모아 반격작전을 계획했다. 1944년 12월, 두텁고 짙은 안개로 시야 확보가 매우 어려운 아르덴 숲을 전투 장소로 삼았다. 그곳은
인근에서 독일군이 지나가는 사실조차 연합군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안개가 짙었다. 전투가 시작된 12월 16일부터 22일까지 안개는 계속됐고, 연합군에게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때 전세가 역전되는 일이 발생했다.
12월 23일, 시베리아 고기압대가 아르덴 숲에 도달해 가시거리가 450~900m 정도에서 5km까지 늘어나는 기적적인 날씨 변화가 일어난 것. 연합군은 전투기를 날려 공격해 독일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안개의
변화는 연합군에게 승리를 안겨준 계기가 됐다.